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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태공 Oct 13. 2023

콧물이 흐른다 샤랄라라라라~~~

코는 흐르고, 귀는 막히고. 대환장 파티

또 그 녀석들이 찾아와 괴롭히는 계절이 왔다. 

찬바람이 불면 어김없이 눈물이 줄줄, 콧물은 상시 대기 줄줄줄. 

과도하게 생성된 나의 콧물은 목 뒤로 넘어가 후비루 증상을 보이고 목에 이물감을 항상 느끼게 한다. 


그렇다. 나는 비염 환자다. 

1년 360일 콧물을 달고 사는 아주 심한 비염 증상을 앓고 있는 환자다. 

그럼 나머지 5일은 건강한가? 

아니다. 5일 정도는 과도하게 후각이 예민해져서 온갖 냄새를 맡고 힘들어한다. 

총체적 난국이다. 


그 증세는 특히나 뜨겁고 매운 음식을 먹을 때 매우 많이 심해져서 

다른 사람과 밥 먹을 일이 생기면 미리 코 안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신경을 마비시키고 식사를 했다. 

그마저도 안될 때가 있어서 한때는 대인기피증에 걸렸을 정도다.

그래서 20대가 될 때까지, 아니 20대가 되고도 한참을 나는 무척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이었다. 

(정말입니다 여러분. 믿어 주세요. 저의 원래 성격은 I 라구요.)


대학을 그만두고 그저 하루살이처럼 살다가, 문득 내 꿈을 찾아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비염이란 녀석이 엄청나게 큰 걸림돌이 되었다. 

회사 높으신 분과 밥을 먹는데 콧물이 줄줄 흘러 수시로 밖에 나가 휴지로 닦고 들어오고 

다시 나갔다 들어오고, 반복했더니 결국 그분이 식사를 마치시는 동안 난 꼴랑 두 수저도 제대로 뜨지 못했고,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현타가 왔다. 

그리고 그 회사를 그만뒀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비염치료 병원을 알아봤다. 

이비인후과에서는 수술 방법이 있긴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수술을 해도 몇 해 지나면 다시 비염이 생길 거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 나왔다. 

“아니, 이보시오 의사 양반.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이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의사 양반은 참 의사셨다. 

그래요. 수술비 몇 푼 벌 생각에 내 코를 뒤집지 않아 줘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땡큐~~~ 

그때 수술했으면 난 지금쯤 당신한테 쌍욕을 시전하고 있었을 거예요. 


이비인후과에서 처방해 준 약과 스프레이는 자꾸 코를 건조하게 했다. 

그렇다. 그냥 콧물 씨를 아주 말려버리는 약이다. 

“너를 다 말려 죽여 버리겠어!!!!”라고 단단히 각오를 한 듯 엄청난 기세로 말이다. 

코가 마르니 입도 마르고, 마른 코에서는 코피가 나고, 내 삶은 더 건조해졌다. 

아 젠장, 자꾸 킁킁대며 콧소리를 내는 아빠가 원망스러울 지경이다.

게다가 엄마를 닮아 찬바람을 맞으면 눈에서 눈물이 좔좔 흐르고, 공기가 차면 연거푸 재채기를 해대니, 왜 이런 안 좋은 건 다 나에게 물려줬나 싶다.  

(큰 키와 날씬한 몸매 유전자는 내 안에 없는 건가요...)


보다 못해 엄마가 서울에 잘한다고 소문난 한의원이 있다 카더라~~를 시전. 

팔랑거리는 귀로 단숨에 서울까지 날아가 진료를 받고 약을 받아왔다. 

그리고 강릉에서 서울까지 틈만 나면 올라가 치료를 받았다. 

화장에 가려져 잘 못 봤을 수도 있겠지만, 내 얼굴을 자세히 보면, 미간에 빨간 동그라미 흉터가 있다. 

이 흉터가 그때 비염 치료를 받으며 생긴 영광스럽지 못한 흉터다. 

왜 영광스럽지 못하냐. 그건 바로 비염이 완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꽤나 비싼 돈을 들여 6개월 정도 치료를 받았다. 

내 콧 속은 적당한 수분감으로 촉촉함을 한껏 뽐냈고, 밥 먹을 때도 한결 수월했다. 

단지 불편한 거라곤 얼굴에 생긴 거대한 땜빵 자국이 거슬리는 것, 그것 하나였다. 

비염만 고칠 수 있다면 이런 땜빵 따위, 열 개도 더 감당할 수 있습니다!!! 


치료가 끝나고 몇 달은 정말 콧물에서 자유로웠다. 

와, 이 분 정말 카더라가 맞았네. 명의였네. 허준이시네 허준!! 


그런데 망할 수험공부를 시작하면서 비염이 슬슬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행정법 교수님이 암기 방법을 알려주면서 앞글자만 따서 “비염불치”를 알려주셨다. 

아 맞네. 비염 불치병 맞네. 이번 생은 그른 건가. 


비염불치 암기법과 함께 교수님의 친구 썰을 하나 푸셨다. 

1. 교수님 친구분에게 비염이 아주아주 심한 딸이 있었다. 

2. 딸을 위해 고즈넉한 시골에 집을 얻어 살았는데 그곳이 개발되어 집값 폭등

3. 개발과 동시에 공기가 안 좋아져서 다시 다른 시골을 알아보고 이사

4. 그런데 그곳마저 개발되어 또 집값 폭등

5. 이젠 어디로 갈지 나도 좀 알려다오~~ 하신다며 

6. 첫 동네가 분당, 이사한 동네가 판교였다는 스토리 


강원도 두메산골로 들어가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될놈될이라더니, 나는 안 될 거야. 아마. 

생각해 보면 강원도 산골에 살 때는 비염이 이 정도로 심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면역력 저하와 공기질의 환장의 콜라보랄까. 


지도를 펼쳐놓고 개발 가능성이 있는 시골 중에 내가 어디로 가야 할까~~를 고민하기엔, 

인천에서 내가 이룩해 놓을 것들이 너무 많다. 

일을 벌여도 너무 많이 벌렸어!!!! ㅋㅋㅋ


이 놈의 병은 도대체 왜 대대로 유전되는 것인지, 딸도 비염 기미가 보인다. 

한의원에 체기가 있어 진료를 보는데 원장님이 대뜸 그러신다. 

"내가 오랜 세월 환자들을 보다 보니, 관상을 좀 보게 되는데요. 

환자분은 비염이 있으시네요. 맞죠?"


아니, 어떻게 알았지. 


"비염 환자들이 대체로 코가 불편해서 입으로 숨을 쉬니까 입술이 건조해요. 

입술에 아무리 발라도 건조해요. 그렇죠? 얼굴 보면 딱 나와요."

오~~~~~~~~~ 일리 있어. 그럴듯해. 

원장님의 연륜과 지혜에 감탄해 한 달 치 약을 결제하고야 말았다. 


이번에 치료받아보고 효과 있으면 딸 약도 지어줘야지. 

그러려면 일하자 일. 돈 벌자 돈!! 

일해라 인간~~~~~ 


안타깝게도 앞선 두 번의 치료 모두 비염을 완치시키진 못했다. 

최근 비염 증세가 너무 심해서 귀까지 영향이 왔다. 

비행기를 타거나 엘리베이터를 타면 귀가 먹먹해지는 것과 같은 증상이 양쪽 귀에 계속된다. 

아이 감기 진료를 보면서 귀 진료를 봤다. 

이관에 압력을 조절해 줘야 되는데 그 기능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단다. 

약을 3일 치 먹어보고, 차도가 없으면 청력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한다. 


약을 먹기 시작한 지 둘째 날이 되니 마음이 초조해졌다. 

증세를 네이버에 검색해 보니 이관폐쇄증이라고 한다. 

발살바 호흡법을 해보니 뽁 소리가 나면서 뚫리는 느낌이 온다고 하는데 뭔가가 팽창되는 느낌만 나고 시원하지가 않다. 이러다 고막 나가는 거 아니야, 아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내일까지 안 나으면 청력 검사를 해야 하는데, 난청이나 다른 문제가 있다고 하면 어쩌지?

겁이 덜컥 났다. 

귀가 아프진 않았지만 침을 삼킬 때마다 귀에서 쩍쩍 소리가 나서 신경이 쓰이고, 피곤하면서 짜증이 났다.

 

어젯밤에는 아이가 어찌나 나를 걷어차고 잠을 험하게 자는지, 새벽 내내 잠을 설쳤더니 오른쪽 귀가 압이 느껴져서 아프기까지 하고, 컨디션이 엉망이다. 

출근하는 모습을 보며 남편이 소리의원에 같이 가자고 한다. 

아, 제발...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해줘요 ㅠㅠ 

그냥 쉬면 낫는 거라고 해줘요 ㅠㅠ 


귀가 불편하니 만사가 귀찮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증세라 나 혼자 불편하니 더욱 신경이 쓰인다. 

집이 너무 고층인가... 싶기도 하다. 

내 얘기를 듣고는 시설 주무관님이 당장 맨발 걷기 하라고 재촉하신다. 

말이 쉽지, 집 주변에 매일 걸을만한 길이 있나. 온통 공사판에 아스팔트 도로인데. 

학교 운동장이라도 돌다가 집에 가야 하나. 

생각이 복잡하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파 온다. 


토요일에는 큰엄마와 시언니들(남편의 사촌 누나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을 먹기로 했다. 

최대한 간단하게 음식 준비하고, 청소도 그냥 대충 해야지. 

일요일에는 연수구에 있는 황톳길이나 계양구 꽃마루를 한 번 맨발로 걸어볼 계획이다. 

한 번 걷는다고 병이 좋아지진 않겠지만, 내가 살아갈 방법을 꾸준히 모색해 봐야지. 

어쩌다 보니 오늘의 글도 일기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3기 들어가기 전까지 쉬는 기간에도 쉬지 않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실천한 것으로 만족.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는 성격인데도 이렇게 자꾸 아픈 걸 보면, 난 그냥 날 때부터 연약한 존재였나. 

그렇다면 강해지게 해야지. 강해져야지. 

독서도 글 쓰기도 다이어트도 공부도, 그 어느 것도 쉽게 되는 건 없었다. 

시스템 안에 나를 밀어 넣어서 내가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지만, 

과도하게 신경 쓰거나, 스트레스받으면서 하지는 말자. 

오히려 나를 갉아먹는 행위가 되지 않도록, 잘 조절해 보자. 


오늘만은 안단테로, 천천히, 적당히 느리게. 그러나 멈추진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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