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인머스캣 Jul 16. 2022

남동생이 쓰러졌다.

5살 터울, 나의 영혼의 단짝이자 전우

 퇴근 후 6시 즈음 집에 오니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보통 이 시간에 오는 남동생의 전화는 퇴근길에 심심해서 수다를 떨자거나, 우리의 소울푸드인 샤브샤브를 한 판 때리러 가자는 제안을 위한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별 다를 것 없는 시간대에, 별 다를 것 없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본격적인 사건을 전달하기 이전에, 남동생과 나의 관계를 단순히 혈육으로만 규정지을 수 없음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나와 남동생의 자취방은 걸어서 3분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화를 자주 한다. 우리에게 '본가'라는 개념은 존재해본 적도 없고, 지금은 그 실체마저 완전히 사라진 상태다. 부모님은 노후 준비는커녕 쓰러져 산산조각 난 집안을 세우는 데에 급급해 지방으로 각자 떠나셨다. 나와 동생 또한 성인이 되니 많은 짐을 함께 져야만 했고, 우리집은 가장이 4명인 집이 되었다. 동생은 19살 때부터 택배일을 시작했고, 나는 대학 4년 졸업 후 24살에 일을 시작했다. 소득이 발생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완벽한 (타의적인) 경제적 독립을 이루고, 사실상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혈육의 애정 그 이상의 전우애와 애틋함을 자연스럽게 형성하게 되었다. '남동생'을 주제로 한 글감만, 그리고 그 타래로 엮을 수 있는 가족사 글감만 벌써 수십 개를 적어두어, 이 한 편에 담기는 힘들다.  나와 남동생의 애틋함이 이 문단으로 전해졌기를 바라며 본 사건으로 넘어가려 한다.


 퇴근 후 동생의 전화를 평소처럼 편하게 받았으나, 수화기 너머에선 평소와는 전혀 다른 동생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나는 막 샤워를 마치고 나와 상의만 걸친채, 머리에선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동생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손에 잡히는 대로 하의를 입은 뒤, 물을 잔뜩 머금은 떡진 머리 위에 모자를 눌러썼다. 슬리퍼를 신고 동생이 있다는 경찰서로 향했다.


 동생은 20살 때는 알바로 택배 기사를 하고, 군 전역 후에는 트럭을 할부로 구매해 개인사업자로 택배 기사일을 하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배송 물품이 들어오는 날은 쉴 수가 없다. 그런 동생이 오늘도 아침부터 심상치 않았던 몸을 이끌고 불볕더위에 배송을 하다가,  돌연 극심한 위경련에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게 동생은 내게 전화를 걸어, 단말마에 가까운 숨소리와 말소리를 섞어 자신이 있는 곳으로 와달라고 했다. 나는 체온을 낮춰주기 위해 수건에 물을 묻혀 챙겼고, 가는 길에 재빠르게 약국에 들러 증상을 설명하고 약을 처방받았다. 도착하니 동생은 반은 넋이 나간 상태로 파출소 앞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급작스럽게 찾아온 위경련에 트럭의 핸들조차 돌리지 못할 수준이 되자 급하게 일을 중단하고, 눈앞의 경찰서로 도움을 요청하러 간 것이다. 횡단보도에 급정차한 트럭이라도 어떻게 옮겨주실 순 없는지 여쭈었으나, 불가능하다고 하여  일단은 그 자리에 멈춰서 나를 기다린 것이다. 낮에 병원에 가서 수액도 맞았다고 하지만, 수액을 맞는 도중에 구토를 심하게 해서 제대로 치료가 되지 않은 것 같다고 동생이 말한다.


 핸들조차 돌릴 수가 없고, 안 그래도 유독 묵직한 화물 트럭의 엑셀 다리의 근육 경련으로 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지 못하던 동생은 내가 데리러 가자, 잠시 뒤 나를 조수석에 태우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횡단보도에 내팽겨 둔 트럭을 집으로 겨우 몰았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지듯 누워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동생의 입은 바싹 말라 있었고, 더운데 춥다는 말을 연신 해댔다. 동생의 양말을 벗겨주고, 작업복을 하나하나 벗을 수 있도록 도와준 뒤, 샤워를 하도록 일으켰다. 샤워 전에 급한 전화를 먼저 해야 한다기에, 휴대폰 들 힘도 없는 동생에게 당장 내일 일을 도와줄 대타에게 양해를 구하기 위한 전화를 걸어, 전화기를 받쳐주었다. 줄줄이 통화가 끝난 뒤, 나는 동생에게 샤워하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고 당부하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에서 가장 순한 죽 3개와 이온음료를 사서 돌아와, 샤워 후 동생이 누울 자리를 마련해놓았다. 동생이 누워서 바로 손 닿을 곳에 핸드폰과 스마트 워치, 에어컨 리모컨, 이온음료, 생수를 올려두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동생의 머리를 말려주고, 뉘인 뒤에 동생의 팔다리를 주물러주었다. 제발, 조금이라도 나아지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담담한 척 동생을 간호했다.


 동생은 샤워를 하면서 마지막 발악에 가까운 구토를 한 모양이다. 안압이 높아져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근육은 경직되어 있었다. 듣자 하니 토하면서 코피까지 같이 쏟았다고 한다. 편의점에서 돌아왔을 때, 내 장마저 비틀리는 것 같은 동생의 토악질 소리가 생생하다. 나는 침대 옆에 걸터앉아 동생이 이온음료와 생수를 적절히 마시도록 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정말 다행스럽게도 조금은 나아졌는지 동생은 그간 택배 배송에서 있었던 진상 고객 에피소드와 일상의 이야기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평소 동생의 모습에 조금은 가까워진 터라 나도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그렇게 두 어시간을 더 수다 떨고, 위급하면 바로 전화를 하라는 당부를 한 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나도 동생과 가까이 살면서,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구원받은 정말 애달프고, 소중한 경험이 여러 번 있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아픔을 주고받고, 기대는 법을 배우며 단단해지고 있다고 믿는다. 한 명이라도 무너진다면, 가족 전체가 무너질 테고, 그 이후론 삶의 목적성이 사라진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에 회복하려 갖은 애를 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무너지면 같이 무너질 가족을 위해 쉬지도, 죽지도 못하고 스스로를 계속 일으켜 세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