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인머스캣 Jul 27. 2022

108배 2일 차, 종교를 이해하다.

무작정 108배를 시작한 것이 바로 어제였다. 오늘도 당연한 듯, 마치 오래 그래 온 듯 집에 와서 108배를 가장 먼저 했다. 심지어 퇴근 직후 2시간가량의 웨이트와 30분의 유산소 운동을 하고 왔지만, 108배는 운동과는 전혀 다른 영역의 루틴이다. 그래서 운동을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냅다 절을 시작했다.


108배를 처음 한 어제보다 두 배의 시간이 걸렸다. 어제는 15분 정도가 걸려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는 말을 남겼었다. 하지만, 오늘은 30분가량이 걸렸다. 시간이 배로 늘어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먼저, 조금 더 정확한 자세를 익힌 뒤 오늘 다시 108배를 했다. 어제는 분절된 세세한 동작 없이, 하나의 연결 동작 같은 움직임이었다면, 오늘은 달랐다. 합장을 더 가지런히 하고, 합장을 유지한 채 무릎을 대고, 머리를 바닥에 한껏 숙이고, 손을 위로 받드는 동작 하나하나, 손끝과 발끝까지도 가지런히 하려 심혈을 기울였다. 괜히 절을 할 때 무릎이 벌어지는 것 자꾸 모아 최대한 붙였다. 맥락이 조금은 다른 예시지만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라는 말처럼 어떤 마음으로 절을 하느냐보다 일단 간절함과 경건함을 담은 몸짓이 먼저였다. 그러다 보니, 내가 무엇을 위해 절을 하고 있는지 서서히 피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내 몸짓은 더더욱 가지런해지고 손짓은 더 간절해졌다. 108번 중에 단 한 번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중간 즈음부터는 눈을 감았다. 주변의 감각을 최대한 차단하고 108배에 집중하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108배를 시작한 이튿날, 나는 종교의 존재 의미를 이해했다. 지금껏 마음에 종교라는 존재를 품어본 적이 없었고, 사실 부정하는 쪽에 가까웠다. 종교라는 것, 누군가를 추앙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도 낯설고 신비한 세계였다. 신의 존재에 기대며 모든 삶의 인과관계를 신으로 귀결시켜버리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간과 종교의 관계는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평생의 연구대상이야.'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제는 안다. 종교는 인간의 영역에서 저 멀리 벗어나 합리성을 따지지 않는 세상과 존재를 향한 외침이다. 그곳에, 그에게 내 노력과 무관한 삶의 고난과 어둠을 걷어달라 애원할 수 있다. '돈을 많이 벌게 해 주세요.', '시험에 합격하게 해 주세요.', '그 사람의 마음을 얻게 해 주세요.'처럼 인간의 노력이 조금이라도 개입할 수 있는 소망을 비는 것은 신적인 존재를 믿는 것도, 종교를 믿는 것도 아니다. 인간이 개척할 수 없고, 인간의 노력으로는 막을 수 없는 불행한 숙명을 방지해달라고,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지만 실낱같은 희망으로 부탁할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종교이며, 그 형태는 무한하다.


나의 108배도 종교와 같다. '우리 가족이 당장 죽지 않게 해 주세요.', '지금 십수 년째 가장의 무게에 짓눌려 온몸이 비틀어지고, 망가진 채로 일하고 있는 아버지가 그토록 갈망하던 경제적 안정이 손에 닿았을 때, 돌연 긴장이 풀 죽지 않게 해주세요.', '지금 아버지가 살고 있는 것이 이미 죽어야 할 육신의 상태이나 정신이 죽지 않아 덤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해주세요.', '어린 나이부터 택배 기사일을 하고 있는 동생이 사고를 내거나, 사고를 당하지 않게 해 주세요.', '어린 나이에 철들어야만 했던 동생의 위태로운 내면이 부서지지 않게 해 주세요.', '혈혈단신 지방에서 작고 여린 몸으로 궂은일을 하고 있는 엄마가 불미스러운 일,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해 주세요.', '평일에는 밤낮없이 요양원에서 일하고, 주말엔 새벽부터 떡볶이집에서 일하는 쉼없는 엄마의 삶이 무너지지 않게 해 주세요.', '제발 우리 가족을 살려주세요.', '우리 가족 중 누군가 돌연 죽어버려서 지독하게 불행하지만 처절하게 맞서 온 가정사의 결말마저 비참하지 않게 해 주세요.'라며 염치없는 바람을 가득 담아 연신 머리를 땅에 박았다.


누구에게, 어떤 존재에게 외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인간이 개척할 수 있는 운명 그 밖의 것이다. 무엇을 위하여, 무엇을 빌어낼지 모른 채로 무작정 엎드리기 시작한 108배의 겨우 이튿날에 위의 깨우침이 깊숙이 파고들었다. 계속해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무작정 108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