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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머스캣 Jul 26. 2022

무작정 108배

어둠과 잡음을 몰아내기 위해 안 해본 것이 없었다. 미친 듯이 글을 써보고, 몸을 혹사시키는 운동으로 주의를 분산시켜보고, 유희 위주의 콘텐츠에 부유해보고, 노래에 기대보고, 책에게 도움을 청하고, 명상을 시도해보았다. 몇몇은 잠시 통했으나 점점 내성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몇몇은 오히려 새로운 잡음을 만들어냈다. 끈적이는 음울함에서 몸부림칠수록 더 엉겨 붙고, 내 손발과 온몸을 더욱 꽉 동여매어 침몰시켰다. 


하지만, 이대로 침몰할 수 없지. 내가 가진 귀중한 내면의 보물은 지독한 생(生)에의 의지니까. 또다시 타개할 방법을 찾아 나선다. 이전에 명상으로 머리와 마음을 비우는 것은 생각보다 난이도가 높았다. 뇌의 스위치가 단 1초도 꺼지지 않는 나같은 사람의 경우엔 당장 혼자 실행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요가는 동작의 난이도가 있어, 정신수련보다 육체단련에 훨씬 더 신경이 쏠렸다. 


이번에는 108배를 해보겠노라 마음먹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소위 말하는 '부름'처럼 느껴졌다. 비워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에 거듭 실패한 나는, 차라리 무언가를 강력히 소원하겠다는 의지를 담아내는 108배가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언제 또 내성이 생겨 그만둘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작한다.


불교의 교리와 108배의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시작한 것이 아니다. 나는 종교를 내 속에 품은 적도 단 한 번도 없다. 그냥, 108배를 시작했다. 퇴근하여 비척비척 집에 오는 동안 가자마자 108배를 해야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지금 나를 구원할 새로운 방법이라는 확신이 이상하리만큼 들어찼다. 


집에 오자마자 요가매트를 깔고 절을 했다. 108배는 생각보다 금세 끝났다. 108배의 움직임은 나름의 순서가 있지만, 동작이 매우 단순하다. 단조로움 움직임을 흩트리지 않으려 애쓰는 것만으로 육체의 집중은 충분했다. 합장을 한 채로 무릎을 대고, 천천히 머리를 바닥에 대어 절을 하고, 손바닥을 위로 뒤집어 내보일 때 깃드는 감정이 묘했다. 내 안의 소음을 덜어가 달라는 몸짓이자, 값진 무언가를 조금은 나누어달라는, 받들겠다는 몸짓이기도 했다. 절을 하는 동안 땀방울이 세차게 쏟아지며 요가매트에 스며들어 일시적으로 넓은 얼룩을 그렸다. 그 땀방울들이 내 안의 해방이자 부름에 대한 반응이라고 여겨졌다. 마지막 108번째 절을 하고 일어날 때에는 극도의 경건함과 간절함을 가득 품은 마음이 느껴졌다. 무엇을 향한 간절함인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그 알 수 없음이 황홀해서, 내일도 일단 108번의 절을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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