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의 간섭과 통제였다.
힘든 하루하루였지만 시간은 여지없이 흐르고 백일의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을 맛보았다. 밤낮이 바뀌어 힘들었던 아이의 수면패턴도 차츰 일정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눈만 마주쳐도 방긋방긋 웃으며 옹알이도 늘고 서서히 감정표현이 늘어나기도 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것이 느껴져 신기한 시간들이었다. 아이와 함께 하는 나날은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행복 그 자체였다.
100일이 지나니 아이를 돌보는 일도 제법 능숙해져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도 되었고 몸과 마음도 안정되었으며 틈틈이 아이가 잠든 사이에 집안일도 재빠르게 해 놓고 아이가 깨면 눈 마주치고 옹알이에 맞추어 대화도 해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동화책도 읽어주는 것이 생활의 전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육아의 시간은 모든 것이 좋았지만 다만 시도 때도 없는 시아버지의 방문은 어느새 노이로제가 되어가고 있었다. 손주가 보고 싶다는 이유로 찾아와 시시콜콜 간섭과 참견을 해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남편은 5남매 중 아들로서 막내였고 손아래 여동생이 있다. 홀시아버지는 아들, 딸 막내들을 유난히 눈에 띄게 편애하고 있었다.
자녀들하고 관계를 잘 맺어오지 못한 시아버지는 유난히 당신 말을 잘 듣고 별다른 반항 없는 막내들에게 의지하고 사랑이라 말하며 집착에 가깝게 행동하셨다.
남편은 막내이지만 집안의 대소사나 가까운 친척에서부터 먼 친척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조사를 다 챙겨야만 했다. 시아버지의 요구사항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지만 남편은 들어주려 애썼고 그런 남편의 뜻에 따라 나도 순순히 다 맞춰주었던 것이다.
당신 자식들도 하지 않는 일을 반박하는 일없이 묵묵히 다 해주곤 하는 며느리가 시아버지는 만만해지기 시작했나 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과한 요구사항들이 많아지고 시시때때로 아이를 보겠다는 구실로 찾아와 사사건건 나를 통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를 부르는 시아버지의 호칭도 언제나 "야"였다. "며늘아가" 라거나 "환희엄마"라고 불러줘도 좋으련만 언제나 나를 "야!" 하고 부르는 것은 극도의 스트레스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딱히 말 한마디 못하고 참았다가 남편에게 서운함을 말하면 이놈의 남편은 참 꽉 막히기도 했다. 그러면 그냥 "자기 속상했겠다." "아버지가 잘못하셨네!" 하고 따뜻한 위로와 공감한마디면 좋았을 것을 언제나 나를 타박하는 것이다.
원래 아버지 스타일이 그러잖아!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되지! 뭘 그런 걸로 스트레스를 받아?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하는 것이다. 그저 속상함에 풀어놓았던 이야기들이 남편의 말로 더욱 큰 화가 되고 풀지 못한 감정들이 무거운 쇳덩이가 되어 가슴속깊이 차곡차곡 쌓여가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 없는 낮시간동안 찾아오셔서 육아와 살림하는 모습 하나하나 간섭하는 게 얼마나 숨 막히고 힘든 줄 아느냐 호소해도 아무런 대안 없이 묵묵히 넘기는 남편과의 분열이 점점 늘어나는 날이 되기도 했다.
시아버지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남편과 시댁식구들은 전혀 개입하지 않았고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형제들 하나 없었다. 남편이 그러한데 누구에게 기대를 할까? 속만 까맣게 타들어 가는 시간들이었다.
우리가 결혼하기 몇 해 전 시어머니는 병환으로 돌아가셨고 남편은 쭉 아버지와 함께 생활해 왔던 것이다. 성향이 착하고 온순한 남편은 전형적인 K-아버지의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성격에 한마디 맞설 줄도 몰랐고 그저 인내하고 참아내며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묵묵히 지내오는 것에 익숙해있었던 것이다.
명절이나 이름 있는 날 외에는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도 없이 남남처럼 지냈다. 일 년에 한두 번 모여도 서로 대면대면 하고 아무런 대화 없이 참 어색한 시간을 마주할 뿐이었다.
급기야는 둘째 아들 며느리는 아버지와 감정의 골이 깊어져 발길을 끊게 되었고 모든 명절차례상이나 집안의 제사까지도 고스란히 막내며느리인 내가 다 도맡아야만 했다.
시아버지의 팍팍한 성격이 힘들었으나 자녀들과 원활한 소통을 할 줄 몰랐던 당신의 모습이 안쓰럽고 딱하기도 했기에 잘해드리려 노력했고 무리한 요구에도 응해주고 했던 것이 만만하게 여겨졌나 보다.
일가친척 모두 모인 자리에서는 막내며느리가 고맙다. 최고다라고 말하여 좋은 시아버지라는 인상을 심어주었지만 정녕 내 앞에서는 함부로 하는 태도가 참으로 이중인격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집안의 대소사를 모두 도맡아 하면서도 따뜻한 말 한마디 못 듣고 오히려 막대하는 태도는 서러움으로 쌓여가기 시작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조용한 시집살이가 시작된 것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할 줄 몰랐다. 언제나 스스로에게 "나는 괜찮다"라고 말해야 했고 또 괜찮아야만 했다. 그래서 시댁 식구들의 부당한 행동에도 반박한마디 하지 못하고 다 받아주고 웃는 낯으로 대해주곤 했던 것이다.
이러한 반복적인 습관은 나를 더욱 무디게 만들었고 깊은 슬픔으로 무기력해졌으며 동시에 스스로를 지켜내고자 뾰쪽하게 날을 세우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때 힘든 만큼 목놓아 울기라도 했더라면 힘들다고 호소할 줄이라도 알았더라면 안에서 곪아터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노산으로 체력이 버티질 못해 힘들었음에도 산후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오롯이 혼자서 육아를 도맡아 하며 지친 몸과 마음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시아버지의 간섭과 통제였던 것이다.