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공항에서 나와 길을 건너 주차타워로 향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와, 비바람 부는 날씨에, 초행길에, 야간 운전이라니.
“와~ 채연아, 우리 차 빨리 찾아야겠다. 날씨 엄청난데?”
제주도 탁송 기사님이 보내주신 지도를 보며
주차타워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 저 멀리 보이는 내 차를 발견했다.
항공기가 지연된 탓에 대면 인수를 할 수 없어,
기사님이 컵홀더에 넣어두신 차 키를 꺼내고,
우산을 다시 펼쳐 들고 차 이곳저곳을 살폈다.
아무 이상 없이 무사히 제주에 도착한 내 차와 인사를 나누려던 찰나,
내 옆으로 차가 한 대 섰다.
“지금 나가실 거예요?”
“아, 네~ 주차하시려고요?”
“네, 몇 바퀴 돌았는데 자리가 없네요.
저희 차가 커서, 경차 자리밖에 없더라고요.”
“얼른 빼 드릴게요. 잠시만요.”
황급히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켜고,
보조석에 접은 우산을 내팽개치고,
뒷자리에서 휴대폰을 쳐다보는 아이에게 말했다.
“채연아, 이제 출발할 거야. 비 많이 와서 위험하니까 벨트 꼭 매고. 알았지?”
기어를 변속하고 액셀을 밟았다.
“붕~~~”
곧이어 끼리리릭~~ 하는 듣도 보도 못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내 차.
“어, 이거 왜 이래?”
차가 앞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멈추는 것도 아니고. 상태가 이상했다.
당황한 나는 계기판을 바라봤다.
1년 넘게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운전 젬병인 나로서는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옆에 있는 차의 운전자의 눈빛이 느껴져 다시 한번 다급하게 액셀을 밟았다.
“붕~~~~ 끼리리릭~”
마찬가지였다.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고는 다시 찬찬히, 여기저기 살펴봤다.
평소랑 다른 소리가 난다는 건,
내가 해 본 적 없는(그래서 첫눈에 알아볼 수가 없는)
무언가가 작동되고 있다는 소리일 터.
찾았다!!!
주차 공간이 없다 보니 평행주차를 해두면서
탁송 기사님이 풋브레이크를 걸어둔 거였다!
풋브레이크를 다시 밟았다가 올려 해제하고, 다시 액셀을 밟았다.
소리가 나지 않고, 정상적인 주행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차.
가슴을 쓸어내리고,
힘차게 와이퍼를 움직이는 차에 우리 여행의 시작을 맡겨 본다.
그러나 처음 와 보는 주차 타워의 구조가 초보운전자의 눈에 쉽게 들어올 리가 만무했다.
도대체 출구가 어디야....
바닥에 그려진 표시는 입구만 있을 뿐,
도무지 출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빵!”
뒤 차가 경적을 울린다.
“아, 아저씨 미안해요.”
주차타워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제자리.
드디어 출구 표시를 찾았다.
“채연아, 이제 진짜 우리 숙소로 가는 거다~~”
주차타워를 나서는 순간 비가 폭풍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샤워기의 물줄기를 연상케 할 정도로 거세게 내리쳤고,
와이퍼는 정신없이 움직였다.
초행길에 야간 빗길 운전까지 더하게 된 겁쟁이 엄마의 눈은 그보다 더 바삐 움직였다.
내비게이션을 보며 조심조심, 낯선 길을 따라 움직였다.
“아니, 여긴 저녁때가 됐는데 왜 이렇게 어둡냐.
가로등 불 왜 없어?”
울상이 된 나의 투정에도 아이는 묵묵부답, 휴대폰과 뽀뽀할 기세다.
옆에 지나가는 큰 차들이 뿌리고 간 물줄기,
하늘에서 쏟아붓는 물줄기에 정신이 가출할 듯했지만,
내 뒤에는 아이가 타고 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온 맘과 힘을 다해 호텔에 도착.
캐리어를 꺼내 올리고, 곧장 침대에 털썩 쓰러졌다.
“아~~~ 너무 힘들다. 채연아, 엄마 좀 쉴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엄마, 나 배고픈데...”
“그래? 지금 몇 시지?”
시계를 보니 밤 9시가 막 지나고 있었다.
“아... 이 시간에 식당 문 연 곳이 있으려나...
채연아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난 짜장면”
왜 아이의 취향은 제주도까지 왔는데 이리도 한결같은지.
배달앱을 켜서 한 그릇만 배달되는 곳을 찾았다.
맛이 있는지 없는지 리뷰를 찾아볼 정신 따윈 없었다.
내가 먹을 만한 메뉴를 찾아볼 여유는 더더욱 없었다.
마침 한 그릇만 배달되는 곳이 있어 주문을 하고,
30분쯤 시간이 지났을까.
호텔방 초인종이 울렸다.
“채연아, 짜장면 맛있게 먹고,
엄마 좀 더 쉬고 있을게.”
“응”
걱정하고 있을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항까진 편하게 잘 갔는데 도착해서 비가 너무 많이 와서
1시간이나 더 하늘 위에 떠있었다는 얘기,
폭풍우를 뚫고 오느라 나는 방전돼서 저녁 먹을 힘도 없다는 얘기,
그래서 제주에서의 첫 끼는 짜장면이 되고야 말았다는 슬픈 전설을 들려주었다.
“제주도까지 가서 무슨 짜장면이야 ㅋㅋㅋ”
남편의 비웃음 소리가 김포공항에서 제주공항까지
비행기 타고 날아오는 속도로 내 귓가에 날아들었다.
“아, 몰라. 난 너무 힘들어 죽을 거 같아.”
“괜찮겠냐? 이제 시작인데 벌써 그러면 어떡해”
“하루 자고 나면 괜찮겠지.”
남편과 통화를 하는 사이,
아이는 짜장면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웠다.
“벌써 다 먹었어? 맛있었어?”
“응, 엄마. 맛있어. 엄마는 안 먹어도 돼?”
그제야 살아난 몸이 허기를 호소했다.
“흠... 맛있는 냄새나네.
근데 엄마 지금 먹으면 체해서 내일 진짜 힘들 거 같아.
안 먹을래.”
배달 용기를 정리하고, 씻고, 침대에 누웠다.
새벽 비행기로 출발한 것도 아닌데,
하루가 참 길고도 고단했다.
내일부터 우리, 재미있게 놀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겠지?
“엄마”
“엄마~~ 엄마~~~ 일어나 봐~~ 나 배고파”
“으.... 음.... 채연아, 몇 시야?”
“12시야 아휴. 나 배고파.
우리 밥 먹으러 가자.”
12시라고????
12시 반에 식당 예약했는데??
여행 시작부터 자느라 반나절 날린 거 실화 ㅠㅠ
엄청난 속도로 씻고, 화장하고, 호텔을 나섰다.
제주에 오면 아이가 좋아하는 전복을 실컷 먹게 해 주리라 생각하며 찾아봤던 집.
다행히, 호텔 근처에 있어서 우리는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갈하게 차려진 상차림을 보니 군침이 돌았다.
전복회와 전복돌솥알밥을 주문했다.
전복을 굉장히 좋아하는 아이는 엄마는 먹든지 말든지 신경도 안 쓰고
싱싱한 전복회를 맘껏 즐기고, 엄마가 비벼준 알밥까지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며 맛있게 먹었다.
“아이고, 우리 딸. 잘 먹네~~”
점심을 먹고 호텔로 다시 들어오는 우리를
어제와는 사뭇 다른 파란 하늘이 반겨준다.
“채연아, 엄마 어제부터 귀랑 머리가 너무 아파서,
오늘은 쉬어야 될 거 같은데. 괜찮아?”
“응, 난 패드 보면 돼”
오히려 좋다는 표정으로 대답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일어났다.
“채연아 저녁은 제주도 왔으니까 흑돼지 먹어야겠지?”
“응, 엄마. 나 여기 호텔 옆에 있는 고깃집 왔던 거 기억나.
우리 거기 가면 안 돼?”
“정말? 여기 왔던 거 기억나?
그럼 우리 거기 가보자.”
예약 없이 방문해서인지, 웨이팅이 너무 길어
옆에 있는 다른 고깃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이는 고기라면 다 좋은 것인지,
냉면까지 시켜 야무지게 먹는다.
고기를 먹고 나오는 길,
고깃집에서 함께 운영하는 소품샵에서 친구와 나눠 가질 팔찌를 고르며 말한다.
“엄마 근데 그 고깃집이 더 맛있는 거 같아.”
그래.
우리 미식가이지만 대식가인 따님 앞에서 내가 말을 말자.
소화시킬 겸, 아이와 손잡고 중문관광단지까지 걸었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우리를 맞아준다.
친정엄마에게 전화해서 어제 고생한 얘기부터
짜장면, 흑돼지를 먹은 것까지 보고를 하고, 아이를 바꿔 주었다.
“할머니~ 제주도 너무 좋아요”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도 하지 않은 여행이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아이의 표정 하나로, 난 또 그렇게 행복해지는 밤이었다.
어, 그런데 날씨가 이렇게 좋아진 거 보니,
우리 둘 다 날씨 요괴가 아니었나 봐. 그렇지 채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