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슬라비아*에서 온 스니샤라고 하는 이민자가 도예반에 나타났다. 스웨덴 여자 친구와 동거하고 있다고 하는 그는 일견 보기에도 멋과 감각이 넘치는 듯한 아름다움과 상냥함이 있었다. 몹시도 수다스럽고 누구와도 잘 어울렸던 그는 이민자반에서 스웨덴어를 배우면서 스웨덴인들과도 곧잘 어울려 두 그룹 어디에서나 환영받곤 했다.
그는 세르비아 출신이었는데 내전이 일어나기 6개월 전 스웨덴에 왔었고 그 후 지금까지 내전 때문에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조각가라고 하는 그는 손재주가 좋아 도예반에서 무척 인기를 끌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계피과자 굽기 대회가 열렸다. 학생 전체가 다섯 그룹으로 나눠져 계피가루를 반죽한 밀가루로 과자집을 만들었다. 밀가루를 밀어 평평하게 펴서 칼로 벽 모양과 지붕, 창 틀 등을 오려 내어 그것을 오븐에다 구웠다. 그리고는 설탕을 녹여 끈적끈적하게 만들어 놓은 후 구워진 조각들을 붙여 집을 만들어 나갔다. 그 위에다 생크림과 초콜릿, 솜, 사탕 등으로 장식을 해서 내놓으니 훌륭한 과자집이 생겼다.
우리 팀은 단순한 집을 지어 빨리 마쳤기에 그걸 학교 식당에다 전시해 두고 다른 팀의 작업을 구경하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스니샤가 있는 팀은 특이하게 교회를 짓고 있었다. 워낙 잔손질이 많이 필요한 독특한 형태여서 늦도록 끝이 나지 않았다. 스니샤가 작업한 곳이 우리 기숙사 주방이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후에도 열심히 교회를 짓는 그의 솜씨에 감탄하며 그와 얘기를 나누었다.
“스니샤는 세르비아말로 작은 아들이란 뜻이에요.”
“그 이름이 스니샤에게 꼭 어울려요.”
상냥하고 스스럼없는 그와 곧 많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내게 잘해준 사람에게는 두 배로 잘해 주고 내게 해롭게 한 사람에게는 당할 때는 가만있다가 그 후에 꼭 두 배로 되갚아줘요.” 스니샤가 말했다.
나는 세련된 도시풍의 깍쟁이로 보이는 그의 말에 속으로 웃음 지었다.
늦게서야 작업을 마친 스니샤가 종이에다 그림을 그리며 자신이 전시한 적이 있는 조각 작품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하나는 사람의 흉상에다 얼굴 부분에 둥그렇게 구멍을 뚫어 놓은 그림이었다.
“이게 뭐예요?”
“이건 거울을 붙여놓은 거예요. 가까이 비쳐진 부분만 확대되는 거울을 흉상의 얼굴 부분에 붙여 놓으면 사람들이 거울을 들여다보며 일그러진 자신의 모습을 보게 돼요. 제목을 자화상이라고 붙였어요. 그 거울 속에 비치는 대로 때로는 코가, 때로는 입이 커다랗게 일그러진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거죠.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동그란 구멍이 앞에 뚫린 정육면체예요. 그 속으로 관람객들이 손을 짚어넣도록 만들어졌어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맨 처음 단단하고 매끄러운 돌을 만지게 돼요. 그리고 또 한 겹 안쪽에는 까칠까칠한 감촉의 천을 놓았어요. 맨 안쪽을 더듬으면 거기에는 삶은 스파게티가 만져지지요. 사람들은 움찔해서 놀라 손을 빼곤 했어요. 눈이 아닌 촉감으로 사물의 세계를 경험해 보는 과정을 예술 작품으로 만든 거지요. 그 예기치 못한 움찔함이 내가 노린 것이에요. 안이한 감각의 일상성에 젖어 있는 사람들의 감각을 일깨워 주자는 것이지요.”
나는 스니샤가 정말 예술가로구나 하는 감탄을 갖고 얘기를 들었다.
그 후 도예실에서 본 스니샤의 조그만 인물상들은 총을 맞고 가슴이 뚫린 채로 죽어 넘어지는 젊은이와 하늘을 향해 일그러진 표정으로 비탄에 잠긴 여인의 모습을 진흙으로 빚은 것이었다. 절규하는 듯한 그 인물상들의 표정을 보며 나는 항상 명랑하고 다정한 스니샤가 자신의 조국의 운명에 대해 얼마나 가슴 아파하고 있는 지를 볼 수 있었다. 친구와 친구가 적이 되어 서로의 가슴을 총으로 꿰뚫는 조국. 먼 이국의 평온 속에서 조국의 피흘림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자신.
물고기
먹이를 삼킨
물고기가 보여주는 고요함
차가운 피를
잔잔히 유동시키며
눈을 감고 끄떡도 않는
그 고요함을 보셨나요?
꼬리가 잘린 지렁이는
죽은 숨 고르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요
손톱 밑만 살짝 건들려도
그렇게 아픈데..
고요함은
쳐다보기만 해도
내가 돌로 굳어져 버리는
메두사의 머리로
입 벌리고
미동도 않은 채
움직이는 것들을
낚아채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