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시작을 휴식으로 맞이하고,
10월 5일 일요일이 되었다.
코스를 짤 때부터 일요일 미사는 꼭 빠지지 말자고 채연이와 약속했었기에,
미리 알아두었던 숙소 근처 중문성당에서 미사를 보기로 했다.
도보로는 15분 정도 걸린다고 내비게이션에 나왔지만,
이 더운 날씨에 아이가 흔쾌히 걷겠다고 할 리도 없을뿐더러,
미사 후 바로 점심을 먹으러 가야 하니, 차를 갖고 가기로 했다.
호텔에서 2분 거리에 위치한 작은 성당.
그렇다. 성당 규모도 작고,
제목에서 예상했듯, 주차장도 매우 작은 곳.
가까운 거리만 생각하고 주차난은 예상하지 못한 나는
여유롭게 씻고 준비를 마치고 아이와 천천히 길을 나섰다.
호텔 앞 골목길을 나와,
또다시 낯선(아마도 열흘 내내 그러한) 길에 들어섰다.
쭉 직진 후 성당 입구에서 한 번만 좌회전하면 된다고 내비게이션이 알려준다.
‘흠, 이 정도면 금방 가겠는데?’
출발한 지 오래되지 않아 “중문성당” 표지판이 보였고, 곧 예수님상이 보였다.
“와, 채연아. 여긴가 봐.
엄마 진짜 금방 왔다 그렇지?”
“응, 그러게. 엄마 근데 이 길 맞아?”
“맞... 응?”
뭔가 이상했다.
내가 앞으로 가면 갈수록, 성당이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바짝 타들어가는 내 마음 같은 검은색 돌담길이 좌우로 펼쳐진다.
내비게이션은 이 길이 맞다고,
조금만 더 가서 좌회전하면 된다고 안내하는데,
내 눈앞에 펼쳐진 길은,
막다른 길이었다.
이건 누가 봐도, 더 가면 목적지에서 더 멀어질 듯한 길이다.
아, 이 길이 맞는 것 같은데 이상하네.
한 블록을 더 가서 좌회전했으니 이상할 수밖에!!
성당 건물이 보이는데 왜 도착을 못하니 ㅠㅠ
10시 50분.
이러다간 미사에 늦을 건 뻔하다.
정신 차리고, 가까스로 차를 돌려
지나온 길을 찬찬히 살피며 성당 건물을 찾았다.
이번엔 내비게이션에 의존하지 않고, 내 감을 믿어 보리라.
표지판을 보고 조금 올라가니,
성당 앞으로 들어가는 언덕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도착했.... 다고 좋아하긴 일렀다.
성당 앞마당은 이미 만차였고,
주차 안내해 주시는 형제님의 손짓을 따라 뒤로 들어갔더니,
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저~기 멀리 빈자리가 하나 보인다.
하... 근데 내 주차 실력으로 저 자리가 가능할까?
아, 몰라.
일단 가 보자.
용기를 내 주차장 뒤편에 있는 길로 다시 올라갔다.
아슬아슬 차들을 피해 나무 옆자리 비탈길에 주차하고,
혹시 몰라 풋브레이크를 걸었다.
휴, 채연아. 이제 미사 보러 가자!!
작은 마을에 자리 잡은 성당이라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조용하리라 예상하고 들렀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며, 오늘은 첫 영성체가 있는 날이라고 한다.
(성당은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이 되면 세례를 받은 어린이도
일정 기간 교육을 거쳐 미사 시간에 성체를 모실 수 있는 “첫 영성체”라는 의식을 한다.
첫 영성체를 하지 않은 사람은 미사 때 성체를 모실 수 없다.
성당에 다니는 사람에게는 무척이나 큰 의미가 있는 날이다.)
요즘은 성당마다 아이들이 없어서 난리라고 하긴 하던데,
이곳은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던 찰나,
오늘 첫 영성체를 받는 아이가 3명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주일학교 어린이만 180명 가까이 되는 우리 성당에 비하면,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함께 자라고, 믿음을 나누어서인지,
어느 성당보다 행복하고, 모두 즐거워 보였다.
신부님 강론은 주임 신부님이 아닌 청국장 신부님으로 유명하신 황창연 신부님이었다.
(찌개 끓여 먹는 청국장 아님 주의)
채연이는 첫 영성체 어린이가 3명이라는 것, 작은 성당,
하나같이 본인을 반겨주시며 여행 와서 미사보는 게 예쁘다며
기특하게 바라보시는 어른들의 눈빛에 잔뜩 쑥스러워했다.
그러던 아이가 내 팔을 조심스레 잡고 작게 속삭였다.
“엄마, 이건 어떻게 하는 거야?”
아이는 성찬 전례 때 무릎 꿇는 장궤 자세를 처음 접하고는 물었다.
“우리는 깊게 절하잖아. 여기는 무릎 꿇고 하는 거야.”
미사가 끝나고, 인증숏을 오래 찍을 여유도 없이 주차장으로 향했다.
“어? 저거 엄마 찬데?”
내 차 사이드 미러와 거의 박치기하기 일보 직전인 상태로 작은 트럭 한 대가 서 있었다.
그 차의 운전자로 보이는 중년 형제님이 나를 보고는 웃으신다.
“이 차 주인이세요? 걱정 마세요. 안 부딪쳤어요.
조금만 움직이면 제가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그래야죠... 여기까지 와서 부딪치면 저 속상해요)
“네~ 차 금방 빼 드릴게요.”
첫날과 다르게, 운전석에 앉자마자 풋브레이크부터 능숙하게 해제하고,
기어를 변속하고는 너무나도 부드럽게(!) 차를 뺐다.
예전 같았으면 금방이라도 닿을 듯한 상대편 차의 사이드미러를 보느라 진땀을 가득 뺐을 테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은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하나둘, 주차장을 가득 채웠던 차들이 빠져나가고,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내 차도 아까의 길을 지나 고기 국숫집으로 향했다.
성당 근처에 고기 국수 맛집이 있어 일부러 그곳을 여행 코스에 넣었는데,
점심시간+맛집+주차장 없음 3박자가 함께 한 덕분에
식당 근처는 모두 맛집탐방가들의 차로 골목 안쪽까지 가득 차 있었다.
중간중간 빈자리가 보였지만,
거긴 운전 마스터인 우리 남편이 와도 안될 것 같았다.
한 바퀴 돌다 보니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좀 더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채연아, 넌 오른쪽에 자리 있는지 봐봐. 엄마는 왼쪽으로 볼게.”
두 모녀의 환상 호흡이 시작됐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편의점을 지나 공사장 인근에 잘 마련된 주차장이 보였다.
“이렇게 자리가 많은 게 좀 이상한데, 여기에 주차해도 되는 거겠지?”
적어도 불법주정차 단속 구역은 아니니, 얼른 주차하고 식당에 대기를 걸어두고,
아이와 사진 몇 장 찍다 보니 우리 차례다.
국숫집이라 그런가, 회전율이 상당히 빠르다. 좋다!
고기국수 하나, 비빔국수 하나씩 사이좋게 주문한 우리는
금세 나온 따끈한 고기 육수를 맛보고, 고명이 듬뿍 올라간 국수를 비볐다.
새콤달콤 양념장은 더위에 지친 우리를 기운 나게 하기 딱 좋은 맛이었다.
뜨끈한 고기국수 국물은 아침부터 주차 전쟁을 치른 나를 위로해 주었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대포주상절리로 향했다.
내 예상대로, 아이는 자연경관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저게 어떻게 저렇게 생긴 거냐면...”
엄마의 열띤 설명에도, 아이는 흥미 없이
“엄마, 더워.”
소리만 반복했다.
이곳이 어떤 시간을 견뎌서 이렇게 멋진 자태를 뽐내게 됐는지 알게 된다면
저렇게 시큰둥하게 반응하지 않을 텐데.
사진 몇 장을 찍고 서둘러 땀에 절어 있는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엄마, 나 저거 사주면 안 돼?”
갑자기 아이가 눈을 반짝였다.
한라봉 아이스크림.
그래. 먹자 먹어. 먹고 보고 놀려고 온 건데.
“이거 먹고, 우리 해안도로 드라이브 하자.”
“네~~~”
아이스크림도 얻어먹고, 시원한 차 안에 본인은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되니,
아이 입장에선 이보다 더 개꿀인 상황이 없을 터.
특별한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해안선을 따라 일단 달렸다.
오전 내내 주차 전쟁을 치러서인지, 주차 걱정 없이 무작정 어디론가 달리고 싶었다.
해안을 따라 굽이굽이 난 길을 따라가다 보니,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그러나 너무 소박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마주하게 되었다.
‘어, 여기 어디서 봤더라...’
지나가며 마을 이름이 보였다.
“예래포구 생태마을”
예래포구, 예래포구...
어디서 봤더라...
봄에 벚꽃이 한창이던 날,
제주도 렌터카 업체에서 올려 준 제주도 벚꽃길 드라이브에서 봤던 길이었다.
와, 여기 그때 영상 보면서 오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 와버렸어!
이거 럭키비키잖아!!
벚꽃 피면 진~~~ 짜 예쁘겠다 여기.
나중에 봄에 꼭 와야지.
"채연아, 여기 길 좀 동영상 찍어 줄 수 있어?"
“네~ 엄마~”
나중에 확인한 영상은, 말 그대로 “길을 찍은 영상”이었다.
엄마의 추구미와 딸의 현실이 이리도 다르다니.
우리의 동상이몽은 여행 내내 계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