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여름 풍경

계곡 물놀이

by 샤인오름

국민학교 3학년이 되는 해에 부모님이 하시던 장사가 힘들어져 집을 줄여 이사를 하게 됩니다. 아랫동네에서 산 밑에 있는 달동네로 가게 되었지요.


경사로가 심한 오르막길을 오르고 올라 고개 하나 넘어서면 다닥다닥 붙은 허름한 집들이 있고 골목골목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는 동네였습니다. 우리가 이사 간 집은 넓은 이면도로 한쪽으로 대문은 물론 마당자체가 없는 알루미늄 샷시가 대문을 대신하는 집입니다.


움펑집 에서는 그럴듯한 대문도 있고 큰 마당과 커다란 마루도 있었기에 온 가족이 함께 했던 많은 추억들이 공존합니다.


비 오는 날엔 엄마가 마루에 걸터앉아 부침개를 부치곤 했지요. 모두가 옹기종기 둘러앉아 고소한 기름 냄새 가득한 부침개를 나눠먹으며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봤던 장면들, 마루에 책으로 울타리를 만들고 소꿉놀이 하던 추억들, 일요일 한낮엔 아무 할 일 없이 뒹굴거리며 놀다 단잠에 빠지기도 했었지요.


살랑살랑 싱그러운 바람이 빰을 스치고 머리카락을 살살 흔들어댔던 기분 좋은 느낌, 하늘 맑은 날엔 마당에 돗자리 깔로 누워 밤하늘의 별들을 세던 일, 그날의 싱그러운 바람의 냄새는 살다가 어느 날 문득 같은 느낌의 바람이 느꼈질 때면 마치 그 시절 그때의 움펑집에 누워있던 10살 꼬마로 돌아가 있는 느낌에 빠지곤 합니다.


뒷집 마당에 심어진 감나무엔 탐스러운 주황색 감이 주렁주렁 풍성하게 나무를 한가득 채우곤 했지요. 겨울이면 장독대에 수북이 쌓인 눈을 모아 눈사람을 만들어 올려놓았던 기억들, 마당에서 온갖 자연을 느끼고 많은 추억을 담은 우리들의 움펑집을 떠난다는 것이 어린 마음에 못내 아쉬웠습니다.


무엇보다 함께 살던 문간방 아저씨 아줌마와 헤어져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부모님이 매일 일을 하러 나가시면 두 분은 우리에게 부모가 되고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지요.


진심을 다한 사랑으로 우리를 보살펴주시고 함께해 주시던 정든 아저씨 아줌마와 많은 추억이 담겨 있는 집을 떠난다는 것이 매우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에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새로 이사한 집은 길가에서 샷시문을 열면 바로 부엌이어서 사생활 보호도 안되고 모든 것이 불편합니다. 부엌과 함께 조그만 툇마루를 끼고 방 2개인 구조였지요. 그마저도 방 1개를 칸막이로 막아 분리하고 출입문을 따로 만들어서 월세를 놓았습니다.


새로 이사 온 이곳도 여전히 방 1개에서 7 식구가 살아야만 했지요. 집이 좁아진 관계로 할머니께서는 고모들 집에서 생활하는 일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작아진 집에서 뭐 하나 자유롭게 할 수 없는 환경이 되니 움펑집이 더욱 그리워지곤 합니다.


이곳은 그냥 딱 방 1개였지요. 물론 다락방이 있긴 했지만 물탱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관리가 안 되어 있는 상태라 무섭기도 했습니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라고 했던가요? 처음엔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막막한 환경이었지만 또 우리 집이라고 생각하고 생활을 하다 보니 적응해서 살게 됩니다. 이사 가고 처음 여름을 맞았지요. 이곳엔 마당이 없으니 고무 다라이 통을 이용한 물놀이는 더 이상 할 수가 없는 것 또한 매우 큰 아쉬움이었습니다.


이곳 달동네에는 아랫동네에 비해 아이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집은 좁고 아이들은 많으니 동네에 모여 노는 일들이 자연스레 많아졌지요. 동네에 어딜 가든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해 여름! 한 친구가 계곡에 갈래? 합니다. 하나 둘 호기심을 보이며 의기투합해서 계곡을 향합니다. 그렇게 달라진 환경에서 더 이상 누릴 수 없었던 고무다라이 풀장을 대신해 계곡으로 옮겨가며 우리들만의 새로운 여름 놀이가 시작되었던 것이지요.


그날이 시작점이 되어 해마다 여름만 되면 약속이나 한 듯이 계곡에서 살다시피 합니다. 제가 자란 곳은 서울 강북 쪽이라서 도봉산, 북한산 계곡을 내 집처럼 드나들게 되었답니다. 한여름 뙤약볕을 이기기 위한 곳은 계곡만 한 곳이 없었지요.


그때는 수영복도 귀했던 시절이었기에 수영복을 갖고 있는 아이도 거의 없었답니다. 마침 유일하게 수영복이 있던 친구는 계곡 가는 길은 무조건 앞세우고 갔지요. 수영복 그게 뭐라고 수영복 챙겼는지 몇 번을 확인을 합니다. 계곡을 가면 누가 먼저 수영복을 입을지도 중요해집니다.


체형이 다 다르다 보니 헐렁거리는 아이도 있고 꽉 쪼이는 아이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서로 입으려 합니다. 순서를 정해 수영복을 입고 다이빙을 즐기며 놉니다. 누가 가장 멋진 자세로 다이빙을 했는지 점수를 매기기도 하고 수영복을 입지 않은 아이는 다이빙 기회를 주지 않았지요.


계곡물놀이에 빠져 고무다라이 풀장은 그렇게 잊혀 갑니다.


여름 한나절을 물속에서 첨벙거리며 노니 얼굴이고 등짝이고 피부가 드러난 곳은 새빨갛게 익어서 화끈거리는 고통도 감수해야 했지요.


그때 당시에는 계곡에서 취사가 가능했기에 온통 고기 굽는 냄새와 연기로 가득합니다. 아이들만 와서 간식거리 하나 없이 노는 걸 보고서는 어른들이 시원한 계곡물에 담가놓은 수박과 참외 등 과일들을 주시기도 했지요.


해 저물어 내려올 때쯤이면 계곡 한쪽으로 음료수 병과 소주병들이 즐비합니다.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가 양손 가득 공병들을 수거해서 산 밑에 작은 구멍가게에 갖다주고 병당 얼마씩 돈을 받거나 과자와 하드 등으로 바꿔 먹기도 했답니다.


여름내 산으로 계곡으로 놀러 다닌 아이들의 피부는 가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고 새까매지요. 항상 우리들의 여름 풍경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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