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갖게 된 보물단지
오늘도 전파사 쇼윈도 앞을 서성입니다.
보고 싶은 코미디 프로를 전파사 앞에서 기웃대며 킥킥 웃기도 하고 따라 해 보기도 합니다. 유리창 너머로 소리도 들리지 않는 영상만 보는 것임에도 뭐가 그리 재밌었는지 쉽게 그 자리를 떠나지를 못합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아버지를 전파사 앞에서 딱 만나기도 했지요.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전파사 앞에 있지 말라고 했는데 오늘도 또! 하시며 눈으로 무언의 엄포를 주시고는 손을 이끄셨지요.
집에 텔레비전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 집안에 가전을 갖춰두고 사는 집은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몇 안 되었지요. 당시엔 중동(사우디아라비아)으로 일하러 가신 아버지들이 몇 집 있었는데 그 집에는 보통의 집에는 없는 다양하고 좋은 물건들이 많았습니다.
텔레비전도 있고 전화기도 있고 아이들 학용품이나 장난감들도 우리는 꿈도 못 꿀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지요. 그중 여자아이들은 마론인형을 남자아이들은 로봇 태권브이 인형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날은 멋진 자동차 모양의 연필깎이도 자랑하는데 신문물에 마냥 신기하기만 합니다.
연필을 깎으려면 도루코 면도날로 아버지가 깎아주시곤 하셨습니다. 서투른 고사리 손으로 면도날 이용해서 연필을 깎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자칫 실수라도하면 손을 베이기 일쑤입니다.
친구집에 있는 연필깎이는 모양도 근사했지만 연필을 꽂고 손잡이를 두어 바퀴 돌리면 깔끔하게 깎여지는 연필을 보며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했지요.
마당 깊은 집 옆집엔 텔레비전이 있었습니다. 안방 한편에 마치 가구인 듯 자리를 차지하던 텔레비전은 다리도 달려있고 문도 달린 그야말로 위풍당당한 자태였답니다. 평소엔 문을 닫아두었다가 TV를 볼 때면 양옆으로 문을 밀면 브라운관이 딱 나왔지요.
그 집 역시도 아버지가 사우디아라비아에 나가서 일을 하셨었죠. 일 년에 한두 번만 집에 오시곤 하셨는데 얼굴이며 팔다리가 새카맣게 그을린 모습입니다. 그 집 할머니께선 오랜만에 보는 아들이 새카맣게 그 흘린 얼굴로 들어오면 눈물을 훔치기도 하셨지요.
그 친구가 기분 좋은 날엔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읍니다. 이유는 TV 자랑을 하고픈 마음이 컸었지요. 어린 마음에 유치함은 극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자리 배치까지 자기 마음대로 하기 일쑤였고, 그날 자신의 기분에 따라 마음에 드는 친구들은 잘 보이는 앞자리에 자기 비위 안 맞추는 친구들은 뒷자리로 앉으라고 정해주는 겁니다. 아니꼽고 빈 정이 상하면서도 싫으면 “넌 집에 가!”라고 할까 봐 군소리 없이 그 뜻에 따라야 했지요.
어느 날은 그날도 역시 자기 마음대로 친구들을 이래라저래라 지시하고 자기 말 듣지 않으면 텔레비전 끄겠다고 하고 짜증을 부리는 모습에 화가 나서 대판 싸우고 왔습니다.
너무 기분이 상하고 억울한 마음에 씩씩대며 “다시는 그 집에 안 가! 내가 이제 가나 봐라!” 했지만 또 며칠 지나면 은근슬쩍 친구들에 묻혀 또다시 가기를 반복했었더랬지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 도 텔레비전 때문에 친구와 말다툼을 하고 억울한 마음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집에 왔는데 놀라운 광경이 펼쳐집니다. 우리 집 안방에 작고 예쁜 텔레비전을 설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 놀라 동그래진 눈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말을 잇지 못하는 저를 보며 아버지가 얘기합니다.
"이젠 더 이상 전파사에 서 있지 않아도 되고 친구와 싸우지 않아도 돼!" 우리 집에도 이젠 텔레비전이 있다."
당시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고 할 만큼 힘들었던 시절 우리 집에 텔레비전을 들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텔레비전을 샀다고 하신 아버지의 말씀에 얼마나 뛸 듯이 기쁘고 행복했는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열 살 꼬맹이였습니다.
친구네 텔레비전에 비하면 작고 볼품없던 14인치 흑백텔레비전이었지만 그 어떤 텔레비전보다 특별하게 느껴졌고 더 부러울 것이 없을 만큼 좋았던 기억입니다.
꿈만 같은 현실에 매일 마지막 방송까지 다 보고서야 잠자리에 들었고 손자국이라도 났다 싶으면 입김불어 닦아가며 애지중지했던 유일한 우리 집 보물단지가 되었습니다.
그 시절엔 통행금지 시간도 정해져 있었습니다. 밤 9시만 되어도 동네가 조용해졌고 방송을 통해 "어린이 여러분 이제는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라는 안내방송도 나왔었지요.
그 멘트가 재미있어서 서로 돌아가며 따라 했던 모습도 아련하게 떠오르네요.
그 작은 흑백텔레비전 하나로 온 가족이 저녁 밥상머리에서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 와요"를 보며 행복한 웃음이 가득 넘쳐났던 따뜻한 시간이 되곤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