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숨통
호기롭게 시작되었던 아버지의 구멍가게는 외상으로 판매한 물건에 대한 수금이 들어오지 않아 갈수록 힘겨워졌습니다. 목돈 들여 구매해 온 물건들이 외상거래로 인해 원활한 현금흐름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다음 물건을 채워 넣기엔 항상 버거웠던 것이었죠.
부모님은 항상 부지런하시고 열심히 살았오셨지만 노력에 반해 가정경제는 무너져만 갑니다.
심지어는 쌀독에 쌀도 다 떨어져 봉지 쌀을 사다 먹거나 국수로 때워야 했고 그마저도 여의찮으면 죽을 끓여 먹는 날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김치죽 미역 죽 심지어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흰 죽을 먹어야만 했지요.
도시락도 못 싸 가는 날이 늘어만 갑니다. 육성회비도 제때 못 내서 매일 교실 칠판에 이름 지워질 날이 없던 날들입니다. 점심시간이면 조용히 운동장에 나가 하염없이 모래놀이만 했던 나날 들이었습니다.
배고픔을 참고 참다 집에 오면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과자와 빵들의 유혹을 떨칠 수가 없었지요. 팔 것도 없다고 가게 물건에 손도 못 대게 하는 엄마를 피해 몰래몰래 하나씩 갖다 먹는 스릴도 즐기고는 했답니다.
그러다 들키는 날엔 영락없이 엄마의 한숨 섞인 푸념을 들어야만 했지요.
그러면 아버지는 먹는 게 남는 거라며 괜찮다고 맘껏 먹으라고 말은 하셨지만 그 눈빛은 참으로 슬프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그런 부모님도 불쌍하게 느껴졌고 언제나 외상을 하는 손님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가게 대각선 위치에 있는 영수네집에 슈퍼간판이 내걸립니다.
한동네에 살면서 우리 가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바로 눈앞에서 가게간판을 내건 것입니다.
더 큰 충격은 우리 아버지와 형제처럼 지내던 영수아버지였지요.
가게 열기 며칠 전 영수 아버지가 술에 취해 우리 집에 찾아왔습니다. 형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그러면 안 되는데 저도 처자식 먹여 살려야 하니 어쩔 수가 없네요. 이해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알 수 없는 뜬금없는 소리들을 하며 꺼이꺼이 울기까지 했지요. 영문도 모르고 울며 넋두리하는 영수 아버지를 위로해 주고 함께 술도 마셔준 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떡 하니 가게를 개점한 것입니다. "외상 사절"이라는 문구를 커다랗게 써 붙여놓고서요.
영수네는 우리 집의 두 배쯤 넓은 공간으로 가게 역시도 두 배로 넓습니다. 가게가 넓으니 진열해 놓은 상품도 다양하고 풍성합니다. 처음엔 미안했는지 눈도 잘 못 마주치고 피해 다녔지요.
한 달, 두 달, 반년이 지나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고 오히려 우리 단골손님들에게 호객행위까지 합니다.
어린아이 시선에도 너무 뻔뻔하고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가게에 물건이 많고 종류도 다양하니 손님들이 자연스레 그곳으로 가게 됩니다. 급기야는 외상은 우리 가게에서, 현금은 영수네 가게를 이용합니다.
도저히 그대로는 생활을 이어갈 수 없었으나 몸이 쇠약하신 아버지는 다른 일을 찾기도 힘들었지요.
결국 방법을 찾다가 엄마가 원단 공장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우리는 계속되는 힘겨운 가난과 더불어 엄마의 부재까지 겪으며 나날이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지요.
엄마가 출근하게 된 원단 공장은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으며 2교대 근무 시스템이었습니다. 한주는 낮 근무, 한주는 밤 근무로 일을 하는 곳이었지요.
하지만 말이 2교대일 뿐 하루 15시간 이상씩 근무를 해야 하는 고된 작업환경에 엄마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도 없습니다.
심지어 야간 근무하는 날엔 아침 7시에 퇴근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예고도 없이 연장근무로 이어지는 날이 많았지요. 그러면 엄마는 등교시켜야 하는 자식들 걱정에 식사 시간을 이용해 집으로 달려오셨고 아이들 챙겨 학교 보내고 당신은 아침도 못 드시고 다시 현장으로 달려가곤 하셨지요.
그런 생활이 이어지자 아버지의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모든 것이 당신 탓이라고 자책하며 급기야 이기지도 못하는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합니다.
약한 몸에 술도 잘 마시지 못했던 아버지가 갑작스레 독한 깡소주를 한 병 두 병 마시게 되었고 아버지의 삶은 점점 위태로워짐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그런 아버지를 보는 것이 엄마에게는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몇 배로 힘드셨겠지요. 유일하게 하루 쉬는 일요일이면 밀린 집안일로 인해 잠시도 쉴 틈이 없습니다. 그런 엄마를 돕겠다고 여동생과 저는 빨래도 하고 실내화도 빨고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해야만 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엄마는 일요일이면 집에 있는 그릇들을 싹 다 꺼내놓고 닦기 시작합니다. 잘 쓰지 않던 냄비며 큰 솥들까지도 엄마의 손을 통해 반짝반짝 빛을 내며 그 자태를 뽐내기도 했지요.
빨간색 말표 이뿐이 비누 한 조각과 철 수세미로 온갖 그릇들을 땀을 뻘뻘 흘리며 몇 시간을 닦아내는 엄마입니다. 그때는 단지 엄마의 성격이 부지런하고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오후 한나절을 그릇 닦는 데 온 힘을 다 쏟은 엄마는 반짝거리는 그릇을 정리하며 한동안 멈춰있기를 반복하시곤 했지요. 훗날 알게 됩니다. 그 철 수세미와 이뿐이 비누가 엄마의 그 혹독했던 시간을 이기게 해 준 유일함이었다는 것을요.
엄마 당신의 고된 인생을 하소연할 곳도 없었지요. 어리디어린 4남매 자식들을 두고 떠날 용기도 없었습니다. 엄마의 고통스러운 삶은 그렇게 그릇을 반짝거리게 닦아내는 것으로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을 수 있었던 힘이 되어주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