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아무것도 없어도 모든 게 좋았던 시절

by 샤인오름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5월은 특별했습니다.


국민학교 시절 저희는 마당 깊은 집에 살았답니다. 내리막길 막다른 곳에 위치한 우리 집은 대문 열고 계단을 여러 개 내려가야 했지요. 계단을 내려가면 마당이 있고 맞은편으로 확 트인 풍경이 좋은 집이었습니다.

마당에 서서 보면 분명 환하고 좋은 집이었지만 대문 밖에서 보면 움펑 패어 있는 집 같다 하여 움펑집이라고도 했습니다. 넓은 마당 한쪽으로 널찍한 마루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두 개의 방이 있었지요.


어려운 시절이었기에 우리 가족은 일곱 식구임에도 방 하나와 마루를 사용하고 건너 작은방은 월세를 놓았답니다. 안방엔 비밀의 공간 같은 다락방이 있고 부엌이 연결되어 있었지요.


세를 둔 작은방을 문간방이라 했고 이사 들어오신 분들은 부모님과 비슷한 연배이셨는데 아이 없이 두 분만 사셨습니다.

아저씨는 글을 쓰시는 분이셨고 항상 책을 읽거나 마당 한 편에 우두커니 앉아서 명상하시거나 노래를 부르곤 하셨답니다. 아주머니는 한복 만드는 일을 하셨지요. 워낙 솜씨가 좋아 입소문이 퍼져 일감이 차고 넘쳤습니다. 움펑집의 낮과 밤은 한복을 짓느라 재봉틀 소리가 끊이지 않았지요. 드르륵드르륵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곤 했습니다.

두 분 모두 인품이 훌륭하시고 늘 따뜻한 언행으로 참으로 포근하게 느껴지곤 했었지요.

두 분은 오랜 세월 아이를 갖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이른 아침마다 마당 한편에 맑은 물을 떠 놓고 두 손 모아 부처님께 불공드린다며 기원을 하곤 하셨지요. 아이에 대한 간절함 때문인지 우리에게도 온 사랑을 다 주셨던 감사한 분들입니다.


해마다 5월 5일 어린이날이면 아저씨는 우리들을 마당에 불러 모아 함께 노래를 불렀지요. 어린이날 노래도 아저씨를 통해 처음 배웠습니다.

마당에 길게 4남매를 세워놓고선 "오늘은 너희들의 날이니까 너희들이 주인공이야!" 하며 어린이날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의미로 노래를 부르자 하셨지요.


"날아라 새들아~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푸른 들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부모님께서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기 때문에 어린이날이어도 우리는 집에만 있어야 했지요. 그날도 영락없이 아저씨는 우리를 마당으로 불러 세웁니다.

"오늘은 어린이날이니까 노래를 가장 씩씩하게 잘하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선물을 줄 거야!" 하시는 겁니다.


선물에 목이 말라 있던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줄을 서고 목을 가다듬습니다. 서로 내 목소리가 가장 크다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 목에 핏대가 서도록 열심히 노래를 불렀었지요.

아이들의 맑은 노랫소리가 담장을 넘기고 동네에 울려 퍼졌던 행복했던 추억들 우리들의 노랫소리에 흐뭇하신 아저씨는 미리 준비해 놓은 종합 과자 선물 세트를 주셨지요. 과자 한 봉지도 귀했던 시절 종합 과자 선물 세트를 받는다는 것은 크나큰 기쁨이었습니다.

과자 상자를 받아 들고 서로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던 풍경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모두 둘러앉아 과자 상자를 열어보고 서로 원하는 과자를 선택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장기 자랑을 해서 획득하기도 했었지요. 그 당시엔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없었답니다.


언제나 따뜻한 표정과 부드러운 음성으로 우리를 대해주셨던 참으로 좋은 분들이셨지요.

그렇게 국민학교 3학년을 지날 때까지 한 지붕 아래서 살다가 우리가 이사하게 되면서 헤어지게 되었답니다.

그 시절엔 전화도 없었고 딱히 그분들과의 인연을 이어갈 만한 수단이 별로 없었기에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소식이 끊겼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건너 건너 들려온 소식은 두 분께서 예쁜 딸아이를 입양하여 행복하게 사신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지요. 그 소식을 듣고 너무 좋아서 설레며 그 아기가 보고 싶었던 그 마음도 아련하게 남아있습니다. 너무 어린 시절의 이야기라 그분들의 성함도 모르고 그 당시의 얼굴만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슴속에 따뜻하게 남아있는 그리운 사람이 있으신가요?

좋은 추억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때때로 아주 이로운 자양분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살면서 힘든 일을 겪을 땐 어린 시절 그 마당 깊은 집에서 다 함께 노래하던 풍경과 서로를 따뜻하게 마주 보았던 그 눈빛을 떠올리며 이겨내기도 했답니다.

그분들도 어딘가에서 그 시절 우리를 기억하고 계실까요? 그 시절 우리에게 특별한 추억과 인생의 풍요로움을 선물해 주신 두 분은 가슴 깊은 곳에서 함께 살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