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볕이 드는 곳으로 날 보내줘'라고 제목을 지으려다 말았다. 내가 아닌 누가 날 구원하겠나. 하지만 여전히 내가 나를 끌어 볕이 드는 곳으로 갈 자신은 없다. 지금도 볕이 들지 않는 집에서, 퀴퀴한 공기와 음울함에 저항 없이 무너지고 말았지 않나. 집 안의 큰 창은 이웃집 건물의 주홍 벽돌이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빈틈없이 채운 벽돌 덕분에 큰 창이 아니라 큰 액자 같다.
불면이 심해질 때 그나마 빛이 드는 내 방 창문을 암막 시트지로 덮어버렸다. 행여 가장자리로 빛이 조금이라도 스며들까 검은색 고무테이프로 빈틈없이 메워버렸다. 행여 떨어질까 박스테이프로 시트지를 대각선으로 크게 가로질러 고정시켰다. 행여 미세한 구멍으로 빛 한 줄기가 침투할까 시트지의 작은 상처들도 테이프를 눌러 붙였다. 행여, 겨우겨우 잠든 날 얇은 빛줄기가 깨울까봐, 그렇게 빛 한 줄기마저 미워하는 사람이 돼버릴까 봐, 빛이 삶을 소생시킨다는 걸 알아서 두려워했다. 모순적이지만 빛을 미워하지 않으려 집 안에 빛이 들지 못하게 했다.
높은 층 아파트에 임대주택으로 입주한 친구 집을 다녀왔다. 볕이 드는 집에 살아야겠다고 마음이 꿈틀댔다. 사람은 볕이 드는 곳에 살아야 하구나, 지금 집에서 산지도 어언 3년, 쉽진 않겠지만 바삐 떠날 준비를 해보자. 건조하고 먼지가 고이는 이곳에서, 빛이 들지 않고, 빨래가 마르지 않는 이곳에서, 나를 서서히 잠식시키는 이곳에서 벗어나 볕이 드는 곳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