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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머스캣 Nov 14. 2022

마음이 경건해지는 생일날

받는 마음들이 너무 크고 따뜻한 생일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몇 년 전 내 생일날은 토요일이었다. 그래서 그 때는 금요일 밤부터 생일날인 토요일 점심 12시께까지 핸드폰을 일부러 확인하지 않았다. 점심 12시쯤 쌓여있는 축하 문자들을 한 번에 만끽하고 싶어서였다. 마치 연간 사람 농사지은 것을 확인하는 옹졸한 마음이 그때는 왜 발동했는지 모르겠다. 그 옹졸한 해가 문득 기억나는 이유는 올 해는 예상치 못하게 받은 마음들이 너무 크고 많아서 감사하고, 미안하고, 괜히 경건해지기까지 해서다.


 올해는 월요일이 생일이라 출근하고서부터 생일 축하 문자 행렬이 시작되었다. 보통 늦은 생일 축하 문자는 해도 미리 생일 축하를 하는 법은 거의 없기에 주말에는 조용히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출근 버스서부터 쌓여가는 메시지들을 함부로 읽고 답하지 않으려 미리보기로 봐야만 했고, 퇴근이 다 되어서야 하나하나 그 감사한 마음들을 읽으며 답장을 할 수 있었다. 나만 바쁜 월요일이 아니기에 모두가 바쁜 와중에 내 생일이라는 작디작은 날을 챙겨주는 마음들이 너무 고마워서, 정성스레 답장하고 싶었다. 고마운 마음과 그간의 애정하는 마음을 정리해서 답을 하다보니 내가 받은 축하 메시지보다 3~4배는 더 긴 답장을 보내게 됐다. 


 생일이란 것이 전혀 기쁘지 않을 정도로 눅진눅진한 삶을 살고 있었는데, 내가 챙기지 않았던 사람들마저 나를 챙겨주니 경건해진다. 그간 관계에서 내가 무엇을 그들에게 주었기에 이리 화답해주는가를 돌아봤다. 눅진한 삶 가운데에 사람들과의 만남을 차단하고 사는 요즘, 돌아보니 해준 것이 참 없다는 생각만이 든다. 분명 그렇지 않을 텐데, 수많은 관계들에 혼자 지쳐 나가떨어진 탓인지 나도 그들에게 중요한 존재이기에 환대받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나는 현재 크고 작은 관계들을 더 이상 늘리고 싶지 않아서 숨어 있는 상태다. 지금 가까운 사람들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항상 마음이 한 켠이 불편한데, 자꾸만 또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서 내 울타리를 넓히는 것이 버거웠다. 사실, 지금 있는 사람들의 부름에만 응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간 인생의 어떤 선택이 내 지금을 결정했을까. 인간관계 또한 어디까지가 현명한 선택이었을까. 나의 시간과 마음을 들여서 맺은 관계들이 지금 남아있는가. 노력으로 만든 관계인가, 노력하지 않아도 만들어졌을 관계인가. 고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면 결국 인생은 끝없는 고통의 연속이라는 생각만이 남는 요즘, 뜻하지 않게 생일날 사람들의 마음은 얼마나 넓고 아름다운가를 실감한다. 나는 온종일 생일이라 기쁘고 신나는 마음보다는 그 마음에 보답하려, 길고 길게 답장을 쓰면서 엄숙한 마음이었다. 아, 어렵다. 지금도 나는 인간관계를 타의적으로 맺고 있진 않은가, 외향성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자꾸만 원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고 있진 않은가. 이런 고민들이 끝도 없이 나를 좀먹는 매일이다. 찾는 이들은 많지만, 부름에 응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 나를 나는 인정해줘야 하는데, 내가 타박한다. 과거의, 지금의 선택은 미래 내 인생의 어디까지를 좌우할까. 알 수가 없으니 현재에 내가 가장 행복한 선택을 하는 것이 역시 가장 정석적인 답일까. 마지막 문단은 오늘의 생일에 대한 나의 단상과 요즘의 고민이 뒤섞여 글들이 두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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