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5법칙_더 나은 세상을 선택한다

바샤가 전해주는 삶의 작동 매뉴얼 31화

by 선향

질문자: 제가 궁금한 점은 아동 학대나 전쟁 같은 일이 일어나는 이유입니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갑자기 충격적인 일을 겪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요. 이에 대한 당신의 관점이 궁금합니다.


바샤: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 이유를 여러 가지 들 수 있지만,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영혼들은 특정한 경험을 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어려운 상황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도 그것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이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중요한 교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고통이 다른 이들에게 현실을 돌아보게 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태어나면 의식이 나누어지면서 부모의 두려움과 부정적인 신념이 자녀에게 무의식적으로 전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신념 때문에 아이는 성장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부정적인 경험을 끌어당길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사건들은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은 신념을 깨닫고 변화할 기회를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은 특정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들을 통해 변화할 수 있다면, 그 고통이 긍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반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같은 상황을 반복한다면, 스스로 그 고통의 악순환 속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전쟁이나 학대 같은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이 ‘무력함’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힘이 없다고 배워 왔고, 그러한 믿음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폭력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조차 왜곡된 형태로 배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방식인 파괴적인 방법으로 타인과 연결되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우리에게 인간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를 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피해자가 되는 대신, 그 원인을 이해하고 변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런 일들은 매우 일시적인 것입니다. 마치 나쁜 꿈을 꾸다가 깨어났을 때 ‘아, 꿈이었구나’ 하고 안도하는 것처럼, 우리가 죽고 나면 물리적인 현실에서의 경험도 그런 느낌일 것입니다. 당신이 죽고 영으로 돌아갈 때, 그것은 마치 이렇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 물리적 현실은 그냥 잠깐 동안의 나쁜 꿈이었을 뿐이야." 그것이 진정한 나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죠.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어떤 존재들은 자신이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세상 속에서 물리적인 삶을 경험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결코 영구적인 것이 아니며,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물리적인 마음과 더 높은 자아는 그 어려움을 실제로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혼은 그러한 경험조차도 긍정적인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이런 경험들이 세상에 하나의 사례로 제시되어 "이런 현실이 계속되는 것이 싫다면, 그것을 바꾸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현재 이 세계는 부정적인 사이클의 거의 끝에 도달해 있습니다. 즉, 부정적인 현실을 경험할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것은, 그 모든 부정적인 요소를 빠르게 표면으로 끌어올려 정리하고, 여러분의 세계가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힘을 빼앗겼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힘을 가졌음’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더 빠르게, 더 깊이 치유될 것입니다."_바샤의 말



앞으로 20년 후 우리는 어떤 세상을 경험하게 될까요? 지금의 문제가 더욱 심화되어 세계 곳곳에 더 많은 전쟁이 일어나고 극소수가 대부분의 자산을 차지하고 다수는 점점 더 가난해지는 세상을 보게 될까요? 아니면 어떤 돌파구가 마련되어 평화와 협력이 기본이 되고 모두에게 사회적 안전망이 마련되어 경제적 불평등이 사라져가는 세상에서 살고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떤 세상을 꿈꾸시나요?


이 와중에 들은 바샤의 말은 희망적입니다. 현재 이 세계는 부정적인 사이클의 거의 끝에 도달해있다고 하네요. 내가 불러오고 싶은 세상은 모두가 자신의 힘을 자각하고 모두가 풍요로움을 느끼는 세상입니다. 이 말을 딸에게 했더니 딸은 가슴이 답답한가 봅니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영성적 믿음이 무슨 수로 바꾸냐고 불만스런 의문을 제기합니다.


토론 끝에 우리가 내린 결론은 이러합니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심화된 모습은 인간의 본성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으며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때 사회 전체의 공적 이익에도 기여한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 우리가 경험하는 자본주의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부의 크기가 결정되는 것이 당연하고, 손해보는 것을 참을 수 없어하며, 부자가 되는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무능력과 무지 때문이라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의 실험도, 북구식 복지제도에 기반한 사회주의의 실천도 인간의 본성을 생각해볼 때 적합한 대안인지 의심스러워합니다.


이 자본주의적 시스템이 한계에 다다른 것은 눈에 보이는데 그 다음에 무엇이 올 것인지, 다음 세상의 패러다임은 무엇일지 아직 명확한 대안이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입니다. 영성적 믿음은 이때 새로운 틀을 제공하는 기본 바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인간의 이기주의를 기본 바탕의 믿음으로 하고 있다면 이기주의를 넘어선 인간의 사랑, 봉사, 관용을 기본 바탕으로 하는 믿음으로의 전환을 통해 우리는 다음 세상의 대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 '콘클라베'에서 견고한 종교 시스템에 폭탄 테러를 통해 틈이 벌어지자 사랑과 인류애, 봉사와 관용을 상징하는 새로운 대안이 제시된 것과 같은 수준의 '순수한 소망'입니다.


바샤는 말합니다. 이제 "이런 현실이 계속되는 것이 싫다면, 그것을 바꾸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충분한 메시지를 받은 시점이 되었다구요. 정치, 경제, 종교 등 사회의 견고한 시스템이 내부 붕괴를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이런 현실이 계속되는 것이 싫어 그것을 바꾸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결심을 할 때 이루어집니다. 양극화된 자본주의의 대안은 무엇일까요? 획일화된 종교와 정치를 대체할 수단은 무엇일까요?


아인슈타인은 말했습니다. "문제는 그 문제를 만든 의식수준에서는 풀 수가 없다." 인류의 믿음은 변화를 거듭해왔습니다. 자본주의와 능력주의 이전에는 봉건제도와 신분주의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절대적 믿음이었습니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었듯 자본주의의 기본이 된 인본주의와 영리주의의 의식수준을 넘어서는 의식 수준의 상승과 확장에 그 답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20240528_075717.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