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다라이 풀장

우당당탕 물놀이

by 샤인오름

움펑집 이 좋았던 것은 커다란 마당이 있어서였지요. 마당 한가운데는 큼직한 수돗가가 있습니다. 수돗가 주변으로 단차를 두어 수돗물을 흘려보내도 마당으로 차오르지 않도록 만들어 놓은 곳입니다.


그곳에서 세수하고 빨래도 하고 겨울에 김장할 때도 꼭 있어야만 했던 만능 공간이었지요.


여름이면 아버지는 수돗가에서 등목 을 하시곤 했지요. 무더운 여름 등목은 아버지의 꿀 같은 행복이 되곤 했답니다. 일 마치고 땀에 젖어 오신 아버지는 웃옷을 벗어던지며 외칩니다.


“등목 해 줄 사람!” 우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저요~! 저요~~! 하며 서로 해주겠다고 아우성칩니다. 아버지는 허허 웃으시면서 한 명씩 한 바가지씩만 하는 거야! 하시며 수돗가에 엎드립니다.


수돗가에 엎드린 아버지의 등에 수돗물을 받아 끼얹어 주면 "아흐흐흐~~ 시원하다!" 하시는 아버지의 외침에 깔깔 거리며 연신 물을 끼얹어 주곤 했었지요. 등목을 하시고 일어서시는 아버지의 표정은 정말 행복해 보이곤 했습니다.


더위가 시작되던 어느 여름날 저녁 그날도 영락없이 등목을 마치신 아버지가 갑자기 창고 깊숙이 넣어 두었던 커다란 고무다라이 통을 마당으로 옮겨주시는 겁니다.


큰 마당을 차지하게 된 커다란 고무다라이 통은 우리에겐 여름을 보내기엔 안성맞춤이었지요. 수돗가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물을 가득 받아 주십니다. 그때의 수돗물은 얼음물처럼 차고 온몸에 물을 끼얹으면 소름이 쫙 돋을 만큼 정신이 번쩍 나곤 했지요.


여름동안 아무 곳도 가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아버지가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여기에 물 받아놓고 맘 편히 실컷 놀아봐! 하시는 아버지입니다.


그 대형 고무다라이 통에 올망졸망 꼬맹이들이 들어앉으면 비좁아 돌아앉기도 불편했지만 물을 튕기는 자체만으로도 뭐가 그리 좋은지 세상 다 가진 듯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비좁아서 놀기조차 힘들면 오빠와 남동생이 힘으로 여동생과 저를 밀어냈고 물 밖으로 밀려난 우리들은 약이 바짝바짝 올랐지요. 혼내줄 방법을 찾다가 수도꼭지에 호수를 연결해 호수 끝을 눌러 잡고 수도를 틀면 세게 뿜어져 나오는 물살을 오빠와 동생의 얼굴을 향해 발사합니다.


어푸어푸 거리며 소리소리 질러대고 난리도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순서를 뒤바꿔 놀기도 하고 최고의 물놀이를 즐기며 여름을 보냈답니다.


아버지는 하얀 러닝셔츠에 파자마를 입으시고 마루에 걸터앉아, 엄마는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다 말고 우리들 노는 모습을 보시며 흐뭇하게 웃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여름 내내 고무대야 통에서 놀면서 놀이가 갈수록 난이도 가 높아지곤 합니다. 개구쟁이 오빠는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놀까를 궁리하곤 했지요. 어느 날엔 대문으로 향하는 계단에 올라서서 고무대야 통으로 다이빙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거리도 살짝 애매했고 고무대야 통이 깊지는 않았기에 다이빙은 너무 위험해 보입니다. 그래도 호기심 많은 오빠는 거침이 없지요. 계단에서 살짝 뛰어올라 고무대야 통으로 앉은 자세로 쏙 다이빙을 합니다.


신기하게도 정확하게 통속으로 풍덩 빠지는 것입니다. 고난도였기에 겁이 많은 저와 동생들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나 오빠에게는 최고의 물놀이가 되었지요.


마당 가득 물이 튀고 심지어는 문간방 창호지를 적시기도 했지만 문간방 사시는 아저씨 아줌마도 흐뭇하게 웃으시며 함께 물놀이를 즐기기도 하셨답니다. 모든 게 부족하고 어려웠던 생활이었지만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즐길 줄 아는 지혜가 있었지요.


담장을 타고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웃음소리에 동네 아이들도 기웃거리고 어느새 한 명 두 명 동참하게 됩니다. 어느 날은 동네 아이들이 우리 집을 "고무다라이 풀장"이라고 이름 지어 불렀고 한낮 태양 빛이 너무 강렬한 날이면 우리 집으로 찾아들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이 낮에는 일하러 가시고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동네 아이들을 우리 집으로 불러 모아 고무다라이 통에 물을 가득 받아 놓고 넘쳐흐르면 또 가득 받고 마당을 아수라장으로 만들며 우리에겐 최고의 여름날들이 되었답니다.


여름내 동네 아이들에게 풀가동한 고무다라이 풀장으로 과하게 사용된 수돗물로 인해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하기도 했었던 시절입니다. 심지어는 고무다라이 통을 없애버리겠다는 엄포를 듣고 4남매가 한 목소리로 그건 안 된다고 고무다라이 통에 들어가 버티며 고집을 피우기도 했었지요.


여름이면 그 첨벙거리던 맑은 물소리와 까르르 웃던 우리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가끔 귓가에 맴돌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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