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야외극장
어느 날 아버지는 나무판을 사 오셔서 직접 재단을 하고 망치질을 시작합니다. 부엌으로 사용하던 공간을 재정비하여 한쪽 벽면에 페인트를 칠하고 선반을 짜기 시작하셨지요.
어떤 공간이 될지 무엇을 하시려고 하는지 아무런 말씀 없이 묵묵히 공간을 꾸밀 뿐입니다. 그럴싸한 공간이 되었지만 도무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는 알 수 가없었지요. 며칠을 손수 작업하시더니 어느 날 외출하신 아버지는 큰 짐 자전거를 끌고 오십니다.
“아버지 이렇게 큰 자전거는 뭐예요?” 하며 자전거 여기저기를 살펴보며 궁금한 눈망울을 반짝거립니다. 그제야 아버지는 "앞으로 우리 집은 구멍가게가 될 거야!"라고 하셨지요.
다음날 그 커다란 짐자전거를 끌고 나가신 아버지는 한나절이 지나서 자전거 가득 다양한 물건들을 싣고 오셨지요. 눈이 휘둥그레진 우리는 아버지를 도와 선반에 품목별로 이름작업을 함께 했고 엄마와 아버지는 물건을 보기 좋게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작게만 보였던 우리 집이 아버지의 아이디어와 솜씨로 그럴듯한 동네 작은 구멍가게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달동네로 이사하고 2년쯤 후 있었던 일이었지요. 우리 집이 달동네에서는 유의미한 가게입니다.
과자, 음료수, 치약, 비누, 주류, 국수, 라면 등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과 식료품을 팔기 시작했지요. 비록 작은 구멍가게였지만 부모님의 꼼꼼함과 섬세함으로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골고루 갖추고 장사를 시작합니다.
동네 사람들은 가게를 열어줘서 고맙다고 했지요. 달동네이다 보니 필요한 것이 있어도 저 아랫동네까지 갔다 오기엔 너무 힘이 들었는데 그 번거로움을 줄이게 되었으니 우리 가게를 좋아하고 고마워할 만했습니다.
그렇게 작은 구멍가게 수준이었지만 부지런하신 부모님은 가게에 온갖 정성을 들였습니다. 늘 쓸고 닦고 물건들을 정리하시며 새벽 일찍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가게 문을 열어놓았습니다. 그러나 고생하는 것에 비해 가게는 늘 힘겹게 이어갑니다.
대부분이 일용직 노동자였고 그마저도 일이 없어 놀고 있던 분들이 많았던 달동네라 현금거래보다는 외상거래가 쌓여갑니다. 부모님은 있는 돈 없는 돈 힘겹게 긁어모아 물건을 떼어오고는 판매는 외상으로 거래하다 보니 매달 적자를 면하기가 힘든 것이었죠.
어렸던 저희는 그 속을 알 리가 없었고 그저 우리 집이 동네에 이로움을 주는 가게라는 것이 자랑스러웠고 마냥 행복하기만 합니다. 동네 분들이 가족처럼 정을 나누고 살다 보니 외상을 거절할 수도 없었지요. 그래도 말일 되면 외상값을 갚는 분들이 많아지니 꾸역꾸역 유지는 해갈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가게를 차리고 첫여름날의 이야기입니다. 그 시절 여름이면 납량특집으로 TV에서 공포물을 방송했던 시기입니다. 그중에서 그 시절 공포물이라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전설의 고향"이었지요.
더위에 잠을 이루기 힘들어 도로에 돗자리 깔고 하늘을 이불 삼아 잠을 청하기도 했던 그 무더운 여름날 밤을 보내다가 아버지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동네사람들 모두가 좋아했던 전설의 고향을 우리 가게 앞에서 함께 보는 이벤트를 열어보자 하셨지요.
며칠에 걸쳐 큼직한 평상을 하나 짜셨고 그곳에 방 안에 있던 TV를 옮겨놓으시고 전선을 연결해 누구라도 TV를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등골을 오싹하게 했던 “전설의 고향” 하는 날엔 동네 분들은 물론 지나가던 사람들도 어느새 함께 앉아 잔뜩 긴장하며 몰입해서 전설의 고향을 보았지요. 어느새 그날 그 시간만 되면 옆 동네에서도 일부러 놀러 오시기도 했고 매주 갈수록 인기가 극에 달했습니다.
그중 가장 손꼽히는 공포물은 단연 “구미호”하고 “내 다리 내놔"입니다. 하얀 소복에 피눈물 흘리는 장면이 어쩜 그렇게 무섭고 공포스러웠는지…그 시절 공포물로는 최고였습니다.
동네 어른들마저도 바짝 긴장하며 보다가 누군가 장난기가 발동되어 잔뜩 긴장한 클라이맥스 장면에 순간적으로"와" 하며 툭 치기라도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악! 소리를 지르곤 했었지요.
그날은 집에 있는 불도 모두 소등하고 가로등 불빛만이 희미하게 비치고 있어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구미호” 하루만 더 참았으면 사람이 될 수 있었는데 그 하루를 남겨두고 사람이 될 수 없었던 사연으로 지금 생각하면 매우 슬픈 일인데 그 당시엔 왜 그리 끔찍하게 무서웠을까요?
“내 다리 내놔” 내용은 가물가물 하지만 병든 남편을 살리기 위해 무덤을 파해치고 다리를 잘라온 아낙네가 펄펄 끓는 가마솥에 다리를 넣어 푹 고아 그물을 남편에게 먹이면 살릴 수 있었던 내용으로 기억됩니다.
무덤 속에서 다리를 잃은 시체가 "내다리 내놓으라고 절규하며 따라오던 장면"으로 며칠을 두고도 그 장면이 떠올라 잠도 잘 못 자고 화장실도 혼자 못 갈 정도로 힘들어했었지요.
그러나 일주일 후면 또다시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콩닥거리는 심장소리를 느끼며 손가락 사이로 TV를 보곤 했던 그 시절의 “납량특집”입니다.
아버지의 아이디어로 여름날 밤이면 달동네 구멍가게 앞에 펼쳐진 야외극장이 되었던 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