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동준비
늦가을이 되면 겨울을 나기 위한 월동 준비에 들어갑니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연탄과 김장이었습니다. 그 시절 난방과 취사를 위해서는 연탄이 필수였지요. 보통 300장씩 들여놔야 겨우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집마다 연탄 창고도 갖추고 있었지요.
달동네라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에는 연탄배달을 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미리 구매하지 않으면 연탄 물량이 없어 구입을 못 하게 될 수도 있었지요. 그러니 겨울이 오기 전 필수로 준비해야 했던 첫 번째는 연탄입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김장이었지요. 보통은 11월에 중순쯤이면 김장을 합니다. 워낙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이라 겨울철 양식으로 김치는 필수였지요.
한집에 100~200 포기는 기본입니다. 그 추운 겨울날 차디찬 배추를 손수 손질하고 소금에 절이고 다 절여지면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야 했지요. 1~2일에 걸쳐해야 했던 큰 행사였습니다.
100포기씩 김장을 하는 일은 혼자서 하기엔 너무 고된 일이라 이웃분들이 모두 품앗이로 김장을 합니다.
누구네집에 김장한다고 하면 앞집 뒷집 아주머니들은 함지박 하나씩 들고 모여들지요. 그 고되고 힘든 일도 지혜로운 엄마들은 거뜬히 해내곤 합니다. 김장하는 엄마 곁에서 허드렛일들을 도우며 엄마들의 수다를 듣는 것은 또 하나의 재미였지요.
남편들은 집안일 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고된 시집살이를 하던 시절이니 엄마들의 가슴엔 누구에게나 피멍이 들어있습니다.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쌓인 감정을 누구보다 서로 잘 알고 있기에 무채를 썰며 한스러운 이야기 하나 풀어내고, 커다란 대야에 가득 쌓인 양념을 버무리며 또 한바탕 쏟아내고, 그러면서 쏟아냈다는 속 시원함에 한바탕 웃어대고 그 많은 일을 즐겁게 해내곤 하셨지요.
남편들 흉을 보는가 하면 아이들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시어머니 흉내를 내기도 하며 삶의 애환을 풀어놓기도 합니다. 엄마들 특유의 웃음소리는 담장을 넘어갑니다.
누군가 먼저 구성지게 노래를 부르기라도 할라치면 나도 질세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노래들을 하시기도 했지요. 그 힘든 김장도 각자의 지혜로움으로 즐기며 큰일을 해내는 엄마들입니다.
엄마는 김장 항아리에 가득 쟁여진 김치를 보면 더 바랄 것이 없다 하셨지요. 김장을 끝내고 남은 양념엔 밥을 비벼서 막걸리 한잔 함께 나누며 진한 정을 느끼곤 했답니다.
겨울엔 연탄불이 또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달리 난방 기구가 있거나 지금처럼 편리한 보일러가 갖춰져 있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절대로 연탄불을 꺼트려서는 안 되었지요. 연탄불은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연탄불이 꺼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방은 차갑게 식어버리고 따뜻한 물도 쓸 수 없으며 당장 밥을 할 만한 대체품도 없습니다. 또한 꺼진 연탄불을 다시 붙이려면 번개탄이 있어야 하니 이만저만 번거로운 것이 아니지요. 그러니 평소에 꺼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물도 끓여야 했습니다. 겨울철엔 큰 솥단지에 물을 끓여서 온 가족이 사용해야 했지요. 즉 연탄은 가족의 건강을 지켜는 필수조건이었던 것이지요.
국민학교 5학년쯤 처음으로 연탄불을 갈기 시작했습니다.
보통은 아궁이에 연탄 2장이 들어갑니다. 아랫부분 연탄이 하얗게 변하면 연탄을 분리하여 버리고 위에 있던 연탄은 아래로 넣어주고 그 위에 검은색 새 연탄을 올리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위에 있는 연탄과 아래에 있는 연탄의 구멍이 잘 맞아야 합니다.
오빠는 연탄 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지요. 또 남자들은 집안일을 해서는 안 되는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꽈추 떨어진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남자들을 감싸던 시절입니다.
심지어 물 한잔도 떠먹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새벽에 일을 나가시고 하루가 다 지나 집에 오시니 연탄불을 지켜낼 수가 없었지요. 동생들은 어리고 어쩔 수 없이 연탄담당은 제가 도맡아 하게 되었지요.
연탄이 불타는 속도는 불의 세기를 조절하는 레버와 불구멍을 잘 막아줘야 합니다.
아래 연탄이 재가 되어 하얗게 된 연탄을 분리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보통은 칼등으로 툭 치면 떨어지기는 하는 데 힘 조절을 못하면 연탄 중간이 깨지기도 하고 잘못 분리되어 위에 있는 연탄이 깨지게 되는 등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곤 합니다. 익숙하지 않으니 연탄불을 자주 꺼뜨리기도 했지요.
그런 날은 영락없이 엄마가 올 때까지 냉방에서 추위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온종일 추위 속에서 떨면서 일하고 오신 엄마는 꺼진 연탄을 보면 화를 냈지요. 어쩌다가 연탄불을 꺼트린 날은 안절부절못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매일 연탄갈기에 도전하다 보니 어느새 요거 너무 재밌어집니다. 재밌어서 연탄을 갈다 보니 어느새 저는 연탄갈기의 달인이 되어갑니다. 위아래 연탄구멍도 단 한 번에 기막히게 잘 맞추게도 되었고 다 타버린 연탄재 또한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척척 분리하게 되었지요.
어느새 우리 집 연탄갈기는 온전히 저의 몫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연탄갈기의 달인이어도 방전체를 따뜻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연탄아궁이와 연결되는 방바닥만 따뜻하고 그 외에는 아궁이하고 멀어질수록 방바닥은 차디찼지요. 아궁이 가까운 따뜻한 곳은 아랫목, 연탄불이 미치지 못하는 냉기가 도는 곳을 윗목이라 했지요.
남아사상이 컸던 그때는 남자아이들을 따뜻한 아랫목에 재우고 당연히 여자아이들은 추운 공간으로 내몰립니다. 늘 가족들을 위해 연탄갈기를 도맡아 하면서도 언제나 추운 자리에서 잠을 자야 했던 저는 야속합니다. 열효율을 높일까 싶어 아궁이 불 조절 레버를 가장 세게 열어 놓곤 했었지요.
그래도 별로 효과는 없이 여전히 윗목은 싸늘했고 심지어는 아랫목만 더 뜨거워져 그 부분 장판이 뜨거운 열기에 진한 갈색으로 변하기도 했답니다.
윗목에 앉아 있으면 엉덩이가 시릴 정도여서 항상 담요를 깔아 두어야만 했지요. 그 어린 시절 달동네 생활은 추위에 떨며 잠을 자야 하는 날이 겨우내 계속되었답니다.
연탄불을 피우던 시절에는 연탄가스 사고도 종종 일어났습니다. 방바닥에 금이 가거나 굴뚝 관리가 잘 안 되어있는 집에서는 연탄가스가 새어 나와 질식사고 등을 겪는 일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지요.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죠. 어느 추운 겨울밤 자다가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깨질듯한 통증으로 잠에서 깼으나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도 안 되고 몽롱한 상태가 되어 기다시피 나옵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식구들이 부엌으로 기어 나와 가슴을 움켜쥐고 고통스러워 신음하고 있기도 했지요.
엄마도 가스중독이 된 상태였지만 정신력으로 버티신 건지 장독대에 있는 동치미 항아리에서 국물 한 사발을 떠 다 주셨지요. 우리들 에게 먼저 먹인 후 부모님도 마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가 시릴 정도의 동치미 국물 한 사발 마시고 찬 바람 쐬고 앉아있으면 대체로 회복이 되었지요. 달동네에서는 겨울이면 꼭 연탄가스 중독사고가 일어나곤 했습니다.
연탄불은 그 당시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물건임과 동시에 가슴 아픈 물건이 되기도 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