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떠나보내다.
"전보입니다." 어느 날 우체국에서 전보가 옵니다.
"어머니 위독! 모셔가세요" 전화가 없던 때였기에 급한 일이 있거나 먼 거리에서 연락이 필요할 시 유일하게 이용할 수 있는 통신수단이었습니다. 글자수에 따라 요금이 부과되었기에 최대한 용건만 간단히 썼지요.
큰고모에게서 온 전보였습니다. 전보를 받아 든 아버지의 손이 파르르 떨리며 눈물을 왈칵 쏟으셨습니다.
지난겨울에 오셨을 때도 매우 건강하고 좋아 보이셨는데 갑자기 위독하다고 하니 덜컥 겁이 납니다.
움펑집에서는 할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달동네로 이사한 후론 방이 좁아 불편하신 할머니는 시골 큰고모 댁에 내려가셔 생활하시게 되었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 마다 한 번씩 다녀가실 뿐이었지요. 여전히 저를 미워하셨던 할머니지만 저는 할머니 곁에 있으면 그리 좋았습니다. 할머니에게서 나는 냄새가 좋았고 추운 겨울날 4남매가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여 도란도란 할머니가 해주시는 옛날이야기 듣는 일은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가끔 몸도 씻겨주시곤 했는데 엄마가 그릇 닦을 때 쓰던 이뿐이 비누를 이태리 때타월에 묻혀 박박 닦아주었고 그로 인해 여린 피부는 여기저기 시뻘겋게 일어나 몇 날 며칠을 쓰리고 아파서 고생하기도 했었지요.
그래도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고 할머니에게 이쁨 받으려 애썼던 시절입니다.
그렇게 며칠을 함께 보내고 다시 큰고모네로 내려가신 할머니가 겨울을 지나고 벚꽃 흩날리는 봄날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게 된 것이지요.
아버지가 서둘러 내려가셔서 모셔온 할머니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있었습니다. 호리호리 했던 몸은 땡땡 부어 거동조차 힘들어하셨고 갸름했던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어있습니다.
낯선 할머니 모습에 눈물이 터졌고 병원에서조차 힘들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신장에 이상이 생겨 손쓸 수가 없다는 절망적인 상황을 안고 우리 집으로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병쇠가 깊어지셨고 급기야는 몸져누워 대소변을 받아내야만 했지요. 부모님은 맞벌이로 생활을 이어가야만 했던 때였기에 낮에는 엄마가 할머니를 돌볼 상황이 안되었습니다.
일반식을 드실 수 없었던 할머니를 위해 이른 아침 엄마가 죽을 끓여놓으시고 깨끗한 면기저귀를 여러 장 접어 준비해 놓고 저에게 할머니를 돌봐주라 부탁하고 일을 나가셨지요. 저는 학교가 끝나는 대로 집으로 달려와 할머니를 오롯이 돌봐드렸습니다.
죽을 따뜻하게 데워 떠먹여 드리고 대소변을 받아내고 따뜻한 물을 받아 씻겨드리고 새로운 기저귀를 채워주는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그리고선 말없이 할머니 옆에 누워 할머니 얼굴을 쓰다듬곤 했었지요. 할머니를 오롯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그리 좋고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오곤 했습니다.
하루는 할머니가 씻겨주던 저의 손을 잡고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시더니 결국은 엉엉 한 서린 울음을 울으셨지요.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서 나지막하게 처음으로 제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요.
할머니의 대소변이 묻은 기저귀를 애벌빨래해서 담가놓으면 저녁에 엄마가 푹푹 삶아 깨끗하게 빨아놓으시고 또 새로운 기저귀를 준비해 놓습니다. 그리고 밤부터 새벽까지 할머니를 극진히 보살피는 엄마의 정성이 한 달간 계속되었습니다.
할머니가 아프신 건 안타까웠으나 할머니가 늘 곁에 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한 달쯤 지날 무렵부터는 죽마저도 드시지를 못했습니다. 안타까운 엄마가 일을 잠깐 쉬면서 할머니를 극진히 돌보셨지요.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고 일요일 새벽이었습니다.
다락방에서 자고 있는데 엄마가 할머니를 부르는 다급한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지요. 할머니는 희미한 눈빛으로 우리들을 찬찬히 둘러보십니다. 입은 달싹달싹하는데 소리가 되어 나오지는 않았지요. 아무런 말씀 한마디 남기지 못하시고 눈물만 주르륵 흘러내립니다.
잠시 후 할머니는 우리 가족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신 모습으로 눈을 감으셨습니다.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감당할 수없을 만큼 큰 아픔이 밀려왔습니다. 인생 처음으로 실제로 가슴을 예리한 칼로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이루 말할 수없을 만큼 아프고 힘든 시간이었지요. 살면서 그때의 가슴 아팠던 기억이 때때로 소환되기도 했습니다. 가슴이 아프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어린 나이였지만 너무나 잘 알게 되었던 것이지요.
할머니의 삶도 참으로 애달픕니다. 젊은 나이에 남편의 배신을 겪으며 어린 삼 남매를 지켜내야 했던 할머니 비록 아들에게는 온정을 다 쏟지 못하셨지만 그래도 마음깊이에서는 그 아들을 놓지 못하고 평생을 곁에서 지켜보며 마음 아파하며 돌봐주신 것 또한 할머니의 깊은 사랑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할머니 연세는 환갑을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지요. 건강하고 어여쁜 할머니였는데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난 할머니가 참으로 그립고 가슴이 아리던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