아침이면 갈매기가 먹이를 찾아 울어대는 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주말이라 학교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직접 음식을 사서 요리해 먹어야만 했다. 콘슘이라고 하는 대형 슈퍼체인에 가서 빵과 쌀, 고기 등을 사서 올라 왔다.
주말 아침의 학교는 조용하고 아무도 없는 듯 한적하기만 했다. 임마누엘과 에리트레아에서 온 미케엘이 바깥에서 햇빛을 쬐고 있었다. 미케엘의 본명은 말하위라고 했다. 그는 펑크 스타일의 머리에 눈이 상냥했고 걸을 때 몸을 흔들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검은 손등에 비해 마치 개구리의 발가락처럼 매끄럽고도 야들야들해 보이는 하얀 손바닥을 갖고 있어 닿으면 왠지 내 몸이 움츠러들 것만 같았다.
임마누엘은 다른 이민자들에 비해 스웨덴인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하고 또 곧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그러고는 이민자들 사이에 오면 스웨덴인들의 모습을 곧잘 흉내 내며 빈정거리곤 했다.
미케엘은 고향에서 장사를 했다고 한다. 물건을 싣고 국경을 넘나드는 장사를 했다고 했는데 나약해 보이면서도 이런저런 계산속이 빨라 보였다. 스웨덴에 와서는 에테보리의 볼보 자동차 공장에서 일했다고 했다. 학교에 있는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망명비자를 받지 못한 채 스웨덴에 와서 이민자 보호소에 일년 정도 머물다가 자격심사를 받은 후 스웨덴에 머물게 된 사람들이었다.
여러 해 전만 해도 보호소에 3, 4개월 머문 후 스웨덴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과 집, 옷 등을 받아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게끔 이민자 정책이 잘 되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스웨덴의 경제 사정 악화로 인해 입국허가를 받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수년째 보호소에 머물다 본국으로 송환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고 했다.
나는 오전 내내 임마누엘, 미케엘과 얘기하고 점심을 먹은 후 내 방에 들어 왔다.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하려 해도 무료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오후 내내 침대에서 뒹굴다 일어나니 저녁이었다. 기숙사 안에는 집에 가지 않은 학생들 서너명이 모여 앉아 TV를 보고 있었지만 나는 스웨덴 사람들과 함께 있는 어색함이 두려워 내 방안에 머물렀다.
일요일 역시 잠시 공동묘지를 산책한 후 무료한 햇살이 내리 쪼이는 오후 내내 커튼을 치고 방안에 있었다. 나는 줄곧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친구와 가족에게 엽서와 편지 만을 썼다.
다시 학생들이 돌아와 기숙사가 떠들썩해지는 저녁 무렵이 되자 지치고 억눌린 마음으로 불을 끄고 누워 웃음소리와 발소리를 들었다. 방에서 한 발자국 나가는데도 용기를 내지 못하는 내가 한심스럽기만 했다. 언어를 배우는 사람의 기본 자세는 마음을 열고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음이 아니었던가?
‘나가라, 나가서 저들과 어울려 시도하고 깨지고 네 기분을 바꾸어라.’
마음은 이렇게 스스로를 격려하고 있었지만 내 몸은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스웨덴 아이들과는 자연스러운 웃음으로 마음을 열고 얘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내가 그들의 빠른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냉정해 보이는 표정과 닫힌 듯한 눈길 앞에 곧 바짝 긴장이 되어 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외국인들과는 스스럼없이 얘기하고 나 자신을 마음껏 있는 그대로 드러내 놓을 수 있었다. 안나 역시 만나면 웃고 한마디씩은 얘기를 나누었지만 깊은 이야기는 나눌 수가 없었다.
공기의 색깔
언젠가 네게 물었지
다른 세계로 한없이 열려있는 바다
울타리도, 파수꾼도 없는
넓은 바다를 두고
물고기들은 왜
한 곳에만 머무는 것일까
언젠가 네가 말했지
우리에게 날개가 있다면
갈라서서 등 돌리는 나라
키재보며 칼을 꽂는 민족
이런 것들은 사라져 버릴 거라고
세계가 입을 벌려
지겨움의 한숨 토해놓기 전까지
마주 보고 웃을 수 있었던 우리
우리는 몰랐네
공기들도 저마다 뿌리가 달라
색색으로 물들이고
물결도 저마다
내편 네편 무리지어 사는 줄을
하얀 공기, 누런 공기, 검은 공기들
층지어 내려 앉아 신음하며 짓누르며
색깔 다른 공기 속에선
목숨도 눈치 보며
조심스러워 지는 줄을
무색의 투명한 공기 속에서만
우리에게 날개가 돋아난다는 걸
우리가 날기 위해선
한줌의 색깔도 너무 무겁다는 걸
알아버렸네
월요일 아침엔 다시 거뜬하게 일어나 짜여진 수업을 쫓아 갔다. 바르브로 선생님은 학생들을 바짝 긴장하게 하고 숙제를 많이 내는 엄격한 선생님이었지만 우리들에게 주제를 주고 자유로운 토론을 이끌어내는 훌륭한 수업을 진행했다. 긴장이 되긴 했지만 바르브로 선생님의 수업은 재미가 있었고 나는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애썼다. 첫 수업 때 나의 깍듯한 인사를 받은 후 바르브로 선생님이 말했다.
“동양인은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는 듯 해요.”
스웨덴에서는 대화를 할 때나 일반적인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내가 이제껏 우리 사회에서 익숙해져 있던 것과는 뭔가 방식이 다른 듯했다. 말할 때에 미소를 가득 담고 상대방의 의중을 고려하며 윗 사람 앞에서는 공손히 눈을 내리 깔며 얘기하는 것이 익숙한 내게는 정색을 하고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낯설고 불편했다. 그런 느낌이 들 때마다 나는 내가 이제껏 사람들을 대해왔던 친절 어린 미소가 일종의 사회적인 습관이었음을 깨달았다. 스웨덴 아이들이 웃음기 하나 없이 정색을 하고 쳐다보며 얘기하는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것도 그런 사회적 습관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싶어지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온 마티아스는 점점 더 바르브로의 애제자가 되어 갔고 페시만과 루이스는 종종 태도 때문에 바르브로의 날카로운 지적을 받았다.
“페시만, 지금 그 자세가 뭐예요? 좀 똑바로 앉고 어깨를 펼 수 없어요?”
“루이스, 말을 입 속에서 씹지 말고 똑바로 자신 있게 내뱉도록 해요.”
빌마와 엠마는 시종 얌전히 수업에 잘 따르고 숙제를 꼬박 꼬박 했지만 바르브로를 두려워했다. 나 역시 그녀 앞에서는 긴장해서 열심히 하는 척 했지만 그녀가 안경 너머로 가만히 쏘아보는 시선 앞에 우리는 모두 뱀의 눈 앞에서 바짝 얼어버린 개구리떼 같았다.
다른 수업 시간에 선생님을 대하는 스웨덴 학생들의 태도가 내 눈에는 무척 신선했다. 나이와 지위에 따른 권위의식이 덜한 그들에게는 학생과 스승 간의 관계도 자유롭고 스스럼이 없어 보였다. 고등학교에선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통제하기 곤란하다는 폐단이 있다고 들었지만 선생님 앞에서는 의례 숨소리를 죽이고 차렷 자세를 풀지 않았던 내 눈에는 그 모습이 몹시 신선하고 자유롭게 보였다.
고양이
나는 길들여진 고양이
발톱을 세우려다 내민 앞발에
한방울 눈물을 닦아
감쪽같이 아침 세수를 하네
누구의 품에나 몸을 맡기고
가르릉거리는 착한 고양이
문밖을 나서니
나뭇잎은 술렁술렁
새들은 지지배배
꽃들은 히죽히죽
나를 손가락질하네
햇살 아래나
마음을 풀고 누워
길들여진 발톱을 세워
길게 기지개할꺼나
지나가는 구름이
한방울 떨어뜨린 눈물 맞고는
하늘도 우는구나
곰곰히 생각하네
끼룩끼룩 나는 갈매기
먼 눈길로 좇다
갑작스런 충동
가두어둔 반항과 원망이
우스꽝스레 몸을 흔들어
훌쩍 발작하듯 뛰어 오르다
땅에 다시 내려 앉으며
다시는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