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추운 겨울에 이사와 우풍이 느껴지는 벽에 멀리 떨어져 침대 가장자리에서 잠을 자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봄이다.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거실의 창을 열어젖히자 보이는 폐건물의 벽돌벽이 참 스산하고 으스스하게만 보였다. 칙칙한 흑갈색 벽돌 군데군데는 부서져있고 앙상한 덩굴줄기들이 벽을 칭칭 감고 있었다. 이렇게나 앙상하고 보잘것없는 거실뷰가 또 있을까 궁시렁대며 입주했고, 봄과 여름이 가까워지는 지금 초록 덩굴이 순식간에 우리집 창문을 가득 채웠다. 거실 소파에 앉아서 덩굴멍을 때리는 게 요즘 내 낙이다. 정북향인 우리집은 햇빛이 직접 들지 않지만 우리집에서 보이는 풍경에 햇빛이 조명을 켜준다. 초록 덩굴은 날이 갈수록 더 빽빽해지고 풍성해지고 있다. 창문 안에 공교롭게 딱 맞게 꽉 차는 샛초록색 덩굴은 가끔 액자 속 그림 같기도 하다. 바람이 불면 북향집에선 보이지 않는 태양이 옆에 숨어 덩굴을 열심히 비춰준 덕에 덩굴은 광을 내며 차르르 초록 물결을 일으킨다. 그 초록 물결을 보고 있자면 그 순간이 정말 특별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