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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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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머스캣 Sep 26. 2022

[책과 삶] 고통 없는 사회




나는 본디 책을 사지 않는다. 무조건 도서관에서 보거나, 서점에 털푸덕 앉아서 몇 시간을 내리 읽고 고이 놓아두고 온다. 자취하는 미니멀리스트라 책이 얼마나 번거로운 짐이 되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나의 공간을 내어주면서까지 사고 싶은 책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처음으로 책을 샀다. 도서관에서 빌려서 책을 끝까지 읽은 뒤, 이 책은 반드시 사야겠다는 마음이 마구 샘솟았다. 그 흔한 '인생책'하나 없는 나는 이 책을 처음 돈주고 데려왔다. 인생책이라고 말하긴 애매하지만, 두고두고 곱씹고, 밑줄을 치고, 내 생각을 기록하며 읽고 싶은 책이었다. 읽을 때마다의 감상 기록을 페이지 곳곳에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샀다.


'고통 없는 사회'는 다음의 세태를 꼬집는다. 현대에서 사람들은 성과 사회와 자유주의라는 진보적인 이데올로기 하에 사회, 문화에 대해 불안과 저항을 내보이지 않는다. 개인이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오롯이 개인의 탓이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도 분명히 존재하나, 개인들은 자신들에게 자유가 주어졌으니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자기 계발이 부족한 탓이라 여겨 사실상 '자기 착취'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고통을 제거하려는 끊임없는 움직임들을 우리는 보지 못하고 있다. 고통만이 인간에게 실존을 부여한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인간이 사유하고, 행동하게 만든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진통 사회다. 이데올리기와 미디어, 의약품들이 작게 피어오르는 고통의 싹을 모조리 뽑아버린다. 이는 사유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며, 더이상의 혁명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실과 실존은 고통을 수반해야만 한다. 책의 관점과 나의 관점이, 나의 삶이, 가치관이 일치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짜릿했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고통으로 점철된 나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


작가는 한국 사람이지만 독일어로 책을 썼고, 그 책이 한 번 번역되어 온 터라 가독성이 좋진 않다. 하지만, 간결한 단문들로 이루어진 문장 하나하나가 내 머리와 가슴을 세차게 내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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