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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머스캣 Sep 22. 2022

나는야 번아웃형 인간



자기계발서와 에세이는 현대인들에게 '번아웃'이 찾아오기 전에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도록 강조한다. 나 또한 전형적인 현대인으로 번아웃 증후군을 자주 겪었다. 단순히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가 아니라 육체와 정신, 모든 것이 타버린 상태, 재만 남아 더 이상 어떤 동력도 존재하지 않는 무기력한 상태 정도는 되어야 감히 번아웃이라 지칭할 수 있다. 번아웃이 찾아올 때마다 딛고 일어나는 방법 시기는 때마다 상이했다.


수없는 굴곡 끝에 내린 결론, 나는 번아웃형 인간이다. 즉, 번아웃을 즐기고, 번아웃이 올까 전전긍긍, 두려워하는 데에서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끝에 번아웃이 있을지라도 지금 당장의 레이스를 중단하기 싫다. 수많은 사람들과, 대중, 유명한 책들이 '적당히 해.', '그러다 번아웃 온다.', '자기가 번아웃이 올 수 있는 지점을 경험하고, 사전에 번아웃을 예방하는 것이 현명해.'라고 말한다. 어떤 부분을 우려하여 조언하는지 잘 안다. 나도 번아웃이 온 시기에 심연의 끝까지, 나락까지 다녀온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은 조언을 한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번아웃을 즐긴다. 내게 번아웃은 뛰어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반증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거세게 밀어붙여 레이스 도중에 번아웃이 와서 중도 포기를 해도 기쁘다는 뜻이 아니다. 레이스를 중도 포기한 적은 없다.


알면 알수록, 배우면 배울수록 물질적 영역으론 불변하는 세상과 공간의 인지적 영역이 넓어진다. 같은 길을 걸어도, 같은 것을 보아도, 같은 대화를 해도 보고 들리는 것들이 달라진다. 그 새로운 세상들을 만나는 데에 매료되어서 나는 번아웃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웃기지만, 번아웃이 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상태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서 용수철처럼 튕겨져 나가 재빨리 번아웃 상태에서 탈출한다. 쉬엄쉬엄하라는 주변의 만류에 수긍하던 때도 있어, 다른 이의 조언에 따라 명상도 해보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침대에 누워도 보고, 괜히 예능이나 유튜브, SNS에 표류도 해보았으나 결국은 깨달았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내게는 더 큰 스트레스이고, 내게 휴식은 다큐를 보고, 차이나는 클래스를 보거나, 머리를 식힐 겸 비문학이 아닌 문학을 읽고, 등산을 하고, 운동을 하는 것이다. 시간의 공백이 의미 없다고 느껴지면 나는 힘들다.


그래서 지금 나의 삶을 톺아보면 다음과 같다. 평일에는 직장에 있으니 어느 정도 루틴이 잡혀있다. 새벽 6시 30분쯤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아침을 챙겨 먹는다. 아침으론 주로 과일이나 간단한 밥 한 끼를 먹는다. 출근을 하는 동안은 약 30분 남짓동안 버스에서 책을 읽는다, 가끔은 가사를 음미하며 노래를 듣는다. 9시에 일과가 시작되면 거의 10분도 쉴 틈이 없다, 중간중간 주어지는 쉬는 시간에도 업무 연구를 하고,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점검하고, 또 다른 가능성이 보이면 파고들어본다. '하얗게 불태웠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일과 후에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너무도 지쳐서 귀가하기, 운동 가기, 추가 근무 하기, 이 세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한 뒤의 루틴은 같다. 퇴근 후 오가는 길에선 영어 회화 공부를 주로 한다. 선택지의 행동을 마치고 집에서 저녁상을 차리고 실시간 뉴스를 밥친구 삼아 끼니를 챙긴다. 저녁을 마치면서 뉴스도 끄고, 설거지와 집안일을 한다. 그리고 다시 책상에 앉는다. 그리고 날에 따라, 독서, 코딩, 프로그래밍 공부, 글쓰기, 다큐 보기, 사피엔스 스튜디오 강연 보기, 환경과 탄소중립 공부, 환경 교육 연구, AI/SW 교육 공부, 업무 관련 연수 듣기, 자료 아카이빙하기, 캘린더 점검하기, 일정 조정하기, 가계부 분석, 재정 계획 세우기 등을 한다.


평일이 지나면 짧지만 매번 알찬 주말이 온다. 매주 토요일 오전에는 운동을 가고, 오후에는 책을 읽고 5년째 운영 중인 독서 모임에 나가 그간의 많은 것들을 해우한다. 독서모임에서 다채로운 직업과 성격의 사람들과 대화하며 보내는 시간은 가끔 가슴 벅찬 순간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못다 한 평일이 업무와 연구를 계속하거나, 사람을 만난다. 또는 도서관이나 서점에 놀러 간다. 날씨가 좋으면 대뜸 혼자서 등산을 다녀오기도 한다. 주말 일정을 소화할 때 오가는 길에서는 이북리더기로 책을 보거나, 역시 가사를 음미하며 노래를 듣는다. 그런데 요즘은 영상이나 음악 등에서 오는 청각 자극이 썩 유쾌하지 않게 느껴진다. 얼마 못가 이어폰을 빼고, 세상의 소음을 편안히 담는다. 활자가 참으로 편한 때이다.


나는야, 번아웃형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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