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화채로 동네잔치를 열다

여름날의 이벤트

by 샤인오름

새로 이사 온 달동네는 서로 가족같이 지내는 사이좋은 이웃들이 되어갑니다. 허름한 동네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옆집에서 말하는 소리마저도 다 들렸으며 담장 너머로 집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집들도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집에 숟가락 숫자마저도 꿰뚫고 있을 정도로 한 식구처럼 지내게 되었지요. 우리가 살던 집은 넓은 도로를 끼고 양옆에 집들이 나란히 쭉 이어져 있습니다.


중간중간에 골목들이 있고 그 골목으로 들어가면 마치 미로 찾기처럼 길들이 이어지고 집들도 얼키설키 이어져 있었지요. 그곳에서 우리는 꿈을 키워가고 사람 사는 정을 느끼고 살게 됩니다.


특히나 여름철이면 도로를 마당 삼아 집 앞에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답니다. 그 당시에는 자동차 있는 집도 없었고 산꼭대기 달동네인지라 아주 가끔 늦은 밤 귀가하는 사람들이 이용한 택시가 간간이 다닐 뿐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특히나 우리 집은 중간쯤 자리하고 있어 집 앞 도로변에 돗자리 깔기엔 적당했고 돗자리에 누워 하늘을 보면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을 보며 꿈을 키워갔던 시간 들입니다.




앞집 명희네, 뒷집 지인이네, 옆집 수연이네, 장갑 집. 꽃집 아저씨, 총각 무당집등 집마다 대문을 열어두었고 모두가 한 가족이 되어갑니다. 이 동네에도 사우디아라비아에 돈 벌러 나가신 아버지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명희네 아버지도 사우디에 가셨고 해마다 한두 번 만 집에 오시곤 했었지요. 아마도 동네에서 가장 부유한 집이 명희네 집이었던 듯합니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전화기가 있었던 집이기도 했거든요.


동네 반장님 이기도 했던 명희엄마는 전화번호도 공유하여 비상연락망이 되어주었고 크고 작은 일들을 발 벗고 나서서 해결해 주곤 했습니다.


어느 날은 여동생이 또래 친구들 4~5명과 함께 명동 백화점 놀러 나갔다가 길을 잃었는데 명희네 집 전화기가 있었기에 극적으로 찾아올 수도 있었답니다.


남동생이 엉덩이 화상을 입게 되었을 때도 명희 엄마가 큰 역할을 해주셨지요. 그렇게 동네 사람들은 한 가족처럼 지내며 계절은 여름을 맞이하게 됩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뜨거운 여름날 엄마들이 동네 수박 잔치를 열었지요. 평상 있는 집에서는 제각각인 크고 작은 평상을 동네의 큰 도로까지 끌고 와서 대형 평상을 만들어냅니다. 뭐든 동네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공유하며 함께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한집에 수박 한 통씩 준비하여 동네 자체 수박 축제가 열립니다. 그 당시엔 냉장고 있는 집도 귀했기에 여름철이면 커다란 벽돌 같은 얼음을 파는 얼음가게가 있었습니다. 그 얼음가게엔 꼭 석유도 함께 팔았지요. 어린 나이에 왜 얼음가게에서 석유를 파는지 이해하기 힘들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여름철이면 얼음가게는 불티나게 얼음이 팔립니다. 조금만 늦어도 얼음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미리 계획하에 사 오신 커다란 정사각형 얼음덩어리를 커다란 스텐다라이에 넣고 얼음 중간에 큰 바늘을 꽂은 채 망치로 살살 바늘을 치면 그 꽝꽝 얼었던 얼음이 쫘쫘작 갈라지면서 조각을 내어줍니다.


동네 아이들은 무슨 마술을 보는 듯 신기하게 숨죽이며 지켜봤고 얼음이 조각날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지요. 한쪽에선 수박을 반으로 쪼개고 숟가락으로 한 숟가락씩 먹기 좋은 모양으로 양동이 가득 수박을 떠 넣습니다.


수박의 흰 부분이 보일 때까지 박박 긁어 넣은 다음 사이다를 붓고 설탕도 적당량 넣어주고 제멋대로 조각난 얼음까지 넣어 휘휘 저으면 금상첨화 여름의 최고 간식이 되었지요.


개구쟁이 아이들은 긁어놓은 수박 통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개인기를 보여주는가 하면 수박씨를 뿜어 제얼굴에 몇 개가 붙는지 게임도 했지요. 그렇게 모두가 배꼽 빠지게 웃게 되는 상황을 연출합니다. 여름날 밤은 수박화채 하나로 온 동네가 행복한 웃음으로 물들어갑니다.


그 수박화채 한 숟가락 떠서 입안에 가득 넣으면 온몸에 찬기가 퍼지며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짜릿함이 좋았지요. 조각난 얼음 하나 입안에 물면 머릿속까지 쩌릿쩌릿 해지기도 했습니다.


신이 난 아이들은 춤을 추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여름밤을 달구어 주기도 했던 달동네의 그 밤은 아름다운 그림으로 가슴속에 피어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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