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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머스캣 Aug 14. 2022

안타깝게도 매일 꿈을 꿉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꿈속에서 한참을 허우적대다가 눈을 떴다.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꿈을 꾸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더라. 주변에서 꿈을 거의 안 꾼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심히 부럽다. 내가 꾸는 꿈은 러닝타임이 아주 길고, 오감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내가 매일 꾸는 꿈은 악몽이다. 악몽 후에는 평소로 돌아오는데까지 꽤 힘든 감정과 시간을 견뎌야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악몽'이라 하면, 보통 불행한 일이 내게 일어나는 또는 주변에 일어나는 꿈을 떠올린다. 특히나 악몽을 꾸고 헐레벌떡 지인이나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꿈자리가 뒤숭숭했다며 당부하는 모습은 드라마에서도 실제에서도 빈번히 볼 수 있다. 이렇게 악몽은 불길함을 잔뜩 묻힌다.


하지만 내가 매일 꾸는 악몽은 불길함 그 이상으로 불쾌하고, 공포스럽다. 꿈을 매일 꾸는 것 자체로 꽤나 괴로운 일이라는 것을 아마 같은 처지의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특히 나는 매일 꿈에서 나는 냄새, 소리, 촉감까지 생생하게 느낀다. 게다가 꿈이란 보통 개연성이 많이 떨어진다는 특징이 있지만, 나는 현실과 지나치게 중첩된 개연성 속에서 진짜 감정과 감각들을 느끼는 것이다. 내가 꾸는 악몽의 유형은 보통 두 가지의 양상을 띤다.


먼저 아주 원초적인 악몽이다. 나와 함께 지내던 사람들의 신체가 잘려나가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그것도 한 명 한 명 차례로 잘려나가는 것을 1인칭 시점에서 보면서 온 몸이 쪼그라들고, 심장을 비틀어 짜는 고통을 꿈속에서 계속 느꼈다. 영화에서처럼 악몽의 절정인 장면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헉'하고 눈을 떠 현실로 돌아오는 일은 안타깝게도 내게 일어나지 않는다. 처참한 결말까지 모두 똑똑히 보고 느낀 뒤에 반쯤 나간 정신으로 꿈속의 공간을 부유하다가 스르륵 눈꺼풀을 올린다. 그리고 꿈이었음에 안도한다. 이런 꿈은 깨어난 뒤에도 공포스럽고 꿈꾸는 동안의 괴로웠던 감정이 채 가시지 않아 기진맥진하다.


다른 때는 잔인한 장면이 적나라하게 나오진 않지만, 정신적으로 극도의 불안함과 불쾌함을 일으키는 꿈을 꾼다. 가령, 실제 내가 과거에 겪은 끔찍한 일들이 재연된다거나, 기출 변형되어 다양하게 등장한다. 문제는 그 속에서 특정한 인물의 생김새, 특정한 목소리, 온몸에 털이 곤두서고 소름이 끼치는 손길,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와 공포, 손 떨림까지 생생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또는 내가 하루 종일 고민에 빠졌던 일들이 내가 생각지도 못한 가장 최악의 상황으로 재생되는 꿈도 잦다. 내 꿈이 내 정신을 한없이 좀먹는 느낌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꿈을 꾸면서,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본 적이 없다. 주변 사람들은 종종 꿈을 꾸는 중간에 인식하여 벗어난다거나, 나름 전개의 주도성을 가질 수도 있다 하여 참 신기했다. 나는 자각몽은커녕, 너무도 생생한 꿈을 꾸고 나서 그것을 현실로 착각하는 일도 잦다. 심지어 항상 잠에서 깨기 직전의 몽롱한 상태에선 꿈도, 현실도 아닌 환청과 환각이 보여 거기에 반응한다. 분명히 보이고 들렸기 때문에 나는 대답을 하고 반응을 했다. 때로는 반응을 보이고 난 즉시 내가 또 잠꼬대를 했구나를 인지하는 때가 있는 반면, 그게 진짜 현실이라고 착각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남들과 함께 잘 때 보이게되면 다소 곤혹스럽다. 일반적인 잠꼬대와는 확연히 달라보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이 꿈에는 반드시 최악으로 연출되어 등장하기에 나는 자극적인 영상이나 영화는 되도록 피한다. 흔한 액션 영화에서 피가 나오는 장면이 있으면 눈을 질끈 감거나, 중도에 하차한다. 작은 스트레스라도 생기거나, 고민거리가 생기면 그 또한 꿈에 나올 것이 두려워 세상과의 접촉을 자꾸만 줄이려고 한다.


악몽은 낮잠도 선잠도 예외 없이 파고 든다.

꿈꾸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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