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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태공 Sep 21. 2023

어쩌다 강사

덜컥 수락된 첫 강의

씽크와이즈 강사 과정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강사가 되기 위해 준비를 했다. 

집 앞 신설학교 공모에 합격해서 2021년 12월 1일 자로 겸임 발령을 받아 일에 치여 울면서 일을 하기도 하고, 난방도 안되고 화장실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입주해 개교 업무를 하고, 어느새, 학교의 첫 주인들이 들어왔다. 

 

2022년 3월 초 주말이었다. 

강사단 톡방에 다급한 메시지가 올라왔다. 

"혹시 RFID 강의 가능하신 강사님 계신가요?" 


매년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 연수를 진행하는데 

올해 처음으로 RFID를 이용한 물품관리 시스템 과정이 개설되었고, 

본인은 물품 강사이긴 하지만 RFID를 써 본 적이 없어서 

내가 강의할 영역이 아니니 할 사람은 지원해 보라는 게 요지였다.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저... 제가 RFID 써보긴 했는데요. 강의는 한 번도 안 해봐서. 

그렇지만 한 번 해보겠습니다." 

H 선배님이 늘 강조하시는 DID(들이대) 정신으로 손을 번쩍 들고야 말았다. 



1단계. 강의 자료 수집


1. 강의 일시: 2022. 4. 4.(월) 13:00~15:00

2. 장소: 연수원 영상제작실에서 줌으로 진행

3. 수강생: 대략 40여 명


첫 강의라서 강사단 내에서 진행하는 리허설을 먼저 거쳐야 했다. 

시간이 너무 빠듯했다. 


RFID는 도입된 지 이제 막 1년이 안 된 시스템이었고, 도입되지 않은 학교가 더 많았다. 

그러니 자료 수집도 만만치 않았다. 

내가 사용했던 기기에 대해서만 설명하기엔 강의가 편협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자칫 한 업체의 홍보물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 


유튜브에서 타 시도교육청에서 올린 RFID 강의를 돌려보며 벤치마킹을 하고, 

교육행정 카페에서 관련 질의 내용이 올라온 것을 모두 출력하고, 

OO 선배님이 소개해 준 학교에 가서 장비와 해당 기기의 매뉴얼을 사진 찍어 왔다. 

직전 근무지에서 RFID를 도입했을 때 봤던 자료들을 복기하며 강의안을 구성했다. 


2단계. 강의안 구성


추후에 별도의 글을 쓰겠지만 나는 최종학력이 고졸이다. 

대학에 진학을 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중퇴를 했다. 그러니 '최종' 학력은 고졸인 셈이다. 

그래서 난 파워포인트를 이용해서 조별 발표를 해보거나, 과제를 해본 적이 없어서 파워포인트로 강의안을 작성하는 게 가장 힘든 일이었다. 


자료는 방대한데, 이걸 구조화시키는 게 어려웠다. 

줌으로 강의를 해야 하니 줌 운영 방법도 숙지해야 했다. 


강의 제목 - 강사 소개 - 강의 목차 / RFID 시스템 개념과 도입 근거

리더기와 발행기, 소모품 / 용역 계약방법

태그 발행부터 불용, 재물조사 / 질의응답 및 마무리


총 3개의 큰 덩어리로 나누어서 구조를 잡았다. 

RFID 용역을 수행하면서 겪었던 경험담을 떠올리며 스토리 라인을 짜고, 

당시에 내가 궁금했던 것에 답을 한다면 이렇게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원고를 썼다. 

그렇게 우당탕탕 강의안 초안이 완성됐다. 


3단계. 사전 리허설


토요일 오전, 리허설이 진행됐다. 

피드백이 쏟아졌다. 

초안을 모두 엎고 가르쳐주신 템플릿 사이트를 이용해서 처음부터 다시 만들고 싶었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사진 자료 배경을 없애고, 고화질로 업그레이드하고, 피드백 때 알려주셨던 내용을 참고하여 

며칠 밤을 새워서 수정 작업을 하고, 원고를 제출했다. 


지금보면 정말 허접하기 이를 데 없는, 원고 같지도 않은 원고였다. 


4단계. 필드 데뷔

강의 당일, 이름하여 필드 데뷔하는 날이다. 

USB에 파워포인트 자료와 제출했던 pdf 원고 파일을 담고, 

오전에 진행되는 Y선배님의 강의를 참관하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러 연수원으로 갔다. 

애스파 선배님들은 나를 응원하기 위해 ㅁㅁ선배님의 학교에 모여서 다 같이 교육을 듣기로 했단다. 

힘이 된다. 줌 화면에 비친 선배님들을 보고 있자니 긴장이 사라졌다. 


팀장님께서 Y선배님과 내게 점심을 사주셨다. 

인테리어가 멋진 패밀리 레스토랑이다. 

아뿔싸, 조심했어야 했는데 흰 블라우스에 토마토소스가 튀었다. 

이런 일로 흔들릴 수는 없어!! 

수없이 되뇌며 바닷가 한 바퀴 산책을 하고는 팀장님 차로 연수원에 돌아왔다.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USB 파일을 열었다. 

어! 내가 작업했던 폰트가 깨져서 뜬다. 

폰트가 정상적으로 열리지 않으니 자료가 엉망진창이다. 정렬도 마음대로다. 

(그때는 몰랐지만, 파워포인트에는 폰트까지 모두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사용한 폰트를 USB에 담아서 강의용 PC에 설치하는 방법도 있다.) 

순간, 파워포인트와 함께 담아 왔던 pdf 파일이 보였다. 

이거로라도 강의를 해야겠다!!

 

3,2,1 시작!! 


"안녕하세요. 

RFID 강의를 하게 된 인천아라고등학교 이윤서 주무관입니다. 반갑습니다~~~"


5단계. 강의 평가

1) 경험담을 바탕으로 강의를 구성하다 보니 술술 강의가 풀렸다. 

2) 공무원 합격하기 전에 아프리카 TV와 세이클럽에서 방송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 

채팅창을 보며 방송한다 생각하며 진행했더니 하는 나도 재미있었다. 

3) 강의 시간에 원고 분량을 맞추는 감이 없어서 약속된 종료 시간보다 일찍 강의 원고가 바닥났다. 

그래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고, 인천교행 최초이자 유일한 RFID 강사의 첫 강의는 무사히 종료됐다. 

4) 강의 자료 마지막에 오픈 톡방 QR코드를 심어 두고 수강생들의 질문을 수시로 받아주었다. 


옆에서 지켜보시던 팀장님께서는 강의 자료가 제대로 열리지 않자 pdf 파일을 열며 

태연하게 강의를 시작하는 내 모습을 보시고는 '얘는 됐다' 싶었다며 안심하고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셨다고 했다. 

겉으로는 태연해 보였겠지만 강의가 끝난 후 집으로 가는 길에 다리가 풀려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강의 종료 후 부장님을 뵀다. 

모니터를 하시던 부장님께서는 어디에 이런 보석이 숨어 있었냐며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좋은 강사 보내줘서 고맙다며 단장님께 인사를 따로 하셨다고 한다. 


물론 강사풀 확보를 위한 당근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다. 

알을 깨고 나온 햇병아리 강사의 첫 발은 이렇게 순탄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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