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향집 고찰을 빙자한 요즘의 일상
최근 완벽주의와 게으름의 기묘한 조화로 빚어진 나의 삶은 독특하다. 현재 나의 일이 가장 한가로운 시기라서 그간 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루겠노라 야심차게 계획했었다. 그런데 요상하게도 바쁜 와중에 틈틈이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은 더 재미있고 집중이 잘 되는 반면, 여유로운 와중에는 생산적인 일에 손을 뻗는 것조차 힘들다. 바쁠 때 오히려 틈틈이 적당한 휴식을 취하면서 지내면 좋을 것을 나는 바쁠 때 더 바쁘게 사는 것을 알고 보니 즐겼고, 한가로울 때는 한없이 게을러지는 사람이더라. 번아웃이 오기 딱 좋은 형태랄까. 여하튼, 서문이 길었지만 글을 쓰는 것조차 게을러지는 요즘이다.
이사 온 지 한 달 남짓이 다 되어 간다. 이사 온 집은 "알고 보니" 북향집이었다. 좋은 매물을 발견하고 급하게 이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 중요한 것을 미리 체크하지 못했다. 누군가 이사를 간다 하면 무조건 남향집으로 가라는 말을 가장 먼저 강조하던 내가 북향집, 그것도 정북향집에 이사 왔다. 어쩐지 이사 첫날에 우풍이 너무 심해서 겨울 이불 두 개를 겹쳐서 덮고 자야 했다. 이불속에서 오돌오돌 떨며 무언가 잘못됨을 느낀 나는 그제야 핸드폰의 나침반 어플을 급히 켰다. 나침반의 바늘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북향을 가리킨다. 나와 동생 방의 창이 정북향, 거실창은 그나마 북서향이다. 아뿔싸, 큰 일이다. 동서남북 중 가장 기피하는 북향집에 내 발로 들어왔다니.
그런데, 살아보니 북향집 괜찮다.
1. 견딜만한 우풍과 추위
이사온 첫 날, 우풍이 심하다고 생각했으나 견딜만하다. 현재 신축빌라에 입주한 터라 이웃 세대가 2가구 밖에 없어서 집 자체가 조금 춥다. 가능하면 창과 떨어져서 침대를 두는 것이 좋다. 우스꽝스럽지만 나는 침대가 창가에 붙어 있어 창가 벽 쪽의 침대 2분의 1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만 잔다. 뭐, 나쁘지 않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벽에 붙어서 잘 예정이다. 북향집의 추위는 햇빛이 많이 안 든다는 점에서 기인하는 듯하다. 하지만, 종일 균일한 조도가 유지되는 북향집의 장점 덕에 집 안에 온도 변화가 크지 않아 적정 온도로 난방을 유지할 수 있어 난방 효율이 좋다.
2. 대신 여름에 시원하다!
3. 적당한 조도
북향집은 햇빛이 많이 들지 않는 것이 최대 단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나에게는 너무도 큰 장점으로 느껴진다. 햇빛이 가장 잘 드는 남향집, 오전에 밝고 오후엔 금세 어두워지는 동향집, 오후에 서서히 태양이 지는 서향집을 제치는 북향집의 최대 장점은 온종일 균일한 조도다. 햇빛이 많이 들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루 온종일 같은 양의 햇빛이 닿는다. 너무 밝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은 차분하고 편안한 조도가 큰 변화 없이 유지된다. 기분 변화가 큰 내게 안성맞춤이다. 그 어느 시간대에도 동일한 밝기의 거실 풍경은 안정감을 준다. 무언가에 집중하기도 적당하고, 낮잠을 자기에도, 가만히 명상을 하기에도, 차를 마시기에도 좋다. 겨울에도 이리 좋은데 여름에는 해가 길어지니 기대된다.
결론적으로 북향집은 나같이 내면의 기복이 큰 성향의 사람에겐 딱이다. 위의 장점을 누리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은 덤이다. 하지만, 북향집도 북향집 나름이다. 반지하거나, 앞뒤가 건물로 빽빽하게 채워져 햇빛이 새어들 틈이 없는 북향집은 온종일 더 어둡고, 더 추울 것이다. 창이 크고 햇빛이 닿을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이사 온 집은 신축빌라로 결로와 곰팡이 등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시공이 되어 있다. 구축 빌라나 주택의 경우 환기와 제습, 곰팡이, 단열, 결로 등의 문제가 없는지 잘 확인해야 한다. 또 북향집은 빨래가 잘 안 마른다고 하던데, 나는 그렇게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건조대에 빨래를 널고 작은 선풍기를 틀어놓으면 잘 마른다. 만약 건조기를 들일 수 있다면 빨래가 안 마를 걱정은 안 해도 될 듯하다.
아, 여하튼 이사오길 참 잘했다. 올 해는 시작이 좋다. 이것저것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힘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