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다는 것은
출산을 두어 달 앞두고 남편은 산후조리만은 잘해주고 싶다며 우리 형편에는 무리가 되었지만 조리원을 예약을 해둔 상태였다. 어려운 상황에 몇백만 원을 내고 조리원에 간다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았으나 남편의 따뜻한 설득에 그리하기로 했었다.
출산에 임박한 어느 날부터 인지 산후조리원에 대한 사고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신생아실의 안전문제가 언급되며 아기들의 안전에 비상이 걸린 소식을 연일 듣게 되었고 불안감이 높았던 나는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고가의 조리원비용 또한 내심 마음에 걸렸던 나는 그 참에 산후조리원 안전 이슈를 핑계로 집으로 가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다며 조리원예약을 취소했다.
남편은 출산과정을 힘겹게 이겨낸 나를 옆에서 생생하게 지켜보았기 때문에 몸조리만큼은 잘하기를 원했었지만 나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그렇게 집으로 오고 회복되지 않은 몸상태로 오롯이 아기를 혼자서 돌봐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다행인 것은 가까이에 친정엄마와 여동생이 살고 있었기에 수시로 들여다봐주고 아이 케어하는데 적극 도와주기는 했었다. 동생이지만 선배 육아맘으로 많은 조언과 도움은 큰 힘이 되어주었다.
다만 일을 하고 있었기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잠깐 틈나는 대로 들려서 최대한 도움주려 애썼고 함께 해주었던 고마운 동생이다.
아이를 낳고 나의 세상은 완전히 바뀌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평소엔 나는 한번 잠이 들면 옆에서 난리굿을 해도 전혀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들곤 했었다. 친정가족들도 자주 그 일로 놀려대고는 한다.
어린 시절 다락 달린 방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다락에 오르내리기엔 사다리가 필요했고 방이 좁아서 사다리를 세워둘 수는 없었기에 사다리를 다락방에 끼워놓고 필요할 때마다 내려서 사용하고 다락을 쓸 일 없을 때는 다락방에 반쯤 올려두어야 했던 것이다.
어느 날 밤 새벽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락방에 올려두었던 사다리가 밑으로 떨어졌고 바로 그 밑에서 잠을 자던 내 이마를 강타했던 일이 있었다. 가족들은 모두 놀라 잠에서 깨어 상황파악을 했으나 정녕 나는 잠깐 인상한 번 찌푸릴 뿐 다시 깊은 잠을 자더란다.
아침에 일어나니 이마에는 커다란 혹이 나있었기에 반박할 만한 이유도 없었다. 그 일화는 두고두고 놀림감이 되기도 했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도 한번 잠들면 여간해서는 깨는 일이 없었던 나의 일화는 그 말고도 여러 건이 있었다.
그랬던 나였는데 아이를 낳고 신기하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아기의 작은 숨결의 차이도 금방 알아채고 미세한 뒤척임 하나에도 눈이 자동으로 떠지고 몸은 더 빨리 반응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밤새 수도 없이 깨며 더 이상 깊은 잠을 잘 수 없는 내가 되었고 나의 모든 세상은 아이에게 맞춰지는 삶이 되어가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삶이 너무도 행복했다. 매일 잠이 부족해 퀭한 눈으로도 잘 먹지도 못해 비실거리면 서도 방긋방긋 웃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듯이 마음이 꽉 차 오르곤 했었다.
태명이 "환희"였던 아이는 이름값을 하려는지 참으로 순하고 방긋방긋 잘 웃는 아기였다. 밤새 자고 아침에 눈을 떠 나와 눈이 마주치면 언제나 빙그레 웃는 아이는 세상 모든 시름을 다 씻어내려 주곤 했었다.
그러나 아이를 돌보는 육체적 피로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새벽출근으로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고 친정엄마는 친손주들의 양육을 도와주고 있었기에 나까지 돌봐주실 여력은 없는 상황이었다.
모유수유를 하고 싶지만 양이 부족한 탓에 분유와 혼합해서 먹여야 했고 신생아 시기에는 먹고 자는 일이 대부분이고 적은 양을 자주 먹여야만 했다.
매번 수유를 할 때마다 꼭 트림을 시켜야 한다는데 어찌 된 일인지 아기는 트림을 하지 않은 일이 많았다. 걱정되는 마음에 바로 눕히지도 못하고 30분 이상 안고 등을 쓸어줘야 했으며 간신히 트림 성공하고 눕히면 바로 변을 보기 일쑤였다. 다시 안고 가서 깨끗이 씻겨 기저귀 갈아주면 아주 잠깐 단잠에 빠진다.
그 천사같이 예쁜 아기 얼굴을 잠시 보다가 우유병 소독해 놓고 기저귀 애벌빨래해서 담가놓고 오면 또 깨서 배고프다 울어대고 또 반복되는 신생아 육아였다. 어떤 날은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고 허리 한 번 쭉 펴지도 못하는 날이 부지기 수였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오는 시아버지였다. 더군다나 사사건건 육아에 참견을 하시고 쓴소리를 하며 따라다니신다.
아들도 없는 며느리와 아기만 있는 집에 시아버지 방문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모유수유를 해야 하는 데도 그 자리에 앉아 편하게 하라는 말씀엔 기가 막히기도 했다.
분유를 타기 위해 생수를 쟁여두고 사용했는데 물을 사다 먹는다며 핀잔을 주고 기저귀 갈아주려 씻기고 공기 통하게 잠깐 벗겨놓으면 어린애를 감기 들라고 기저귀를 빨리 안 해주냐며 소파에 앉아 하나하나 눈으로 지적하고 말로써 간섭하는 것은 고문에 가까웠다.
내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루 온종일 아이만 안고 매달려있는 나날이 계속되었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오히려 쓴소리만 늘어놓는 시아버지의 방문에도 말 한마디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다 받아내는 시간이었다.
신생아 때는 아기 피부 고려해서 면기저귀 사용하겠다고 호기롭게 기저귀를 손수 만들어 놓았고 종이 기저귀를 사두지 않았었는데 어느 날은 아기가 장트러블이 생겼는지 한 시간에도 몇 번씩 기저귀에 똥을 지려놓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씻기고 새 기저귀 갈아주고 오전 한나절이 지났을 뿐인데 커다란 세탁 대야에는 기저귀 빨랫감이 하나 가득 쌓여있고 아기는 불편한지 보채고 내 몸은 천근만근 한발 짝도 문밖에도 나갈 수가 없이 힘든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여지없이 아이를 끌어안고 소리 없이 눈물만 쏟아내기도 했었다.
누구에게도 너무 힘들다.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하물며 남편에게 조차 힘들다고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고되게 일하고 온 남편에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남편은 정성을 다해 함께 하려 애써 주었으나 뭘 해도 서툴고 불안한 손길에 아빠에게만 가면 울어대는 아이를 남편에게 온전히 맡기는 성격도 못되었다.
그래도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엄마의 힘은 위대하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깨닫게 되는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