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사이버 펑크 장르를 좋아했다. 그런 내가 왜 최근에야 1) 공각기동대를 봤는지는 의문이다. 중학생 때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해 에반게리온(Neon Genesis Evangelion, 1995-1996)을 몇 번이나 보고, 고등학생 때는 야자를 하고 달려와 건담 시드(Mobile Suit Gundam SEED, 2002-2003)와 건담 시드 데스티니(Mobile Suit Gundam SEED DESTINY,2004-2005)를 보는 게 낙이었다. 에반게리온과 건담을 좋아했다니 메카닉물을 좋아하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러기엔 아키라(Akira, 1988), 블랙미러(Black Mirror, 2011-), 디스트릭트 9(District9, 2009)그리고 2) 매트릭스도 재미있게 봤다.
사이버 펑크는 과학 기술이 고도로 발전된 사회를 작품의 배경으로 하며,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다음은 사이버 펑크물의 특징 몇 가지.
극도로 발전된 과학 기술이 되려 인간 문명을 파괴하는 것을 배경으로 한다. 많은 사이버 펑크물들의 세계관이 디스토피아적이며, 이 세계관의 극단에 있는 아포칼립스는 인류 멸망 이후를 배경으로 한다. 대부분의 블랙미러 시리즈들이 디스토피아적이며, 매드맥스는 아포칼립스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사이버 펑크물만의 특징적인 미학과 분위기 즉, 미장센이 있다. 어두운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화려한 네온사인, 빌딩숲과 복잡한 도시 구조물 그리고 그 사이로 내리는 비.
이런 장르물에는 과학 기술을 이용해 가상현실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다. 매트릭스 속 네오는 매트릭스와 현실 세계를 넘나 든다.
이제 과학 기술은 인간과 한 몸이 된다. 공각기동대의 모토코와 인형사는 인간일까 아니면 기계일까. 혹은 얼마까지 기계화된 인간을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 휴머노이드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주인공들은 반체제와 싸우며 이런 질문을 한다. 나는 누구인가.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잊은 그 질문 말이다.
내가 나라고 인식하고 있던 정보들이 나라는 사람의 자아 정체성을 확립한다. 영화의 초반부를 보면 아내에게 일방적으로 이혼통보를 받은 청소부가 나온다. 그러나 이는 청소부의 뇌가 해킹당해 자신이 유부남이라는 기억이 심어졌을 뿐 실은 독신남이다. 우리가 나라고 인식하는 그 수많은 기억들도 결국엔 신경의 전기, 화학적 신호일뿐이고 그 신호가 변형되면 나라는 자아도 달라지는 거다. 나라는 사람은 내 과거의 산물이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새롭게 코딩할 수 있다. 모코토는 인형사와 융합을 통해 새로운 인간이 되고, 청소부는 해킹에 의해서 새로운 자아를 갖게 된 것처럼. 우리는 매 순간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영화 매트릭스에서도 모든 것은 선택의 문제라고 말한다. 사르트르는 우리의 인생을 B(birth, 탄생)와 D(death, 죽음) 사이의 C(choice, 선택)로 정의하며, 우리의 존재는 매 순간 스스로 선택하고 정의해 나가는 과정에서 실존하게 된다고 했다. 우리의 연속적인 질문은 우리의 존재를 즉자로서 멈추지 않고 대자로서 실존하게 한다. 실존은 본질에 앞서니까. 나의 실존은 매 순간 내가 새롭게 정의하며, 무엇으로 정의 내릴지는 내가 선택한다.
영화 매트릭스를 보면 매트릭스 세상 속 인물들은 3) 스미스에 의해 흡수됨으로써 스미스들이 무한히 증식한다. 우리는 극도로 파편화된 세상에 살고 있지만, SNS 정보가 흡수된 개인은 무한한 스미스가 되어 개인척하는 대중이 된다. 그러나 내 4) 고스트는 스미스화 된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나비인 내가 장자의 꿈을 꾸는 게 아닐까. 모든 건 덧없지만, 내 날갯짓이 꽃가루를 옮기기도 하고 태풍을 몰아치게도 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봄날의 작은 날갯짓이고, 그게 운 좋게 다음 꽃을 맺게 하면 그만이지 않을까.
1) 공각기동대 :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내가 본 건 95년도 작품, Gost in the Shell
1. 공각기동대 (Ghost in the Shell, 1995)
2. 공각기동대: 이노센스 (Ghost in the Shell 2: Innocence, 2004)
3.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 (Ghost in the Shell: Stand Alone Complex, 2002-2003)
4.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 2nd GIG (2004-2005)
5. 공각기동대: Solid State Society (Ghost in the Shell: Stand Alone Complex - Solid State Society, 2006)
6. 공각기동대 ARISE (Ghost in the Shell: Arise, 2013-2014)
7. 공각기동대: SAC_2045 (Ghost in the Shell: SAC_2045, 2020)
2)매트릭스 : 총 네 개의 시리즈로 구성. 매트릭스 (The Matrix, 1999), 매트릭스 리로디드 (The Matrix Reloaded, 2003), 매트릭스 레볼루션 (The Matrix Revolutions, 2003), 매트릭스 리저렉션 (The Matrix Resurrections, 2021)
3) 스미스 : 영화 매트릭스에서 매트릭스 속에 존재하는 악당. 매트릭스 내의 다른 인물들에 흡수해 자신을 무한히 증식한다.
4) 고스트 : 영화 공각기동대에서 자아라는 개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