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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도니 Jun 19. 2023

물 불 흙 공기 그리고 당신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요즘만큼 좋을 때도 없다. 재미있는 영화가 줄줄이 개봉하고 개봉 예정되어 있다. 물론 영화표가 터무니없이 비싸진 건 할많하않. 요 한 달간 5편의 영화를 봤다. <인어공주 (The Little Mermaid, 2023)>,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Guardians of the Galaxy Volume 3, 2023)>, <플래시(The Flash, 2023)> 그리고 <엘리멘탈(Elemental, 2023)>. 이렇게 하면 총 네 편 본 셈인데, 여기에 두 번 본 영화가 있으니, 바로 <엘리멘탈(Elemental, 2023)>.(*내용 중 스포가 있습니다.)

<엘리멘탈> 한 편은 롯데시네마에서 봤다

영화는 제목처럼 4 원소를 물, 불, 흙, 공기를 캐릭터로 한다. 이민자 아니 이민 원소들의 도시 엘리멘트 시티, 주인공 앰버는 불의 원소로 엘리멘트 시티에 정착한 파이어랜드 출신의 이민 2세대이다. 앰버는 가족과 도시의 외각의 파이어 타운에 살면서 가족과 함께 식료품점, 파이어플레이스를 운영한다. 한편 웨이드는 물 원소로 엘리멘트 시티의 상류층 가정에서 자라 현재는 시청 조사관으로 일한다. 때는 파이어플레이스의 세일날, 앰버가 침착함을 잃는 바람에 수도관을 터트리게 되고 인근에서 누수를 조사하던 웨이드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이 영화의 기막힌 점은 캐릭터 각 원소들의 물리적인 특징과 특정 인종의 문화적 특징이 모두 표현되어 있는 점이다.

<엘리멘탈> 영화 스틸컷.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

주인공 엠버는 불 원소라 화가 많다(lose one’s temper). 문화적으로는 아시아계와 히스패닉을 합쳐놓았는데, 불 원소들이 모여 사는 모습은 한인타운, 차이니즈 타운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아시아계 이민 2세대들이 진로 때문에 부모님과 반목하는 점도. 웨이드는 눈물이 많고, 다른 사람들 아니 원소들의 마음을 잘 이끌어낸다. 영화는 네 원소들 중 특히 물과 불의 캐미스트리, 웨이드와 앰버에 포커스를 맞춘다.


앞서 내가 두 번 봤다고 했는데, 처음 본 날은 눈물, 콧물 다 흘렸고 두 번째 볼 때는 눈물만 흘려 나름 선방(?)했다. (나만 우는 게 아니다. 옆자리를 흘깃 봤는데 다들 훌쩍거렸다.) 우리는 뭐 때문에 원소들의 희로애락에 이토록 이입했을까.


둘은 화를 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앰버는 자신의 화내는 성격에 비관적이다. 그도 그럴 듯 이 모든 일을 벌어진 이유도 앰버의 화 때문이니. 그러나 웨이드의 생각은 좀 다르다. 화를 내는 게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며, 자기는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지 못했을 때 화를 내는 것 같다고 말한다. 사실 앰버도 그랬다. 가업을 물려받길 원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게 부모님의 헌신에 보답하는 거라 생각하는 딸. 앰버는 부모님의 뜻과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게 당신들을 실망시킬까 봐 파이어플레이스를 물려받기를 원하는 게 자신의 욕망이라 믿었다. 웨이드는 그런 앰버에게 자신을 긍정하고 부모님께 솔직해지길 바랐다. 결국 갈등의 해결도 앰버가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부모님께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가능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이 영화를 두 번이나 본 것도 이런 이유에서 였나보다. ; 내 모습이 오롯이 수용되고 긍정되는 것에 대한 간접 경험.


서울, 이곳은 다양한 연고를 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라 어쩌다 보니 서울에 살고 있다. 서울살이도 2년 차에 접어들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이 도시와 나는 캐미가 좋을까? 그냥 부산에 사는 게 좋은 게 아닐까? 나는 점보는 걸 좋아해서 가끔 점을 보러 가는데(사주든 타로든 뭐든), 갈 때마다 꼭 묻어보는 게 있다. 서울이 저랑 잘 어울리나요? 서울이라는 도시가 나를 수용하고 있는지가 의문. 아직까지는 그렇다고 했다.


친구들은 보통 홀홀 단신으로 서울에 살거나 서울 이주 2세대가 많다. 내 주위엔 부모님까지 서울사람인 순혈들은 별로 없다. 그렇게 인구 5000만 남한, 미국의 한 주보다 좁은 나라에서 각 지방 출신들이 이곳 서울에서 부대끼며 살고 있다. 영화 속 은유를 차용하자면, 각 지방에서 온 소시민들이 개별의 원소가 되어 이 도시를 아름답게 하고 있는 거다.


최근에서야 내가 어떤 원소인지, 아니 어떤 사람인지 파악되기 시작했다. 아래는 최근 들어 나에 대해 알아낸 사실이다.

간섭받기 싫어한다.

외향적이지만 정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귀여운 걸 좋아한다.

숨김없는 게 좋다.

사람들한테서 늘 멋진 점을 발견하려고 한다.

확신의 ENTJ.


서른이 넘어 이제야 알았냐 싶기도 하지만, 혼자 살면서 사회 생활 하기 전까지는 나도 내 이런 모습을 알 수가 없었다. 작년이 나라는 원소의 특징을 파악하는 시간이었다면 올 해는 이 도시의 다양한 원소들을 파악해 볼 차례. 서울의 다양한 원소들과 어떤 캐미스트리를 이루고 살지를 생각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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