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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머스캣 Aug 08. 2022

비 오는 날을 사랑하는 이유


요즘 비가 드문드문 와서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한 달 후의 일기예보까지 확인하면서 비 오는 날을 기다리는 수준에 이르자, 스스로 고찰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비 오는 날이 좋을까?


가만히 들여다보니 단순히 '비'를 좋아하는게 아니었다. 비오기 전의 냄새, 드리우는 구름, 거세지는 바람이 느껴질 때부터 나는 설레기 시작한다. 그리고, 비가 내리면 가장 먼저 들리는 빗소리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빗방울의 크기와 무게, 내리는 속도, 방울 사이의 촘촘한 거리 등에 따라 빗소리는 매번 다르다. 한 층 짙어진 세상의 풋내를 콧속 가득히 들이쉬길 반복한 다음에는 무채색에 가까워진 세상과 한껏 검어지고 무거워진 구름을 눈에 담는다. 채도와 명도가 한껏 죽은 세상을 눈에 담는 건 참으로 편안하다. 느껴지는 공기는 습하지만 시원하다. 건조하고 더운 것보다 습하지만 시원한 날이 나는 훨씬 좋다. 비가 오면 나의 오감이 모두 이렇게나 행복하구나. 더불어 비 오는 날엔 무얼 해도 괜히 더 설레고, 무얼 먹어도 더 맛있다.


비를 좋아하게 된 게 그리 오래되진 않은 것 같은데, 언제부터일까. 비 오는 날보단 맑디 맑고 선명한 날에 더 행복해했었는데, 왜 변했을까. 쾌청하고 맑으면서 적당히 선선한 날, 햇살은 적당히 따뜻하고 구름 한 점 없는 환상적인 날은 여전히 가슴 뛰고 행복하지만, 어느새부턴가 왠지 모를 부담감이 느껴진다. 들떠서 밖에 모여드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나도 함께해야 할 것만 같고,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 날씨에 비해 나의 일상은 잔잔하기 그지없다는 괴리감, 마냥 들뜨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교차한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마음이 풀죽어 있진 않다. 나는 맑은 날에도 너무나도 행복해한다. 다만, 비 오는 날은 정말 참을 수 없이 더 행복할 뿐이다.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비 오는 날의 드리우는 어둠과 소리, 냄새, 모든 것이 내게 인생이 마냥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는 것 같다. 내 삶의 온도, 색채가 비 오는 날과 잘 맞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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