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종이를 줄까? 파란 종이를 줄까?
그 시절 가장 힘들었던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화장실입니다. 서울에 산다 해도 말이 서울이지 달동네는 매우 열악하고 불편한 환경이었지요.
뭐 하나 변변한 것이 없었던 그 시절 제일 힘겹고 싫었던 것 중의 하나는 속이 훤히 보이는 재래식 화장실이었습니다. 어느 집이나 다 그런 화장실이었으니 그때는 그게 이상할 일도 아닙니다.
마당 깊은 움펑집 역시도 초록색 나무문을 열면 흔들거리는 나무 발판을 양쪽에 두고 깊이 뚫린 그 화장실은 어린아이들에게는 늘 공포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여름철 이면 냄새와 구더기들로 인해 더욱 곤욕스럽고 힘들었지요.
휴지도 귀했던 시절이었기에 화장실에는 항상 신문지를 잘라 한 장씩 뜯어 쓰기 좋게 묶어 걸어놓았습니다. 어른 손바닥 만한 크기로 조각낸 신문지 한 장을 마구 비벼 뒤처리를 해야 했던 고달픈 시절이지만 아이들은 자연스레 그 화장실을 이용하며 성장을 해갑니다.
화장실이 그토록 싫고 두려웠던 것은 괴담 때문이기도 했지요. 화장실에 신문지가 없을 경우엔 밑에서 “빨간 종이를 줄까?” “파란 종이를 줄까?”라는 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
그리곤 각각의 종이를 쥔 손이 쓰윽 올라온다는 말이 암암리에 퍼져있었지요. 그 말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꼭 화장실 들어가기 전에 벽에 신문지 가 걸려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필수였습니다.
겨울철 이면 할머니는 항상 요강을 사용하십니다. 화장실 가기 무서운 우리는 할머니의 요강을 부러워했지요.
방안 한쪽에 가득 찬 요강을 밀어놓으면 아침마다 요강을 비우는 엄마는 곤욕스러워하곤 하셨습니다. 할머니만이 누릴 수 있었던 특권이었지요.
모든 집이 재래식 화장실이었기에 동네에 일명 "똥 퍼~~" 하며 다니시는 분들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양쪽에 깊은 양동이가 매달려 있는 똥지게를 지고 동네를 돌아다니셨지요. 화장실이 가득 찬 집에 "똥 퍼 아저씨" 들이 직접 양동이에 똥을 퍼 나르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동네에서 놀다가도 똥 퍼 아저씨들이 저만치에서 오는 것이 보이면 코를 틀어막고 다들 흩어지며 도망갔지만 똥퍼 아저씨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그 힘든 일을 해주시는 모습이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학교 갔다 오면 책가방 던져놓고 해 저물 때까지 놀다 집에 오면 할머니는 소리치시곤 하셨지요. 그렇게 공부 안 하고 빈둥거리고 놀기만 하면 나중에 저렇게 똥지게나 지고 살 거다! 라며 눈을 흘기시곤 했습니다.
평소에 할머니는 욕도 잘하고 때로는 말 안 듣는다고 때리기도 하셨습니다. 그래도 할머니가 밉지 않았고 맞아도 괜찮았지만 그 말만큼은 왠지 모를 서러움에 눈물을 펑펑 쏟기도 했지요.
유난히 화장실을 무서워했던 저는 밤늦은 시간에 배가 아프거나 참기 힘들 땐 오빠와 동생들에게 화장실 갈 때마다 보초 서주기를 부탁하고 사정하며 매달립니다.
그럴 때마다 소원을 들어줘야 한다. 심부름을 대신해 줘라 등 댓가를 원했었고 뭐든 다하겠노라 라는 다짐을 받고서야 마지못해 따라와 보초를 서주곤 했었지요.
볼일 보는 내내 혹시 가지는 않았을까? 불안한 마음에 앞에 있는지 계속 확인을 하며 그래도 불안할 때는 노래를 불러달라고도 했지요. 그러면 또 순수하게 노래도 불러주던 오빠와 동생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이었지요.
함박눈이 소복이 내려 깊게 쌓인 날 화장실에 간 여동생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립니다.
놀라서 뛰어가 보니 한쪽 다리가 빠져 사색이 되어 있습니다. 흔들거리던 나무 발판에 눈이 얼어 미끄러웠던 차에 중심을 잃고 빠진 것이지요. 마땅히 잡을 곳도 없어 발판을 의지한 채 두려움에 떨며 울지도 못하고 하얗게 질려있었지요.
당황한 우리는 서로 손을 잡아끌어 냈는데 한쪽 다리에 오물이 흠뻑 묻어 있는 동생을 두고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했습니다. 일단 빠져나온 동생은 울음이 터졌고 때마침 집에 들어오신 엄마가 옷을 벗기고 깨끗이 씻겨주셨지요.
당시 풍습이 화장실에 빠지면 꼭 시루떡을 해서 먹어야 한다는 말들이 유래되고 있었습니다. 화장실에서 넘어지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며 반드시 떡을 해서 액땜을 해야 하고 넘어진 사람에게 꼭 그 떡을 먹여야만 한다는 풍습이 있었던 때였지요.
엄마는 동생을 씻겨놓고 곧바로 방앗간 가서 쌀을 빻아와서 시루떡을 하셨고 떡이 완성되자마자 한점 떼어 여동생에게 먹여주셨지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시루떡 파티에 신이 나서 똥 통에 빠진 동생 덕에 원 없이 떡을 다 먹어본다며 동생아 고맙다 하며 놀리기도 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