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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머스캣 Sep 20. 2022

19살 택배기사로 시작하여

누나의 시선



내가 처음 브런치를 시작한 건 남동생에 대해 쓰기 위해서였다. 예상치 못하게 처음 기고한 남동생이 쓰러진 일화가 브런치 메인에 걸리면서 많은 이목을 끌었다. 크게 기쁘지 않았다. 왜냐면 원래도 남동생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나는, 괜히 한 번 이목을 끈 남동생이라는 소재를 계속 이용해서 글을 쓰는 것처럼 보일까봐서였다. 하지만, 나는 나보다 5살 어리지만 눈코 뜰 새 없이 일을 하는 택배기사 동생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내 인생의 너무도 큰 부분이 동생으로 들어차있기 때문에 내 글감 또한 남동생으로 가득하다. 


내 남동생은 대학에 가지 않고, 19살 끝무렵부터 택배 기사일을 하다 입대를 하고, 전역 후에 제대로 쉬지도 않고 지금껏 택배기사를 하고 있다. 대학에 가지 않았지만 총명하고, 주변에는 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능력이 있는 내 동생. 혼자서 펜으로 노트에 아빠 글씨체를 한 껏 닮은 요상한 일기들을 휘갈겨놓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사치일만큼 바쁜 내 동생. 해군에 입대해서 비교적 규모가 작은 참수리호 배를 타고 갖은 고생을 하면서, 자신이 가장 후회하는 것이 해군에 입대한 것이라고 말하던 내 동생. 그래서 동생은 전역 후에 1년은 여유를 가지고 싶다고 말했다. 동생이 말한 여유란 마음이 쓰릴만큼 참으로 소박했다. 입대 직전까지 했던 택배 기사가 아니라, 전역 후에는 제 나이 또래가 하는 일반적인 알바들을 생계에 심하게 쫓기지 않고 하는 것, 그리고 국내, 해외여행도 몇 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 휴가 나올 때마다 내내 말했다.


하지만 기구할 만큼 남동생이 전역할 때 즈음이 되자 가족의 재정상황이 악화됐다. 원래도 간신히 엄마, 아빠, 나, 동생이 간신히 받쳐 들고 있던 집안이었지만 동생이 전역할 때 즈음 아버지가 완벽히 무너지셨다. 즉, 네 기둥의 한 모서리가 완전히 박살났다. 지금까지 당면했던 그 어떤 고비들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었다.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생각할 만큼 급작스러운 어려움이 닥쳤고, 당연히 때 이르게 철든 내 동생은 1년만 철없이 살아보고 싶다는 전역 후의 삶을 포기하고, 전역 직후 택배 화물차를 5년 할부로 덜컥 계약했다. 내게는 계약 후 통보를 해서 다소 놀랐던 기억이 난다. 


남동생은 택배차가 출고되기까지는 새벽마다 쿠팡 물류센터로 출근하거나, 대형 펜션 단지의 수영장 청소를 잠시 했고(왁스물로 피부가 뒤집어져서 그만두었다.), 또 민간 쓰레기 수거 업체에서 새벽 4시경부터 오후 5~6시경까지 궂을 일을 했다. 동생 말로는 쿠팡, 펜션 수영장 청소, 민간 쓰레기 수거 중에서 쓰레기 수거 아르바이트가 가장 고되고, 사람이 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 이후로 간혹 보던 초록색 쓰레기 수거 차량과 그 뒤에 매달려서 내렸다 타기를 반복하던 그분들이 부쩍 눈에 밟힌다.


그렇게 갖은 알바를 전전하며 가족의 빚을 나눠지던 동생은 자신이 계약한 화물 트럭이 오자, 곧바로 택배 기사 일을 시작했다. 일터 근처에 적은 보증금과 다소 비싼 월세지만 집을 계약했고, 개인사업자등록을 한 뒤 정식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기에 동생의 자취 시작을 우렁각시처럼 도와줄 수 있었다. 자취를 시작할 때에 집을 돌볼 여력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누나여서 스스로 다행이었다. 그밖에도 나는 5년 터울의 누나이자, 친구, 조력자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내 동생이 나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나도 잘 안다.


엄마는 요즘 개인사업자인 동생에게 우리 집안에 '사장님'이 있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야무지고, 책임감 있는 남동생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내 동생은 어리다. 어리고, 여리고, 제 나이 또래만큼의 소망과 욕구를 갖고 있다. 나와 5살 터울이지만 동생과의 대화는 언제나 깊고, 즐거운 것을 보면 내 동생은 타의적으로 커버렸다. 나도 애늙은이, 애어른이라는 소리를 심심찮게 듣고 자라 동생에게 동질감이 든다. 구부러지기가 무서워서 동생도 나도 뻣뻣하게 버티고 있는 것을 서로 응원한다. 동생이 내 존재의 이유다. 동생이 죽으면 나도 죽을 거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사실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우리 남매는 지척에 살면서 애틋하게 서로를 챙긴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통화를 하고, 밥을 먹고, 같이 집에서 빔프로젝터로 영화를 보고, 하소연을 하고, 일상을 전하고, 배를 잡고 웃는다. 명절 직전이 되면 동생은 벌써부터 스트레스받으며 쏟아질 물량 걱정이 되어 사색이 된다. 명절이 지나도 겨울이 오면 밀려드는 김장철 절임 배추를 나르느라 온 몸이 삭는다. 고구마, 감자 철 또한 말해 뭐하나.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풀어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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