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by 선향

다음날 셸과 같이 바다 낚시를 가기로 약속했다. 오후에 셸과 함께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갔을 땐 바람이 거칠게 불고 파도가 심하게 치고 있었다. 이정도 바람은 거뜬하다며 셸이 나섰기에 나도 걱정하지 않았다.


섬 사이를 빠져 나와 멀리 마을이 어렴풋이 보이는 곳쯤에서 셸은 바닷 가재를 잡을 거라며 상자에다 물고기를 끼워 바다 깊숙이 내려 놓고 파란 부침을 띄웠다. 그리고는 다시 빈 바늘이 매달린 줄만 있는 낚시줄을 바닷물에 드리웠다. 나는 보트에 딸려 오는 묵직한 끈의 감촉을 손가락에 느끼며 조금이라도 이상한 진동이 느껴질까 정신을 집중했다. 번번히 조금 묵직해진다 싶어 당겨보면 아무 것도 없었다.


“이렇게 고기가 잡혀요?” 내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으니 셸은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어느덧 바람이 더욱 거칠어졌다. 시동을 끈 보트는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몇 번이나 머리보다 더 높게 넘실대는 파도를 타고 넘어야 했다. 나는 헤엄을 칠 줄도 모르고 바다 한 가운데에서 파도를 맞아 본 것도 처음이었지만 이상하게 겁이 나진 않았다. 산골마을에서 자랐기에 물이라야 조그만 산골짜기 시냇물에서 빨래하던 경험 밖에 없었던 나는 그때까지 바닷가에 해수욕조차 가본 적이 없었다.


파도는 좌우에서 보트를 욱죄듯 밀려오기도 했고 한 방향에서 휩쓸 듯 몰아 부치기도 했다. 그렇게 보트를 꽉 붙잡고 철썩이는 흰 바닷물에 몸을 적시며 흔들리기를 10여분 정도 한 듯 했다. 그제서야 파도가 좀 잔잔해지는 듯 하여 셸이 보트에 시동을 걸고 그레베스타드로 돌아 왔다. 셸은 내가 겁내지 않고 침착하게 있었던 것을 칭찬해 주었다. 멀리에서부터 울렁이며 밀려 와 내 머리 위로 삼킬 듯 보이다가 배를 싣고 출렁 아래로 가라앉는 파도는 경이로운 바다의 힘을 느끼게 했다.


배를 선착장에 끌어다 대고 돌아오는 길에 고깃배에서 어부들이 고기를 실어내는 것을 보았다. 팔목 길이 만한 시퍼런 비늘을 가진 물고기를 보고 셸이 그 중 한 마리를 샀다. 그리고 그는 물고기를 나뭇가지에다 꿰었다.


“이걸 우리가 잡았다고 자랑하자!”


셸과 나는 사람들을 속이고 자랑할 생각으로 기쁨에 차 학교로 올라갔다. 일요일 저녁이라 집에서 돌아 온 학생들은 기숙사 앞 현관 계단 위에 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원반 던지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셸은 나를 미라고 불렀다.

“미와 내가 이걸 잡았어. 어때, 크지?”

구스타브, 케니뜨 등이 다가와 고기를 들여다 보며 반신 반의로 물어 보았다.

“정말 셸이 잡았어요?”

그러자 셸은 웃으며 “사실은” 자랑할 생각으로 사온 것이라고 밝혔다. 모두들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제각기 관심을 돌리고 기숙사 안으로 들어 갔다. 여자아이들이 나와 셸을 흘끔흘끔 쳐다보며 웃었다.


셸은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 피아노와 소파가 놓여있는 방으로 갔다. 고기를 내려 놓고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를 바라보며 놀라서 물었다.

“피아노를 칠 수 있으세요?”


그는 웃으며 악보도 없이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나는 바깥에 비해 어두운 방 안의 소파에 앉아 그가 치는 피아노 연주를 들었다. 어느새 눈물이 고여날 정도로 그의 연주는 부드럽게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 했다. 나는 감동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연주가 끝난 후 잠시 가만히 앉아 있던 셸은 건반을 덮고 일어섰다.


“오래간만에 쳐서 손이 굳었는걸.”

“아니에요. 정말 훌륭한 연주였어요.”


셸이 돌아간 후 나는 내 방으로 갔다. 셸에게서 그토록 아름다운 음율이 빚어졌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것은 셀의 내면이 그 연주만큼 물기 있고 부드럽고 고통에 가득 찬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한편, 마음 한 구석에 돋아나는 불안감도 지워 버릴 수 없었다. 외로운 처지의 한 노인과 – 나는 굳이 그를 노인이라고 불렀으나 사실 그는 50대 중반의 독신남자일 뿐이었다 – 역시 외롭고 의지할 데 없는 이국의 소녀가 서로 아버지와 딸처럼 정을 나누는 것이 뭐가 어때 하면서도 은근히 주위 사람들이 우리를 보게 될 눈초리가 의식되었다. 셸과 나만 순수한 맘으로 즐겁게 친구처럼 잘 지내면 그 뿐이지 주변의 편견어린 시선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나는 마음을 다잡아 먹었다.


셸의 주변에는 아버지를 제외하고 친구도 가족도 없는 듯 했지만 나는 그것이 그다지 걱정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나로 인해 그가 외로움을 덜고 나 역시 그로 인해 많은 도움을 받고 있지 않은가?


황혼


겨울,

편지가 왔다

동생이 군에 가고

나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동생이 겪어야 할

삼 년의 비인간을

내 힘껏 밀어쳐 내주고 싶었지만

나의 시간을 가듬기에도

힘든 때였다


우체국을 오르내리며

온몸이 그리움 되어

황혼 속에 다 타도

몇 개의 이름은

뼈 조각처럼 떨어져 내리리라고

믿었다


불씨처럼 뜨거운

반도의 하늘

눈뜬 이들의

살아있는 가슴이

황혼으로 내려와

언제나 깨어있으라고

외치는 것이리라고

황혼을 바라보며

눈시울 뜨거웠다


그렇게 나도

황혼이 되어

동생 곁에

내려 앉고 싶었다


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