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교류가 없는 관계는
20대 시절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있다.
취향도 성향도 모두 제각각 삐뚤빼뚤 각양각색의 색깔을 지녔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이상하리 만치 잘 통했고 의기투합이 잘 되었다. 사회초년생으로 출신 학교도 살아온 지역도 모두 달랐지만 신기하게 쉽게 친해졌다. 그렇게 우린 20대를 함께 보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또 좋아하는 부분은 신기하게 합이 잘 맞아 늘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던 친구들이다. 직장 동료로 만났으나 마치 어릴 적부터 친했던 친구들처럼 빠르게 친해졌고 쿵하면 짝 할 정도로 합이 잘 맞는 친구들이었다.
특히 만장일치된 것은 "산"이었다. 모두가 등산을 좋아해서 주말마다 안 다녀 본 산이 없을 정도로 몇 년간 등산에 빠졌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렇게 20대 시절을 가족 이상으로 친하고 허물없이 지냈던 친구들이다. 시간이 흐르고 하나 둘 이직을 하거나 결혼을 하며 헤어지게 되었고 생활반경이 달라지며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었다. 그렇게 우린 서서히 잊혀져갔던 것이다.
10여 년 전쯤 우연한 계기로 한 명 두 명 다시 연락이 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모임은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다. 오랜 시간 긴 공백을 뚫고서도 스스럼없이 그 당시의 느낌들로 다시 즐거운 인맥이 형성되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우리들은 청춘시절의 수많은 시련과 도전 속에서 함께 똘똘 뭉쳤던 시간을 공유하고 있기에 소중한 사람들이라 여겼다. 20여 년의 공백의 시간을 각자가 어떤 모습들로 살아왔는지 전혀 모르는 체 말이다. 누구도 자신의 삶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 시절에도 서로 다름이 극명하게 갈렸고 각자의 색깔이 너무 선명했더랬다. 그래도 그때는 "산"이라는 공통된 관심사가 있었기에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것이다. 긴 시간을 건너뛴 우리들은 더 엉성한 모습으로 그 시절의 추억이 담긴 이야기들을 되풀이할 뿐이다.
아무튼 좋았다. 꿈 많던 20대 시절을 웃고 울며 함께 어깨동무하고 그려낸 삶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만난 이후로 1년에 한, 두 번 모임을 이어오고 있었다.
이른 결혼으로 아이들이 다 성장해 자신의 길을 찾아 독립해서 나가고 남편과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친구, 아들은 군대 보내고 고3딸 수험생의 부모로 아이의 학원스케줄을 꿰고 있는 친구, 아이는 절대 낳지 않을 거야라며 "딩크족"으로 남편과 둘이서만 알콩달콩 지내는 친구, 아직도 싱글을 고수하며 자유로운 삶을 사는 친구
지금도 여전히 제각각의 모습이다. 서로의 모습을 인정하며 일 년에 한두 번의 만남이 더없이 소중했고 행복하다고 느끼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이상 즐겁지 않고 우리는 왜 만나는 걸까? 마음이 공허해지고 의미 없는 만남처럼 느껴지곤 한다. 물론 재미는 있다. 웃음도 끊이질 않는다. 분명 겉으로 보기엔 즐겁고 행복하다.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왠지 모를 공허함이 따라오곤 한다. 그 마음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만나면 수많은 추억을 공유한 그 시절이 영락없이 떠오르곤 한다. 분명 즐겁게 웃고 많은 대화를 하는 데도 불구하고 원인 모를 허전함이 따라다니곤 했다.
청춘시절 함께했던 친구들을 만난다고 하면 주변사람들은 부러워들 한다. 정녕 나 자신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모임 후엔 항상 허탈하고 허전한 마음으로 돌아서게 된다. 멤버들 누구를 떠올려도 그저 마음이 동하지를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해 집중하며 떠올려 보았다.
서로 정서적 교류가 없었다.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소통이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저 의미 없는 우스갯소리라던가 자기 자랑 내지 푸념이 이어지곤 했다. 그렇게 나눈 이야기들은 모두 공중분해되어 사라졌던 것이다.
늘 익숙했던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하고 그저 즐겁다는 생각에 빠져있던 것이다. 서로에 대한 진심 어린 응원이나 감정교류 없이 그저 좋은 곳에서 한 끼 식사와 술 한잔하고 웃고 떠들고 보내는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참 의미 없고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단톡방도 어떤 이슈가 있을 때만 들썩일 뿐이다. 몇 개월째 그 누구도 아무런 안부조차도 없다. 만남의 시간이 가까워질 때만 폭풍 알림으로 정신을 쏙 빼놓고 모임이 끝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 조용히 멈추곤 한다.
이제는 놔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친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더 친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서로에게 발전적인 관계가 되지 못한다면 끊어내는 용기도 필요하겠다 싶다. 나 혼자서도 충분히 즐겁고 재미있는 삶이 필요하겠다.
책을 읽고 글을 써가며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며 삶의 또 다른 재미와 행복을 느끼게 되곤 한다. 놓아야 하는 인연은 놓아주고 내 안의 새로움의 가치를 꺼내가는 시간들을 만들어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