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자리

by 선향

낮에 수업을 받고 좁은 학교 안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우울하고 의기소침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 처음으로 내 존재가 얼마나 미미한 것인가 자각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이제껏 한 번도 내가 왜 그곳에서 살고 있을까 하고 내 존재의 정당성을 의심해 본 적도 그것을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당연히 내가 있어야 할 자리였고 아무도 내가 거기에 있음을 의심하지 않았으며 어디를 가든 내가 들어설 틈은 있곤 했다. 그러나, 스웨덴에서는 애써 내 존재를 밝히지 않으면 내가 들어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가만있으면 내 존재는 모든 이들에게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될 뿐이었고 나는 내가 거기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그리고 타인들에게 내 존재를 확인시켜야만 했다. 수업 시간의 질문, 학교 식당에서의 자리 선택, 수업 후의 어울림, 저녁식사 후의 TV 시청 등 일상적인 어느 것도 자연스럽거나 쉽지 않았다.


스웨덴인과 이민자들로 나눠진 두 그룹 중 어느 그룹에도 끼어들 수 없었기에 나는 때에 따라 이 그룹, 저 그룹을 기웃거렸다. 이민자 그룹도 스페인어 계통, 아랍어 계통, 아프리카 계통 등으로 나눠져 있었기에 나는 셸과 무사에게나 편히 마음을 열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무사는 내 이름 자 앞의 영이 나에게 어울린다며 나를 영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어리게 보이기보단 지적인 모습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나는 곧잘 내 나름대로 본 인종 문제나 셸의 환경, 나의 위치 등에 대해 그에게 털어놓곤 했다. 놀라운 건 무사마저 셸과 나의 관계를 성적인 것으로 연관시키는 것이었다.


“나이 든 남자와 어린 소녀의 사랑이 그리 놀라울 것도 없지.”

“무사!”

나는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셸과 나는 아버지와 딸과 같은 관계일 뿐이에요. 우리는 그렇게 순수한데 왜 무사마저 그렇게 보는 거죠?”

내가 화가 나서 외치니 무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미지


잠자던 한밤의 다급한 노크.

황혼 무렵 낯선 역에 내린 여행자의 눈빛.

우연한 오후 네게 드러난

비둘기의 목을 찢는 매의 발톱.

어둠, 반백의 어둠, 칠흑의 어둠.

네 이마 위에 떨어지는

한 방울 정체 모를 차가움.

붉은 피의 살저미는 아픔.

구릿빛 눈동자의 녹슨 고통.

이 모든 것들을

눈을 감고 손을 뻗어

느낄 준비가 되었는지?

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