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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머스캣 Jul 15. 2022

내 인생에 건배

28년 인생, 난생처음 가장 기묘하고 벅찬 하루

 28년 지독하고 치열하게 살아남았고, 그리고 가치롭고 열정적으로 삶을 쌓아왔다. 그럼에도 안타깝게 나는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한 사람이었고, 나 자신의 성취를 기뻐해 준 적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스스로를 칭찬하는 순간 긴장의 끈을 놓아버릴까 심히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20살에 바로 대학에 입학해, 24살엔 졸업과 동시에 취직을 했다. 그에 따라 정기적인 소득이 발생하면서 삽시간에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 같던 우리 집의 가장이 되어버렸다. 속 시끄럽고 눈물만 나는 가정사는 일단 넣어두기로 하자. 여튼 가장이 된 이상 나는 더 공부하고, 배우고, 정진하고, 기록하고, 발전하는 데에 모든 에너지를 쏟기 시작했다. 쏟은 에너지만큼의 만족스러운 결과물은 아니지만 당연히 얻은 것이 많았다. 다만,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라고 했던가, 나는 '멍때리는 법'과 '휴식하는 법' 두 가지를 '잊어'버렸다. 이것은 재앙에 가까운 상실이나, 다행히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잠시 '잊어'버렸을 뿐이다. 정신과 육체의 건강함이 깃들고 조화를 이루는 순간 되찾을 것이 분명하다.


 오늘은 서론이 참 길다. 본론을 먼저 짚고, 스스로도 정돈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오늘은 '기분 좋아서' 술을 잔뜩 마시고 주절주절 두서없는 말들을 늘어놓는 어릴 적 아빠 같다. 게다가 내가 글을 쓸 때 되도록 피하려 하는 만연체, 동어반복, 비문의 향연이라니.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오늘은 내 인생에 다시 찾아올까 싶은 기묘하고 벅찬 날이다. 무엇부터 읊어내야 할지 심히 고민이 되는 탓에 기쁨의 감정이 흐릿해지는 것만 같으니 오늘만큼은 술 취한 아빠에 빙의해야겠다.


 일단 첫째로, 오늘은 출근부터 퇴근까지 과장을 아주 조금 보태어 몸이 백 개여도 불가능한 업무들을 소화해냈다. 심지어 내 업무만 해도 산더미였지만, 동시에 코로나에 걸린 동료의 업무, 곤경에 빠진 동료의 문제까지 안정적으로 해결해냈다. 힘들다기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삐 움직이면서도, 내 손길로 답 없이 꼬인 실타래 같던 업무들이 차근차근 마무리되어가자 도파민과 활력이 솟구쳤다. 업무 추진력과 해결력이 아주 우수하다고 스스로 처음 느꼈다. 내가 내 자신의 성과와 능력을 인정해준 역사적인 첫날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능력 있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순간 안주하게 될까 봐 강하게 부정해왔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아무래도 아주 꽉찬 육각형 인재였던게 맞구나 생각하며 퇴근 버스에 올랐더란다.


 둘째로, 같은 날 글을 썼다시피 오늘 1000만 원의 신용대출을 상환했다. 나름 세계 정세와 시장을 통찰하고 재빠르게 내린 결정이라 아주 후련하고 만족스러웠다. 말로 표현 못할 후련함과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자부심이 만나서 폭발하는 감정은 랍도록 벅차다.


 셋째로, 브런치의 작가가 되었다. 월요일에 작가 신청을 했고, 5일 내에 답변을 반드시 준다는 안내 문구에 참으로 친절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며 기다렸다. 무기한 심사면 피를 말렸을텐데, 합격과 불합격 결정을 5일 내에 내려준다니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4일 차까지 소식이 없자 약간은 입을 삐죽인 건 비밀이다. 사실, 3일 뒤에 작가 선정 메일과 알림이 왔으나 5일 뒤에 발견 한 것도 비밀이다. 그렇게 대망의 오늘, 5일 차인 금요일에 작가로 선정되었다는 알림을 '발견'했다. 지금 어리둥절하면서도 너무 놀랍고 기뻐, 말문이 막혀선 눈만 껌벅거리고 있다.


 놀라운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넷째로, 집주인분께 건배를 제의하고 싶다. 하, 드디어 집주인분께서 삶의 질을 수직하락시키는 집안의 세 가지 하자를 수리해주셨다. 4월부터 부탁드렸으나, 차일피일 미루시다가 은혜롭게도 드디어 들어주셨다. 이 악독한 하자들을 설명하자면 글이 중언부언 너무 길어질까 따로 써서 올려야겠다. 어쨌든 퇴근하여 집에 오니 하자가 말끔하게 해결된 집안이 나를 반겨주었다.


 사실 아직도 안 끝났다. 다섯째, 오늘은 본봉에서 수당이 추가 지급되는 날이다. 후다닥 비상금 파킹 통장에 넣는데 웃음이 해실해실 새어 나온다. 가계부에 적어 넣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경쾌하다.


 정말 마지막으로 여섯째, 저번 주 연일 극심한 위경련으로 시름시름 앓으면서도 택배 배송을 하던 동생이 드디어 회복됐다. 낯빛도 좋아졌고, 통화하는 목소리도 한 껏 밝아져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5살 터울인 나와 남동생은 가장의 의무를 함께 지고 있어 혈육의 애정, 그 이상의 전우애를 가진 아주 특별한 관계다.


https://brunch.co.kr/@alswn4345/3



 

내 인생에 이런 겹경사가 들이치는 날이 찾아오다니, 축배를 들자. 오늘밤만큼은 매일 꾸던 악몽에서 적어도 작은 반란이라도 일으킬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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