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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머스캣 Nov 07. 2023

배드민턴을 그만 두고 살사를 추다.




 글쓰기를 오래 쉬었던 최근의 삶을 돌아보려 한다. 글을 쉬는 이유는 매번 다르다. 삶이 너무 즐거워서 기록을 할 시간조차 없거나, 삶이 너무 무료하고 무기력해서 글을 쓸 힘조차 없거나. 요즘 나의 경우는 후자였다. 나의 모든 삶에서 '비우기'를 염불을 외도 매번 가득 채우기만 한다. 최근 월, 수에는 퇴근 후 요가, 화, 목에는 배드민턴 레슨, 거기에 화요일 배드민턴 레슨 후에는 스페인어 과외를 들었다. 금요일에는 필라테스를 하거나 평일에 못 다한 일정을 소화하고, 주말에는 강의를 했다. 이렇게 6개월을 지내고 나니 당연히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 것을 넘어 건강이 악화되었다. 현재 극심한 역류성 식도염, 호전되지 않는 다낭성난소증후군, 잠을 깊이 못자는 불면증,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화 증상인 끊이지 않는 헛트름, 그 밖에도 비염과 과민성대장증후군 등을 달고 산다. 이정도면 일상을 영위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정도의 저주받은 건강 상태이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휴식이 두려웠다. 무언갈 배워야만 나를 내보일 수 있을 것 같아서 무리해서 언어를 배우고, 배드민턴을 배웠다. 장기가 있는 사람들은 매력 있어보이기 마련이니까, 나도 그러고 싶었다. 내 일상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보다 '내가 잘하고 싶은 것들', '내가 잘 해야만 하는 것들'로 가득했다. 그러니 충만감보다는 소모감이 앞설 수 밖에.


 결론적으로 나는 배드민턴을 그만 두었다. 매주 화, 목요일에 저녁 8시 30분부터 10시까지 고강도의 레슨을 받는 것이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부담이었다. 5개월 남짓 배워서 이제 막 스매싱을 칠 수 있게 되었지만 더이상 배드민턴이 즐겁지 않았다. 화요일 배드민턴 레슨이 밤 10시에 끝나면 아주 부랴부랴 뛰어와서 10시 30분에 듣던 스페인어 수업도 수요일 7시로 옮겼다. 배드민턴을 그만둔 화요일 밤에 이 글을 쓰고 있자니 정말 이리도 평화로울 수가 없다. 게다가 오늘은 매일 늦은 시간에 하던 스페인어 과외도 없다. 진작 이렇게 했어야할 것을 반 년이나 끌었다. 월,수 요가, 화,목 배드민턴으로 평일에 다른 일정을 잡는 것은 꿈도 못 꾸고, 사람들도 못 만났다. 이제 내가 운용할 수 있는 빈 시간이 늘어나니 기쁘다.


 좋은 소식 중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나의 일정을 하나 채웠다. 그것은 바로 살사다. 살사를 시작한 지 두 달 정도가 되었는데, 몰입도가 상당하다. 살사 영상을 보면 멋있는 춤사위를 만날 수 있는데 놀라운 것은 그 모든 것이 즉흥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거다. 살사는 남자(살세로)가 신호를 주면, 그 신호를 읽은 여자(살세라)가 안무를 받아서 춤을 춘다. 그 신호를 보내고 읽는 행위가 남들에게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이루어지고, 그것이 그들의 멋진 한 작품을 만들어낸다.

 즉흥적으로 무작위의 파트너와 교감해서 한 곡의 춤을 완성한다는 것이 살사의 어마어마한 매력이다. 나는 그 매력에 푹 빠졌다. 수많은 살세로, 살세라가 무작위로 만나 춤을 추는 것을 '소셜'이라고 한다. 소셜에서 나는 나이불문, 외모국적불문 누구와도 호흡을 맞추어 춤을 출 수 있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아저씨와 춤을 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저 살세로와 춤을 춘다는 생각이 들고, 나는 상대를 더 알 필요도, 나를 더 알릴 필요도 없다. 누구와도 나는 그저 '살사'로만 만날 수 있다. 그 가볍고도 강렬한 교감이 내가 살사를 계속 배우게 하는 동력이다. 지금은 초보라서 소셜을 하다가 고수들이 나에게 홀딩(춤을 추자고 하는 것) 신청을 하면 민망한 상황이 왕왕 생긴다. 특히 살세로가 내 뒤로 가는 동작을 하면 그 이후의 신호를 내가 전혀 읽지 못해 이상한 동작을 하거나 뒤의 살세로를 애처롭게 찾는 장면을 만들곤 한다. 그 밖에 턴 신호를 잘못 읽어서 요상한 방향으로 턴을 하거나, 살세로가 동작을 멈추려고 힘을 주어도 그걸 무시하고 내 안무를 하려는 가련한 살세라의 모습을 연출하곤 한다. 어서 더 배워서 살사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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