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샤가 들려주는 삶의 작동 매뉴얼_34화
질문자: 바깥의 무언가가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바샤: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바깥"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여러분의 의식 안에서 발생합니다. 여러분은 이해하시나요?
질문자: 그러니까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건가요?
바샤: 그렇습니다. 존재할 수 있는 "바깥"이란 없습니다. 여러분의 의식 외부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질문자: 그러면 모든 것이 제 의식 안에 있다는 건가요?
바샤: 네, 모든 것이 여러분의 의식 안에 있습니다.
질문자: 그럼, 예를 들어 자연은요? 자연 속에 있을 때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그건 왜 그런가요?
바샤: 자연은 여러분의 본연의 상태와 더 조화를 이루는 주파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연은 여러분이 자신의 자연스러운 진동과 더욱 조화를 이루도록 돕는 '허가증' 역할을 하며, 그럴 때 여러분은 정말 좋은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질문자: 이해했어요. 그런데 부정적인 것들이 외부에서 올 때는요?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생길 때, 기분이 나빠져요.
바샤: 여러분이 기분이 나쁜 이유는, 그 상황과의 관계를 부정적인 방식으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 상황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면, 기분이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감정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기분이 나쁘다"고 인정하세요. 그다음, "왜 기분이 나쁠까?"라고 자문해 보세요. "내가 이 상황과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정의해야 이 감정을 느낄까?"라고 말이죠. 왜냐하면 모든 감정은 반드시 먼저 존재하는 믿음(신념)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여러분이 나쁜 감정을 느낀다면, 그 감정을 인정한 후 "나는 이 감정을 선호하는가?"라고 자문해 보세요. "아니, 나는 기쁨을 느끼고 싶어"라고 생각했다면, 다음 질문을 던지세요. "그럼 내가 왜 이런 나쁜 감정을 느꼈을까?" "모든 감정은 믿음에서 온다고 했지. 그렇다면 내 믿음은 무엇일까?" "이 상황과의 관계에서 내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이 감정을 느낄까?"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탐구하면서 여러분이 가진 믿음을 발견하고, 그 믿음을 형성한 이유를 이해하고, 그 믿음을 바꿔서 더 나은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질문자: 저도 그렇게 해보려고 했어요. 하지만 쉽지 않더라고요.
바샤: 그것 또한 하나의 믿음입니다. 그러니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하세요. "나는 왜 '이것이 쉽지 않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까?" 여러분은 항상 더 깊이 질문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어렵다고 느끼고 있어." 그렇다면 "왜 나는 이것을 어렵다고 믿을까?"라고 질문해 보세요. 이런 식으로 탐구를 계속하다 보면, 결국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믿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질문자: 하지만 그건 믿음이 아니라 경험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바샤: 아닙니다. 경험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여러분이 어떤 경험을 했고, 그래서 그렇게 느낀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믿음이 먼저 존재했고, 그 믿음이 경험을 창조한 것입니다. 그 경험이 다시 믿음을 강화할 수는 있지만, 믿음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믿음에는 자기 스스로를 강화하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특정한 믿음을 가지면, 그 믿음이 마치 유일한 진실인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경험을 통해 믿음을 강화하는 것이지, 경험 자체가 믿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은 경험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되돌아볼 수 있고, 그 믿음이 원래 무엇이었는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질문자: 네, 이해는 가요. 그런데 제 남편이 저에게 이런 방식으로 사고하라고 하면 문제가 생겨요.
바샤: 왜 그것을 '문제'라고 정의하시나요?
질문자: 왜냐하면, 그건 외부에서 오는 것이니까요.
바샤: 외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그렇게 느끼기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말하든, 여러분은 여전히 웃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을 때리더라도, 여러분은 어떻게 느낄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즉, 여러분이 감정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기분이 나쁘다면, "왜 나는 이렇게 느끼기로 선택했을까?"라고 질문해 보세요.이 질문이 여러분을 믿음과 연결해 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택할 수 있는 감정은 무한합니다. 따라서 "나는 왜 이런 감정을 선택하고 있는가?"를 탐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질문자: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바샤: 저희도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스스로를 더욱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_ 바샤와의 답변
바샤가 종종 하는 말 중에 '당신은 당신이 경험하는 현실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눈 앞의 공간을 빙 둘러 봅니다. 그러니까 나는 이 공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 공간 자체이고 그걸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죠. 모든 것이 의식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식의 알아차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높은 산에 올라가서 눈 닿는 곳까지 바라보며 저기 저 건물도 나야, 내 의식의 표현이야, 저기 저 산도 나야, 내 의식이 저만큼 가 있네, 저기 꽃도 나야, 꽃을 피워 내게 보여주고 있네, 저기 저 사람도 내 의식이 인지하는 저 사람의 아이콘이야,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해도 될까요?
눈 닿는 곳까지의 공간이 모두 다 나라는 인식은 조금 낯설고 이상하게도 느껴지지만 나를 확장된 의식으로 이끄는 안내선이자 모두가 연결되었음을 알게하는 '허가증' 역할을 해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바샤에 따르면 깨달음이란 가벼워지는 것이고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으며 모든 것이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라니까요.
이렇게 내 눈 앞에 펼쳐지는 공간, 그리고 이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내 의식이 만들어내고 내 의식이 경험하는 일이라면 바샤의 말대로 '바깥'이란 없는 법이겠죠. 모든 것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내 안에서 벌어지는 이 세계의 사건들과 상황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가 않습니다. 핵무기도, 트럼프도, 오늘 아침 날씨도, 직장 상사의 심기, 경제상황과 우리 회사의 매출도 내 세계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지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니까요. 사실 여기에서 내 역할은 사실상 '만들어내고 결정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당하고 견디고' 있는 쪽에 가까워 보이니까요. 창조자라기 보다는 피창조자, 피해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바샤는 실제로는 믿음이 면저 존재하고 그 믿음이 경험을 창조한다는 말을 합니다. 그 말을 내 현실에 대입해보면 내가 피창조자, 피해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는 믿음체계를 가지고 있기에 그에 상응하는 현실을 창조하고 그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바샤는 꾸준히 알려 줍니다. 피해자 의식을 가지는 것 또한 나 스스로 그렇게 느끼기로 선택한 일이라구요. 저는 항상 주인공이 신분이 낮은 보잘것 없는 존재로 취급 받으며 온갖 고난을 겪으나 나중에 알고 보면 원래 아주 고귀한 존재였음이 밝혀지는 판타지 소설에 끌리는 성향이 있더라구요. 약자이자 피해자라는 믿음체계를 스스로 선택한 것은 내 원래 존재가 아주 힘이 세고 자유롭고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깨닿기 위한 장치일까요?
내 세계에 일어나는 일들과 나의 반응을 살펴봅니다. 나는 어떤 존재로 나를 경험하고 있는가? 나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이 감정을 느낄까? 내 세계를 이렇게 경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인생이 소설이라면 '기승전'까지는 와 있겠지요. 클라이막스는 내 신분이 밝혀지고 내가 본래 어떤 존재임을 알아차리는 전개임을 희망합니다. 나의 선택은 나를 제대로 알고 피해자인 노예가 아닌 고귀한 주인이자 창조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