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직장은 신도시에 있다. 이곳은 최근 신도시답게 일관된 모양의 아파트들이 줄지어 있고, 아파트 숲을 끼고 도보와 도로가 멀리 뻗어 있다. 일자로 쭉 뻗은 도로엔 정류장이 무려 3개가 연이어 있다. 일자진이라고 이름 붙여보는 이와 같은 정류장의 포진은 탑승객도 버스기사도 조금은 피곤한 상황을 매일 연출한다.
일자로 늘어선 정류장과 정류장 사이에 애매하게 자리한 내 직장 덕에 나는 퇴근길에 정류장을 향해 걷고 뛰며 계속 뒤를 돌아본다. 혹여나 뒤에서 버스가 전 정류장을 지나 내가 향하는 정류장으로 오는 앞통수가 보이면, 뛰어야 한다. 나 같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닐 테고, 이런 풍경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나같이 급박한 뜀박질을 하는 사람들을 나도 많이 본다. 기사님들은 애처롭게 뒤를 살피며 달리는 사람들을 보시곤 항상 정류장에 먼저 도착하더라도 기다려주신다. 나는 매번 가쁜 숨을 내쉬며 버스에 올라타 감사하다는 인사와 마음을 또렷이 전달한다.
하지만, 난 이제 정류장으로 달리지 않는다. 그 이유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일단 내가 퇴근할 때 탈 수 있는 버스는 단 하나지만, 배차간격이 그리 길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제 여유를 가지기로 했다. 내가 퇴근길 정류장을 향해 가고 있을 때 유유히 내 옆을 유일한 퇴근 버스가 지나가도 쿨하게 보낸다. 어차피 곧 또 오니까 그걸 타면 된다. 이는 첫 번째로 나의 퇴근길 정신건강에 매우 유익하고, 두 번째로 긴박하고 애처롭게 달리는 나를 매일 발견할 기사님들도 덜 신경 쓰이지 않을까 싶다. 일석이조다.
한편, 우리 동네 버스 정류장에선 기사님들이 매 정류장마다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평균적으로 탑승 인원이 그리 많지 않아서, 정류장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버스를 탈 승객인지 아닌지 계속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정류장 앞쪽에 서 있으면 자신의 승객이라 생각하시는 것이 대부분, 정류장에 앉아 있어도 자신의 승객이라 생각하시는 것이 반절 정도라고 정성적인 예측을 해본다. 심지어 몇몇 기사님들은 정류장에 앉아 핸드폰을 하고 있을 때, 자신의 버스를 놓치는 승객이 아닐까 클락션까지 울려주신다.
버스가 연달아 올 때는 당연히 자신의 승객이 누구인지 구별하기 힘드실터라, 나 혼자 기다리는데 버스가 연달아오면 내가 탈 버스를 향해 정확한 눈길을 꽂아서 떼지 않는다. 내가 탈 버스가 아니면 일부러 버스 번호를 확인하는 눈길 제스처 한 번 후에 곧바로 눈길을 거두곤, 뒤로 멀찍이 물러난다. 기사님이 조금은 편하지 않으실까. 앞선 버스 기사님이 괜히 아리송하지 않으시도록. 기사님이 명확히 볼 수 있는 타이밍에 맞추어 멀찍이 물러나는 몸짓을 크게 보이려 노력한다.
그저, 내가 버스 기사였다면 그들의 직업상 당연한 일이지만 매 정류장마다 탑승객을 살펴 가리는 것이 상당한 에너지가 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