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 냄비 라면

엉덩이 화상

by 샤인오름

우리 라면 삶아 먹을래?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토요일엔 오전 수업만 하기에 반공일이라고도 했지요. 반공일엔 도시락을 안 싸가니 집에 오면 배가 고파 먹을 것부터 찾습니다.


고된 근무로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엄마도 원단공장을 그만두게 되셨고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와 함께 청소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부모님은 일을 하러 나가시고 고만고만한 4남매가 알아서 점심을 챙겨 먹어야 했지요. 엄마가 꼭꼭 숨겨둔 라면 두 봉지를 오빠가 찾아냈습니다.


모두가 밥을 먹지 않은 상태이니 딱 배고픈 시간이었는데 4남매가 라면 두 봉지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지만 라면의 유혹은 뿌리칠 수가 없었지요. 모두가 만장일치로 라면을 먹기로 합니다.


웬일인지 평소엔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동생들이 밥을 차려줘야만 먹던 오빠가 라면을 삶겠다는 것입니다. 부엌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오빠의 라면 끓이는 솜씨는 어떨까? 기대가 되었지요.


그 당시엔 연탄불이 유일한 도구입니다. 연탄불 하나로 모든 걸 해냅니다. 밥도 하고 찌개도 끓이고 따뜻한 물도 데워 쓰고 아궁이 연탄불로 난방까지 이뤄어 졌지요.


아궁이가 낮은 곳에 설치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연탄불을 이용하여 라면 끓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들 고픈 배를 움켜쥐고 연탄불 주변으로 모여들었지요.


물이 끓기 시작하여 라면 수프를 넣으니 참을 수 없는 라면의 냄새에 마음들이 급해집니다. 그날따라 텐션이 올라가 있는 오빠는 난생처음 끓여보는 라면에 흥분합니다. 스스로가 대견했던 모양입니다.


어느새 다 끓여진 냄비를 기술적으로 옮겨 본다고 설레발을 칩니다. 양은 냄비 양쪽 손잡이에 젓가락을 받치고 옮겨보겠다고 합니다.


“안돼! 위험해! 행주를 감싸서 옮겨야지!” 하고 말렸으나 나만이 할 수 있는 묘기이니 잘 보라며 휘파람까지 불면서 요란스럽게 옮겨옵니다. 부엌에서 방으로의 거리가 있어 위태롭게 보였지요.


우리는 긴장한 채로 오빠와 거리를 두고 마음 졸이며 오빠와 같은 자세로 한 걸음 한 걸음 옮겨 갑니다. 방에서 밥상을 펴며 라면을 기다리던 남동생은 재촉합니다. “형아~~ 라면 다 끓였으면 빨리 가져와!” 소란도 소란도 이런 소란이 없습니다. 라면 하나 끓이며 어찌나 정신을 쏙 빼놓는지...


방문 앞까지 위태롭지만 제법 기술적으로 라면 냄비를 옮겨가던 오빠가 방문 문지방을 넘는 순간이었지요. 문턱에 발가락이 걸리면서 휘청합니다. 아! 안돼~~ 소리를 치지만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뜨거운 라면 냄비가 허공으로 빙~나는가 싶더니 이내 방바닥에 나뒹굴어 버립니다.


순간! “앗 뜨거워!” 방 안에 앉아있던 남동생이 외마디 비명을 지릅니다.


딱 동생이 앉은자리에 라면 국물이 흥건합니다. 동생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통스러워합니다.

너무 놀라 동생의 바지를 벗기려 하는데 이런... 하필이면 나일론 소재의 바지를 입고 있던 동생의 엉덩이는 바지와 착 달라붙어 안 떨어집니다.


라면 국물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엉덩이 피부는 벌겋게 달아올랐고 바지를 벗기려 하니 엉덩이 피부가 벗겨지는 큰 화상을 입은 것이었지요.


너무 어렸던 우리는 무서웠고 바로 앞집 명희 엄마에게 달려가 도움을 요청했지요. 아파서 고통스러워하는 동생을 보며 오빠와 동생들 모두 울음이 터졌습니다.


명희 엄마는 소주 大 병을 가져와서 동생의 엉덩이에 부으며 조심스럽게 바지를 벗겨냅니다. 아유~~ 어쩜 좋아! 명희 엄마도 얼굴을 찌푸리며 힘들어합니다.


그 당시에는 병원도 흔치 않았을뿐더러 너무 가난해서 병원 가기도 힘들었던 시절이었지요. 그래도 저 정도 화상을 입었으니 병원을 가야 했음에도 부모님은 일을 하러 가셨고 전화조차도 없으니 집에 오실 때까지 따로 연락할 길도 없었습니다.


병원을 데려갈 엄두를 못 내고 있었고 아줌마는 일단 응급처치했으니 괜찮을 거라며 다독여 주셨지요.

소주를 부었을 때는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했던 동생이 울다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누구보다 오빠가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을 몰라하며 동생 손을 잡은 채 울기만 합니다. 큰일이 벌어졌음에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고 그 아픈 동생을 지켜봐야만 했던 상황이 무섭고 서러워 우리 형제들은 그저 서로를 보며 훌쩍훌쩍 눈물만 흘렸지요.


방 안 가득 흐트러진 라면을 치우고 너무 놀라 배고픔도 잊은 지 오래... 빨리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렸지요. 그 시간은 너무도 더디고 힘들게 지나갔습니다.




마침내 피곤한 몸으로 집에 오신 부모님은 이 사달이 난 것을 보고 얼마나 가슴 아파하셨는지 늦은 밤 화상 입은 동생을 둘러업고 이미 닫힌 병원 문을 두드리며 사정사정해서 진료를 볼 수 있었습니다.


병원 건물에 원장님 댁이 같이 있었던 동네 의원이었기에 가능했었지요. 아이고! 화상 입은 아이를 어째 이렇게 방치했냐고 혀를 끌끌 차는 의사 선생님에게 핀잔을 들으시는 엄마는 사정합니다.


선생님 제발 우리 아이 안 아프게만 해주세요. 엄마의 목소리도 가늘게 떨리며 울고 있습니다, 그렇게 화상치료를 하고 온 동생은 한결 편안해지기는 했으나 많이 아파했습니다.


오른쪽 엉덩이 피부가 훌렁 벗겨져 벌겋게 드러난 속살이 보기만 해도 마음이 미어졌지요. 그럼에도 매번 병원에 갈 수 있는 형편이 안되었기에 약국에서 화상 거즈를 사다 붙이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평소 우리를 예뻐하셨던 동네 할머니가 동생의 화상소식을 듣고 흉터 안 남게 하는 민간요법을 알려줍니다.


계란의 흰 자만 풀어서 상처 부위에 계속 발라주며 시원하게 바람 통하게 해 주면 상처 없이 깨끗하게 치료가 될 거라는 말에 가족 모두가 동생을 위해 돌아가면서 계란 물을 발라주곤 했답니다.


과연 그래서 나을까 의심스럽 기도 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니 하루에도 몇 번씩 계란 흰자를 발라주며 깨끗이 나을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원했지요.


한 달여를 매일 같이 지극정성으로 계란 치료를 해주며 온 힘을 다해준 정성이 통했는지 새살이 돋기 시작했고 마침내 흉터 하나 없이 깨끗하게 회복이 되었답니다.


완전히 회복한 후에서야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평화를 되찾기 시작했지요.


동생의 화상이 깨끗이 나은 날 엄마가 라면을 푸짐하게 끓여서 가족 모두가 라면 파티를 열었던 그 시절 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가슴 저 깊은 곳에 남아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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