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김치찌개

애달픈 아버지의 인생

by 샤인오름

동네 구멍가게는 앞집 영수네 가게가 생기면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고 힘겹게 버텨오셨으나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음을 판단하신 아버지는 가게를 그만두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가게를 정리하겠다는 문구를 가게 유리문에 써 붙였지요.


속상함을 어디 표현할 곳도 없고 속으로만 애태우고 술로 달래셨던 아버지의 건강은 날로 악화되어 갔습니다. 엄마 또한 무리한 공장일로 인해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만 갔지요.


이대로라면 모두 무너질 것 같은 위기감을 느낀 아버지가 다시 힘을 내고 일어서셨습니다.


아버지가 술을 끊고 새로운 일을 하시기로 마음을 정하시면서 우리의 일상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외상값을 기록해 둔 꽤나 두꺼운 장부책은 여러 권 쌓여있습니다. 가게를 정리하겠다고 써 붙여 놓으니 몇몇 양심 있는 분들은 외상값을 갚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가게에 있는 물건들이 점점 빠지면서 비로소 가게를 정리하는 실감이 납니다.




공장일로 매일 밤 10시가 넘어야 집에 오는 엄마를 위해 아버지가 밥을 하기 시작합니다. 연탄불 앞에서 쌀을 씻어 안치고 감자를 볶고 김치찌개를 끓이시는 아버지를 보게 되었지요. 늘 술에 취해 몸도 잘 못 가누던 아버지가 맑은 얼굴로 기분 좋은 미소로 손수 밥을 하셨지요.


처음으로 아버지가 끓여준 김치찌개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당시 우리에게 고기는 명절에나 먹어볼 수 있는 음식이었습니다. 그 귀해서 먹기도 힘들었던 고기를 듬뿍 넣은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끓여주신 것이지요.


얼마나 맛있었는지 4남매가 모두 정신없이 먹느라 냄비 바닥까지 싹싹 깨끗이 비웁니다. 흐뭇했던 아버지는 종종 밥을 하고 찌개를 끓이셨지요.


며칠이 지난 저녁 밥상에 또 기름기 좌르르 맛깔나 보이는 김치찌개가 놓여있는 겁니다. 잔뜩 기대하며 한 숟가락 떠먹었지요. 그러나 순간 입안에서 뭔가 미끄덩하며 씹을수록 물컹물컹합니다. 비위가 확 상해서 삼키지를 못하고 뱉어냈지요.


아버지는 당황하시며 왜 그러냐 하셨고 저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이게 뭐예요?” 했지요. 돼지고기 넣은 김치찌개를 너무 맛있게 먹는 아이들을 보니 흐뭇한 마음에 더해주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고기를 살 돈은 없고 저렴한 가격에 돼지고기 비계만 따로 판매하길래 그걸 사 왔다고 하는 겁니다.

고기 맛이라도 느끼라고 비계를 넣었는데 왜 먹기 힘들어? 하시네요.


국물 맛은 좋았습니다. 고기 맛도 제법 났지요. 그럼에도 그 물컹거리는 비계는 도저히 씹을 수도 삼킬 수도 없었습니다. 그 느낌은 아직도 몸서리쳐지곤 합니다. 아버지는 비계는 골라내고 국물만 먹으라고 하셨지요.


그러나 그조차 먹지를 못하겠습니다. 비위가 상하니 국물도 먹기 힘들어지더군요. 난처해하시는 아버지에게는 죄송했지만 더 이상 찌개에는 손이 안 갑니다.


오빠나 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우웩 우웩 하며 밥 먹기를 힘들어했습니다. 결국은, 아버지 혼자서 그다음 날까지 다 드셨지요. 아버지 역시 곤욕스러워하시는 듯합니다.


아무도 먹지 않는 김치찌개를 꾸역꾸역 드셨던 모습이 가슴에 도장처럼 새겨졌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러도 아버지의 김치 비계 찌개의 그 물컹거리며 비위 상했던 느낌과 함께 그 찌개를 아까워하시며 묵묵히 몇 끼를 나누어 드셨던 모습이 떠오르면 마음이 아립니다.




아버지의 가난한 어린 시절에도 고기는커녕 쌀밥 하나 맘껏 드신 기억이 없다고 하셨지요. 왜소한 모습으로 우리를 향해 미안한 웃음을 지어 보이시던 아버지. 잘생기신 외모도 똑똑하셨던 두뇌도 손재주 많았던 기술도 쇠약한 몸으로 빛을 내지 못하셨던 아버지의 설움이 가슴에 깊이 박힙니다.


시대를 잘 타고나셨더라면 명석한 두뇌와 잘생긴 모습으로 공부도 마음껏 하시고 그 좋아하시던 책도 마음껏 읽는 인생을 사셨겠지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사랑 없이 온갖 고생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묵묵히 감내하셨던 아버지의 인생이 애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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