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셸의 집에 갔다. 청소를 하자고 했더니 그가 놀라며 몹시 기뻐했다. 쓸모 없는 상자와 연장통 등은 모조리 좁은 나무 계단 위 다락방에다 쌓아 두었다. 거의 한나절을 수고하자 말끔하지는 못했지만 집안에 숨 쉴 틈이 생긴 듯 했다. 부엌에는 탁자를 펴고 의자 네 개를 바로 놓았고 침실의 책도 차곡차곡 정리하고 헌 옷들도 모조리 다락방에 올렸다.
점심을 먹으며 셸은 옛날 사진첩을 보여 주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듯 어린 시절의 그는 잘 꾸며진 거실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청년시절의 그의 모습은 지금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마른 체격이었으나 지금처럼 구부정해 보이지는 않았고 아직 부러지지 않은 우뚝한 코와 눈이 무척이나 감성적으로 보였다. 젊은 시절 그는 영국에서 몇 개월 엔지니어로 근무한 적이 있다고 했다. 기술 학교를 졸업한 후 곧 결혼했는데 부인은 까만 머리의 명랑해 보이는 예쁜 아가씨였다. 여러 친구들과 아내, 아내의 친구들과 어울려 찍은 사진들은 몹시도 즐거운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 후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때부터 그의 코가 부러져 있었고 어딘지 암울한 기운이 얼굴에 서려 있었다.중년기에는 몹시 뚱뚱해서 잔뜩 찡그린 얼굴이 심술궂어 보일 정도였다. 그 후로 몇 장 보이지 않는 사진은 지금처럼 이미 늙어버린 모습이었다.
사진첩을 넘기니 그의 딸과 아들이 어렸을 적 보내온 크리스마스 카드와 편지가 끼워져 있었다. 글씨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듯 철자가 틀리고 거꾸로 그려진 오래된 카드였다. 코가 부러진 때가 부인과 이혼한 후였는지 혹은 전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이혼이 그에게 상처를 주고 그의 인생을 암울하게 만들어 갔는지, 혹은 그의 암울함이 이혼을 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40대에 선원으로 고기잡이 배를 타며 돌아 다녔는데 그때가 가장 행복한 때였다고 셸은 말했다. 아무튼 이제 그는 보트 한 척과 자식처럼 아끼는 개 스띵땅 만을 데리고 홀로 살고 있었다. 예테보리에는 구십세에 가까운 그의 아버지가 사셨기 때문에 자주 전화를 했다. 오십대 중반의 어른이 구십세 가까워 오는 아버지에게 파파라고 부르며 전화하는 것을 보니 좀 이상했다. 저녁을 같이 먹은 후 설거지를 하고 나는 학교로 돌아왔다.
나무
네가 아팠구나
너를 끌고 가려는 바람과
밤새 네가 싸웠구나
그리하여 네 신음소리가
간밤 내 가슴을
그리 적셔 놓았구나
가지를 돋아낼 땐
한껏 마음이 부풀었을테지
생각하면
네 여렸던 마음이
애처롭다
네 뜻을 거스려
보이지 않게 네 머리를 낚아채는
당김과 끌림에
네 어린 심정이 어떠했을까
바람과 싸워온
네 세월의 아픔을
가지에다 담고
이제 네 삶이
의인처럼 힘겨이 서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