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스러움에 대하여

by 선향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에서는 'Shame'이라는 말이 계속 나와. 악령들의 왕인 귀마가 케이팝 헌터인 루미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이 있어.


"내 문양을 가진 헌터가 있는데 그 애를 조종할 수가 없어."

악령인 남자주인공 진우는 이렇게 답하지.

"잘 됐네요. 그건 그 애도 shame이 있다는 거니까. 그게 뭔지 알아내서 그걸 이용해 걔뿐 아니라 헌터 모두를 궤멸할 겁니다."


영화 전체에 이 shame이라는 말이 나와. 루미의 경우 반은 악령인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몸에 있는 보라색 문양이 그녀의 쉐임이야.


악령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거라는 루미에게 진우는 또 이렇게 얘기해.


"그렇게 생각해? 악령은 느끼고 또 느껴. 수치 (shame)와 비참함(misury)에 빠져 있지. 귀마는 그거로 우릴 조종해. 넌 귀마의 목소리가 안 들려?"

"뭔 소리야?"

"넌 좋겠다. 난 처음 들었던 그때를 잊을 수가 없어."


이 내용을 곱씹으며 shame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았어. shame은 수치심, 부끄러움, 창피함을 의미하고 애석한 일, 안타까운 일이라는 뜻으로도 쓰여. 이 영화에서 shame은 수치스러운 마음, 숨기고 가리고 싶은 취약함, 세상에 드러내기에 떳떳하지 못한 부끄럽고 창피한 사실과 그 상황을 가리고 싶은 마음으로 표현이 되고 있어. 루미에게는 반은 악령인 자신의 정체성이 그리고 진우에게는 가족을 버린 자신의 과거가 수치와 비참함을 느끼게 만드는 근원이 되고 있어.


이런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숨기고 싶은 일면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들이 있을까? 세상천지에 떳떳하고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나에게도 여러 개의 수치스러운 마음과 가리고 싶고 숨기고 싶은 면들이 있어.


돌아보니 이런 수치스러움이 강하게 들었던 최초의 기억은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아. 교실에서 자리를 옮길 때 미처 내 자리로 옮기지 못한 떨어지고 누런 내 실내화를 앞자리에 앉은 남자애가 '이게 뭐야?'하며 내게 건네줬을 때야. 그 남자애는 시내에 사는 깔끔한 옷차림을 한 애였고 나는 시내 접경의 시골 마을에 사는 가난한 농사꾼 딸이었지. '이게 뭐야?' 하는데 '이 더럽고 구질구질한 건 뭐야?' 이렇게 느껴졌어. 스스로가 부족하고 덜떨어지고 뭔가 지저분한 존재로 분류되는 참 이상한 기분이었어. 그때 나는 농사꾼 딸이라는 내 근본을 부끄러워했던 걸까?


살면서 나의 뭔가를 부끄러워하고 그걸 가리고 포장하려는 시도가 여러 번 있었던 것 같아. 1991년에 스웨덴에 어학연수를 갔을 때 스웨덴어 선생님이 첫 만남에 던진 스웨덴어를 배운 지 얼마나 되냐는 질문에 나는 6개월이 되었다고 대답했어. 사실 대학교 3학년 2학기 정도였으니 '2년 반을 배웠어요'라고 답해야 했지. 순간적으로 나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 스웨덴어를 배운지 2년 반이나 되었으나 더듬거리며 그 정도밖에 말하지 못했던 내가 창피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 그 후 그 선생님을 볼 때마다 뱀 앞에 얼어붙은 개구리처럼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했지.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은 가리고 가릴 때 또 다른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낳으니까.


무언가 자신에 대해 창피해하고 부끄러워함, 그리고 그걸 가리려는 마음, 그에 따른 수치스러움, 좌절감,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자기 비하, 결핍감, 이런 연쇄적이고 복합적인 마음이 shame 일 거야. 내 일생에도 이런 수치스러움이 상당량 내재되어 있었어. 어릴 적에는 시골과 도시 접경에서 자란 시골 아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영어에 대한 열등감을 가진 채 원어민들과 일해야 했던 업무 환경이 끊임없이 나의 부족함을 상기시키고 나에게 수치스러움을 상기시켜 주었던 것 같아.


너에게도 너의 수치스러움이 있어. 너의 부족하고 연약한 면들이 네가 가리고 싶고 숨기고 싶은 너의 문양들일 거야. 케데헌 영화 속 악령들의 얼굴은 스스로의 수치스러움과 비참함에 잠기고 잠기다 귀마에게 잡혀 먹어버린 일그러진 우리들의 모습이야.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라는 책에서는 결핍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며, 특히 선택과 의사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쳐 때로 비합리적인 판단과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해. 결핍이 있으면 제대로 사고하고 판단하지 못하고 인지적으로 장기적인 계획이나 중요한 결정에 소홀하게 되고 단기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하게 만든다고 하네.


수치스러움은 결핍에서 비롯되지. 수치와 결핍과 비참은 세상을 왜곡되고 비틀어서 보게 만드는 오목렌즈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아. 그런 감정으로 살아가는 것에 지치면서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있는 그대로의 나로 온전히 살고 싶다는 소망이 커져가고 있어.


귀마와의 마지막 결투 장면에서 루미는 있는 그대로의 온전한 자신을 받아들이는데 그 존재는 수치와 결핍이 아예 없었던 완전함이 아니라, 수치와 결핍도 자신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인 온전함을 갖추게 되었어. 엄마에게 엄마 스스로 받아들여야 할 수치감과 부끄러운 면들이 있듯 너에게도 네가 받아들이고 언젠가는 떳떳하게 드러내야 할 너의 수치스러움이 있을 거야.


너 스스로를 너무 약하고 비참한 존재로 생각하지 말기를 바래. 우리의 목소리에도 힘이 있고 루미처럼 우리도 우리의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힘이 있는 존재들이니까. 부끄럽고 가리고 싶은 부분을 진정으로 받아들여갈 때 우리에게 그 힘이 주어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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