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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머스캣 Nov 27. 2022

연말계획 없는 것이 내 멋진 연말계획



 거의 처음으로 연말 캘린더가 텅텅 비었다. 정확히는 텅텅 '비웠다'. 올해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송년회는 못하겠다, 신년회를 기약하자며 약속을 한 둘 미루었다. 이번 주에 금, 토 약속 두 번이 있는 것이 신경은 쓰이지만 그 이후로는 아무런 계획이 없어서 감당 가능하다. 아아, 이렇게 행복할 일인가. 분명 연말에 가득 차있는 캘린더를 보며 설레어할 때가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에게 경이로움을 느낄 정도다. 내가 내향적으로 변한 것일까, 아니면 기질적으로는 외향적이나 내향적인 기질이 우세한 시기일까, 아니면 지금껏 내향적이었으나 생존형 외향력을 뽐냈던 것일까. 기질과 성격의 구분을 전문가도 아닌 내가 명확히 하기란 참 힘들다. 어디까지 타고났으며, 언제부터 어디에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세상 누구도 정확히 모를 것이다. 여튼, 내 연말은 나로 가득 채워야지. 그래야 다음 해를 또 살아내지.


 사실 오늘도 볕이 없는 집에서 한참을 잠식되어 있다가 글을 쓴다. 누군가의 부름에 응하는 것도 힘들지만,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도 볕이 없는 탓에 꽤 힘들다. 창문을 열면 옆 건물의 빼곡한 붉은 벽돌이 보인다. 불면증이 한참 심할 때 집안의 모든 창문을 암막 시트지로 가려버려서, 미세먼지라도 심한 날에는 창문을 닫고 있으면 밤낮을 구분할 수가 없다. 최근에 남동생과 인근의 행복주택에 지원했다. 지원일까지 매일같이 통화를 하며 행복주택에 들어간다면 달라질 우리의 생활에 대해 행복한 상상을 나누었다. 경쟁률이 10대 1에 육박해서 희망을 가지지 말자고 하면서도, 자꾸만 행복주택에 당첨되면 지금의 빌라촌에서 떠나 주차공간도 있고, 주거의 틀이 잡혀있는 아파트에 살게 될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연말의 기적이 일어나 이제는 우리 남매도 행복할 길을 열어줘야하지 않겠냐며 간절히 빌었다. 둘 다 행복주택에 당첨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다면 필시 우리 인생의 물길이 바뀔 것이라고도 이야기했다.


 행복주택이 아니면, 사실상 우리가 그 정도 집세를 내고 번듯한 집에 살아볼 일은 없기 때문이다. 행복주택에 들어가면 타지에서 밤낮없이, 계절 없이 몸을 갈아 일하고 있는 엄마와 아빠가 놀러 왔을 때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맞을 수도 있을 터이다. 만약 된다면, 나는 그 기쁨으로 3개월은 어떤 역경도 무시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되지 않는다면 찾아올 실망감과 무기력에도 대비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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