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사랑이 고픈 아이
어린 시절 부모님이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느라 4남매를 온전히 돌볼 상황이 안되었습니다. 자연스레 할머니의 보살핌이 필요했었지요. 할머니 밑에서 저는 매일 주눅이 들어있습니다. 할머니는 유난히 저를 미워하셨지요. 엄마를 닮았다는 이유입니다.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3남매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가 바람을 피워 야반도주했다고 합니다. 젊디 젊은 나이에 겪어야 할 시련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테지요. 남편에 대한 원망과 증오의 마음이 아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이어졌나 봅니다.
사진으로만 본 할아버지의 외모는 출중합니다. 할머니 또한 키도 크고 미인형이지요. 그 외모 유전자를 그대로 받은 아버지의 인물도 좋았습니다. 남편을 쏙 빼닮은 아들을 보는 것이 할머니는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자신과 아이들을 배신하고 떠난 남편에 대한 원망과 한이 깊어 그 남편을 쏙 빼닮은 아들은 미움이 대상이었고 평생 곁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가장의 부재로 인해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원망 섞인 한숨과 함께 생활을 책임져야만 하는 현실을 견뎌야만 했었지요.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에 낮엔 일하고 저녁이면 호롱불을 켜고 공부를 할라치면 할머니는 기름 아깝다며 호롱불조차 꺼버려서 공부를 할 수 없도록 방해를 하며 그리 미워하셨답니다.
그렇게 냉정하게 대하는 어머니였어도 그 어머니가 안타까워 말씀하나 거스르는 일 없이 따르고 인정해 주는 세상 착한 아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에게 자식은 오로지 두 딸 뿐인 듯하셨습니다.
언제나 어머니를 우선시했던 아들이 결혼해서 아내와 알콩달콩 사는 모습이 당신은 누려보지 못한 삶이었기에 아들 내외가 탐탁지 않았나 봅니다.
살림하나 온전치 않았지만 따뜻했던 남자 하나 보고 결혼한 엄마는 할머니의 온갖 말도 안 되는 시집살이를 겪어야만 했지요. 온갖 구박에도 꿋꿋이 살아가는 며느리가 눈엣가시 같았고 그 며느리를 꼭 닮은 제가 할머니는 또 그리 미웠던 모양입니다.
아들 내외가 밤늦게까지 장사를 하니 어린아이들을 돌봐줘야 하는 할머니도 힘들기는 했겠지요. 여느 때처럼 저녁상을 차려주신 할머니의 밥상에 그날따라 귀하디 귀했던 계란 프라이가 있었습니다. 늘 김치에 무말랭이 나물들만 먹다가 계란프라이를 보니 저도 모르게 제일 먼저 계란프라이 한 점을 잡았지요.
그 순간 딱! 소리와 함께 번쩍! 하며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은색 빛이 사르르 펼쳐집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하기만 했지요.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머리에서 뭔가가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머리가 따뜻해지며 축축한 빨간색 액체... 그건 바로 피였습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도 못 내고 눈물만 뚝뚝 떨구며 울고 있는 저를 본 여동생은 놀라서 수건으로 닦아주며 “할머니! 언니 머리에서 피 나!” 다급하게 외쳤으나 돌아오는 것은 할머니의 싸늘한 시선과 거친 욕설이 전부였습니다.
“이놈의 가시네가 그게 뭐라고 피까지 흘리고 지랄이여” 하면서 오빠와 동생들을 향해 “느그들은 어여어여 먹어” 하며 저를 향해 눈을 흘기는 것입니다. 계란프라이 한 점 먹어보려는 손녀딸이 미워 다급한 마음에 들고 있던 숟가락으로 정수리를 내리친 것입니다. 피가 흐르는 어린 손녀를 향해 할머니는 젓가락으로 계란 프라이를 덥석 집어 제 눈앞에 갖다 대며 소리칩니다.
"아나 먹어라!" "아나 먹어! 이년아"
날이 선 목소리에 서러움이 북받쳐 소리 없는 굵은 눈물방울만 하염없이 흘러내립니다.
그렇게 저녁도 먹지 못하고 피가 멈추어 말라비틀어진 머리카락을 씻지도 못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등교를 위해 엄마가 머리를 빗겨주다가 깜짝 놀랐고 어디서 그랬냐 묻는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동생이 대신 어제저녁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분노한 엄마가 할머니에게 엄청 대들었지요. 며느리인 엄마와 갈등이 빚어진 그날은 더욱 싸늘하고 무서운 눈으로 저를 쏘아보시던 할머니의 표정이 마음을 후비고 들어옵니다. 그렇게 할머니와 함께하게 된 어린 시절은 암흑기였습니다.
그 어린 시절 할머니가 부르는 저의 이름은 항상 "이년" "저년"이었습니다, 단 한 번도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준 적이 없는 할머니였지요.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저에게 말랑복숭아 하나를 통째로 주시는 것입니다. 싱싱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과일 하나를 온전히 주신 적이 없기에 어리둥절하며 받아 들었지요.
어쩐 일로 얼른 먹으라고 재촉하시는 할머니 말씀에 감동해서 한입 베어 물었지요. 달아야 할 복숭아가 쓴맛이 입안에 퍼집니다. 지켜보던 할머니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보입니다. 다시 한번 한입 더 베어 문 순간 과즙이 쭉 흐르며 베어 문 위치에 벌레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입니다.
“으악~~! 버... 벌레” 하면서 복숭아를 내던지고 소름 돋은 팔다리를 비벼대며 놀란 마음 추스르는데 할머니의 매서운 손이 찰싹 소리와 함께 등짝을 사정없이 내리칩니다.
“이년이 그 아까운 복숭아를 바닥에 내 팽개쳐”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야” 하며 야단을 치는 것이지요. 눈물이 주르륵 흐릅니다. 그렇게 할머니와 함께 하는 그 시절이 참으로 억울할 법도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할머니가 밉거나 원망스러워 본 적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손주들에겐 세상 다정한 할머니였기에 할머니의 성품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특히 할머니의 외손주들은 이뻐서 물고 빨고 하시는 걸 여러 번 보았기 때문에 할머니가 사랑이 많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항상 저를 “이년, 저년,” “이놈의 가시네, 저놈의 가시네”라고 불렀던 할머니였지만 저는 그런 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싶었던 거였지요. 그래서 언제나 할머니 마음에 들기 위해 눈치껏 움직이며 부지런해야 했고 그 덕분에 야무진 아이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시절 저에게도 아버지의 유전자가 강했나 봅니다.
겉으론 매서웠지만 할머니의 눈빛은 언제나 촉촉이 젖어 있으며 착해 보였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저에겐 쪽 찐 머리에 한복을 입고 슬픈 표정으로 앉아있던 할머니를 가끔 만나곤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