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트레아에서 온 미케엘이 한국에서 온 입양아 한 명을 알고 있다고 했다. 친구랑 함께 쓰는 아파트가 예테보리에 있는데 내가 원하면 예테보리에 함께 가서 캐롤린이라는 그 여자를 만나게 해 주겠다고 했다. 나는 기뻐서 당장 소개해줄 것을 그에게 부탁했다.
근 한 달 만에 처음으로 그레베스타드를 떠나 예테보리로 향했다. 미케엘과 함께였다.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미케엘은 곧 캐롤린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는데, 없는가 봐.”
사실 학교에서 이미 캐롤린에게 연락을 해서 약속을 잡아 놓도록 부탁을 했었는데 이제야 연락하는 것이었다. 무작정 미케엘을 따라 예테보리로 오면서 캐롤린을 만나리라 확신했던 나의 무모함과 그의 불성실에 화가 났다. 결국 그날 밤 캐롤린은 만나지 못하고 미케엘과 단 둘이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
간단하게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은 후 그는 비디오를 보자고 했다. 근처 비디오 대여점에 가서 ‘새엄마는 외계인’과 ‘장미의 비밀’이라는 비디오를 빌렸다. 먼저 ‘새엄마는 외계인’을 보았다. ‘장미의 비밀’은 제목에서 풍기던 냄새대로 포르노 영화였다. 호기심과 함께 나는 당황하지 않은 척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 말도 않고 영화를 봤다. 남녀 간의 성행위가 끝나자 여자들 사이의 동성애 장면이 나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성이라는 것이 구질구질하고 역겹게 느껴졌다.
“나 그만 가서 잘래.” 하고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이미 방은 내가 쓰기로, 거실은 미케엘이 쓰기로 합의를 본 후였다. 문을 잠그려 하니 전화선 줄이 걸려 있어 잠글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전화를 바깥에 내어 놓고 문을 잠그려고 하니 미케엘이 내가 너무 과민반응을 보인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재미있다며 자꾸 같이 비디오를 보자고 나오라는 것이다. 화를 내며 싫다고 하니 미케엘은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자기가 강요할 만큼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꾸 방으로 들어오려는 그를 내쫓아 문을 닫고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그는 거실에서 자고 있었다. 이불도 없이 추워 혼났다며 내게 투덜거렸다.
“어젯밤 나도 화가 몹시 났어.”
내가 이렇게 말하니 미케엘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결국 화해하고는 바깥으로 나가 버스역으로 향했다.
걸어서 역까지 가는 도중에 예테보리 시내를 구경하고 가는 것이 어떠냐고 해서 그가 이끄는 대로 상점가를 돌아보았다. 나는 박물관이나 공원이 보고 싶다고 했는데 그는 백화점으로 이끌며 자랑스레 휘황찬란한 상품들을 구경시키는 것이었다.
어느 상가 앞에서 나는 동양인들이 떼 지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같은 동양인이라는 것이 반갑기만 해 어디서 왔는지를 영어로 물어보았다. 그들은 대답은 하지 않고 멀뚱히 나와 미케엘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자기들끼리 무어라고 하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한국말이었다. 나는 반가워서 나도 한국에서 왔다고 소리쳤다.
모두 왁자지껄 다가와서 인사를 나눠 보니 그분들은 스웨덴 공장에 연수 나온 우리나라 선박 관련 업체 직원들이었다. 여러 달 만에 처음 보는 한국 사람들이라 반갑기만 했다. 같이 커피를 마시는 중에 어떤 분이 미케엘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 아가씨. 데리고 다니려면 잘 생긴 백인이나 데리고 다니지 왜 이런 깜둥이와 어울려 다녀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미케엘은 자기를 보고 웃는 사람들에게 마주 웃었다.
“못 알아듣는다고 막말하지 마세요!”
나는 그 말에서 스웨덴 사람들보다 더 심한 우리의 인종차별을 느낄 수 있었다. 화가 나기도 했지만 흑인들을 깜둥이라고 면전에서 비웃으며 막말하는 배타적인 모습이 슬펐다.
그들과 헤어지고 나서 미케엘이 버스역까지 데려다줬다. 그분들은 헤어지며 내게 몸조심하라고 웃으며 당부하였다.
“스웨덴 같은 나라에선 몸 버리기 십상 아니에요?”
웃으며 그렇게 던지는 한마디 당부가 전혀 고맙지가 않고 씁쓸하기만 했다.
돌
네가 쉽게 믿은 가슴이
그만큼 쉽게
너를 저버릴 때
네 눈이 문득
애처로워 뵌다
그때
마음은 얇게 살얼음이 낀
초겨울 냇가
네 앞에 서는 사람마다
주먹 가득 쥔 돌을
너는 본다
결국
믿어야 할 가슴은
단단할수록 안심하여
건너가는
숱한 발자국 지닌
네 가슴뿐이라는 걸 새기며
누가 무엇을
너무 쉽게
잃어버린 것인지
알지 못한 채
네 손에 한 줌
돌이 쥐어져 있다
또 다른 살얼음에
조심스레 던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