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작은 행복
"홍도야~ 울지 마라~ 오빠가 있다."
"아내의 나갈 길을 너는 지켜라"
친정아버지의 18번지 애창곡입니다.
1970~80년대 시절 아버지의 고단한 하루를 달래주곤 했던 동네 대폿집! 막걸리를 잔으로 판매를 하여 가볍게 딱 한잔만 할 수도 있으니 부담 없이 들리곤 했던 대폿집이었지요. 아버지의 퇴근길에는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아버지의 발길을 붙잡곤 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고생을 많이 하신 아버지는 몸이 쇠약했고 천식이 있어서 힘든 일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가장으로서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 책임감으로 참으로 부지런하게 살아오셨지요.
약한 몸에 술을 잘 마시지 못했던 아버지에게 곡주인 막걸리 한 잔은 삶의 애환을 달래주며 유일하게 즐길 수 있는 작은 행복이었습니다. 그 막걸리 한 잔에 아버지의 삶의 고단함, 슬픔, 애잔함이 담겼겠지요.
그 시절 아버지와 함께하는 막걸리 동지들도 있습니다. 때론 친구가 되고 때로는 둘도 없는 혈육 같은 막역한 사이이기도 했지요. 항상 아버지와 대폿집에서 막걸리 한 잔을 같이 하시며 인생을 논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노란색 예쁜 주전자를 들고 오십니다. 앞으로 막걸리는 여기에 담을 거라며 허허 웃으셨지요. 그 후론 왕 대폿집이 아닌 집에서 막걸리를 드셨고 매일 저녁 아버지가 퇴근하고 오시면 대폿집에 가서 한 주전자씩 사 와야 했습니다.
하루는 아버지 친구분들이 집으로 놀러 오셨고 어김없이 노란 주전자를 들고 막걸리 심부름을 다녀와야 했지요. 찰랑거리는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막걸리만 드시면 기분 좋아지시는 아버지를 떠올려 봅니다.
왜 막걸리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질까? 호기심에 한 모금 마셔보니 꽤나 달달합니다. 한 모금 더 마셔보니 자꾸만 입맛이 당깁니다. 집으로 오는 길목에 홀짝홀짝 마신 것이 갑자기 눈앞이 빙~~ 돌면서 어지럽습니다.
팔다리에 기운이 쫙 빠지는듯한 느낌도 드는 겁니다. 어~이상하다. 하며 붕붕 뜨는 발걸음을 옮기며 골목길을 꺾어 들어서다가 어어~하며 그만 휘청하며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바람에 주전자가 나동 그래지며 막걸리가 땅바닥에 다 쏟아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주섬주섬 빈 막걸리 주전자만 들고 어쩔 줄 모르며 집으로 왔지요.
휘정거리며 빈주전자 들고 들어오는 저를 보는 엄마는 기가 막히다는 듯 쏘아보며 등짝을 찰싹 때리며 야단을 치셨지요. 엄마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은 희미한 기억을 뒤로하고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화가 난 엄마는 다시는 막걸리 심부름 시키지 말라고 아버지에게 당부를 하셨지만 엄마 몰래 막걸리 심부름은 계속되었지요.
막걸리 한잔 걸치신 아버지는 늘 "홍도야 울지 마라"를 부르십니다. 홀어머니 밑에서 어린 두 동생을 건사해야 했던 아버지는 늘 어려운 가정 형편에 고생하는 동생들이 아픈 손가락이었지요. 우리에게도 늘 하시던 말씀은 “고모들한테 잘해라! 고모들 불쌍하다!” “너희들이 잘해야 한다.”라고 하셨지요.
늘 습관처럼 고모들을 챙기며 오빠로서 남다를 애정을 과시했습니다. 참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아버지였으며 고모들의 오빠였지요.
남편에 대한 원망이 컸던 할머니는 그 미움을 아들에게 쏟아내며 당신의 하나뿐인 아들이자 우리 아버지를 그리 미워하고 홀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안쓰러워하며 그 마음 헤아리는 둘도 없는 효자입니다.
어릴 적부터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 없이 그 냉혹한 현실에 부딪히며 힘겨운 삶을 살아오신 아버지는 그 달달한 막걸리 한 잔에도 취기가 올라 더 많이 마시지도 못했습니다.
우리에게 한없이 따뜻하고 자상한 아버지는 막걸리만큼이나 좋아하는 것이 또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책이었습니다. 고된 일을 하시며 힘든 날들 속에서도 아버지는 책 읽기를 즐기셨지요. 그렇게 아버지의 책 읽는 모습을 자주 보고 자랐습니다.
모든 게 좋았던 우리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앓아오신 기침 천식으로 평생을 고생하시며 노래 한 곡이라도 할라치면 숨이 차서 노래하시는 것을 매우 어려워하셨지요. 그런 아버지가 늘 안타까움이었습니다.
훗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고모들도 멀리 이사 가셔서 더 이상 찾아올 일가친척 하나 없고 찾아갈 친지 한 분도 안 계시는 우리는 오롯이 6 식구가 전부였지요.
그 후론 아버지의 애창곡은 어느새 “풀잎사랑”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대는 풀잎 풀잎 풀잎”
“나는 이슬 이슬 이슬”
“그대는 이슬 이슬 이슬”
“나는 햇살 햇살 햇살”
“사랑해 그대만을”
“우리는 풀잎사랑”
지금도 가끔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아버지를 그리워하게 되는 노래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