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읽는 책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신에 대한 사랑과 실존주의를 이야기하며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담론이 있었다. 이름을 가졌다는 것은 유한하다는 것이다. 그 대상의 본질이 언어로 규정되는 셈이다. 인간이 모두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때로 기억되고 싶기도, 때로 잊혀지고 싶기도 하다. 잊혀지지 않을까 두려울 때도 있다. 사실상 나의 실존이 발 묶이는 곳이 나의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밤, 여러 공상에 부유하던 밤, 나는 내 이름을 다시 짓는다면 '무명'이라고 짓겠다 생각했다. 신의 이름을 계속 묻자 신은 '나는 이름이 없다는 것이 이름'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무명(無名)'으로 살고 싶다. 마음 편히 세상에 스며들었다가 소리없이 사라지고 싶다. 잊혀질까 두려운 마음보다 잊혀지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큰 나를 '무명'이라고 부른다면 작은 용기가 될 것 같다. 무명아, 무명아. 내 이름을 스스로 부를 일이 없는데 처음으로 이렇게 스스로를 불러보고 싶다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실없는 생각에 부유하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