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돈도니 May 14. 2021

안녕 내 비대면 사부님!

일상 감상

안녕 내 비대면 사부님!

요즘 나는 인스타와 클럽하우스 그리고 암장(이건 현실 세계)에 산다. 현재 시각 오후 5시 32분, 설정에 들어가서 확인해보니 이 시각까지 인스타를 이용한 시간은 약 2시간쯤 된다. 아 우선 내 계정과 팔로워 분석이 먼저인가? 내 계정은 비공개 계정으로 팔로워 전부가 내 지인 및 친구들이다. 팔로워의 1/3은 같은 학과 사람들, 1/3은 클라이머 나머지는 오랜 친구들과 다른 경로로 알게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이야기는 내가 이들과 어떻게 비물질적 공간을 뛰어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뭐 내가 인스타에서 딱히 하는 게 있는 건 아니다. 친구들 클라이밍 영상을 보고, 스토리로 일상을 확인하고, 맛집을 알아본다. 그리고 테니스 선수가 서브를 받아치듯 나는 영상에 댓글을 남기고, 스토리에 답장을 보내고 맛집 링크를 친구에게 디엠한다. 오케이, 여기까진 세상으로 나온 컨텐츠를 받아치는 방식.

그리고 지금부터는 내가 세상에 컨텐츠를 내보내는 방법이다. 나는 주로 인스타에 스토리로 클라이밍 영상을 올린다. 안타깝게도 주로 실패 영상으로. 내용은 이렇다. ; 같은 무브를 한 달동안 하루 스무번 넘게했는데도 당최 늘지도 않는 것들, 아니면 다음 홀드를 잡기 위한 동작을 여러개 권유받은 다음 어떤 걸 주로 연습해 볼까하는 그런 것들...? 아무튼 클라이밍에 관해 고분분투하는 그런 영상을 올리는 셈이다. 이렇게 내가 서브를 넣어서 네트를 넘기면 인스타 속의 친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리턴을 한다.

문제의 실패 영상


우선 클라이머들은 내 실패영상을 분석해준다. "도니 너가 오른발이 터지는 이유는..." 이렇게 스토리에 디엠을 받고도 모자르면 가끔은 클럽하우스에서 새벽 늦게까지 이야기가 이어진다. 물론 클라이밍 수련 4개월차 들어선 클린이는 못 알아듣는 일이 하다하지만.... 그리고 학과 친구들과 다른 경로로 알게된 친구들은 나의 클라이밍 영상에 응원을 보내준다. 최근에 받은 디엠에선 학과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그 디엠은 지난 한달간 존버했던 문제를 풀어서 스토리에 올렸던 거였는데, "너가 해온 과정을 봐왔어서 멋지다. 축하해!" 취직하고 타지역으로 가버린 선배라 서로의 안부를 인스타로밖에 알 수 없지만 이렇게나마 연락이돼 응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고마운 일. 그리고 바로 어젠 해방촌에서 친해진 분으로부터 내 실패와 성공 영상을 보면서 힘을 얻는다는 디엠을 받았다!



얼마전까지만해도 sns란 누가 그랬듯이 시간 낭비에  쓸데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 가끔은 몇 시간이고 누워 인스타만 하는 게 일종의 길티 플래저처럼도느껴지기도. 그런데 지금 난 그 비물질적 세계로부터 물질적인 내가 에너지를 얻고있다! 애초에 우리가 누군가와 대면을 하면서 주고 받는 정보가 시청각적인 것인데, 동일한 방식으로 교류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다면 대면의 생생함은 덜해도 아쉬운대로 즐겁지 않나. 세상엔 영혼을 살찌우는 수 많은 사부님들이 계신다. 우린 침대에 누워서, 양치를 하면서 아니면 버스에서 이들과 대화 할 수 있다. 모던 라이프, 좋지아니한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